정치

“대만 유사시 무력 개입 발언” 후폭풍…다카이치 총리 발언에 한중일 협력 또 흔들리나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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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외교 갈등이 다시 고조되며 한중일 협력 메커니즘이 흔들리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무력 개입 시사 발언을 둘러싼 충돌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겨우 재개된 3국 협력 틀이 재차 경색 국면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중국 문화여유부는 지난 18일 한국 문체부에 오는 24일 마카오에서 열릴 예정이던 2025 한중일 문화장관회의를 잠정 연기하겠다고 통보했다. 회의 연기 결정은 사실상 중국의 중단 요구에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발언을 직접 거론하며 "중일한 3국 협력의 기초와 분위기를 훼손했고, 중일한 관련 회의의 개최 조건이 잠시 갖춰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마오닝 대변인의 언급은 문화장관회의뿐 아니라 한중일 관련 고위급 협의 전반에 제동을 건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당장 한중일 메커니즘의 최고위 회의체인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전망이 한층 어두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반기 한국의 탄핵 정국과 하반기 주요 다자외교 일정 등을 고려해 연말쯤 3국 정상회의 개최가 추진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어 왔지만, 중일 갈등이 격화하면서 시계제로에 빠졌다는 것이다.

 

의장국인 일본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지난달 하순 취임한 뒤 미일정상회담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 등 주요 일정을 소화했다.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달부터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시기를 본격 검토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가 7일 대만이 중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이 자위권 차원에서 무력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뒤 상황이 급변했다. 중국은 이 발언을 내정 간섭이자 적대 행위로 규정하며 연일 강경한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이 의장국으로서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주도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커졌다는 평가가 외교가에서 나온다.

 

특히 마오닝 대변인의 "한중일 협력의 기초가 훼손됐다"는 발언은 중일간 갈등이 진정되지 않는 한 한중일 협력 채널이 전반적으로 가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중국이 문화장관회의 연기를 신호탄으로 삼아 3국 협의 채널을 단계적으로 조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2008년 12월 첫 회의를 출발점으로, 지리적으로 인접한 3국이 경제협력과 지역 안보, 공급망, 기후위기 등 복합 의제를 논의하고 갈등을 관리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과거에도 양자관계 악화가 곧 3국 메커니즘의 중단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반복됐다.

 

2008년 첫 회의 이후 2012년까지는 매년 정례 개최됐지만, 영토 문제와 과거사 갈등으로 중일관계와 한일관계가 동시에 냉각되며 2013년 이후 중단됐다가 2015년에야 재개됐다. 2020년대 들어서도 코로나19 팬데믹에 더해 강제징용 문제로 촉발된 한일관계 악화 여파로 한동안 중단된 뒤, 지난해 서울에서 4년 반 만에 정상회의가 재가동됐다.

 

그러나 재개 1년여 만에 중일 갈등이 겹치며 한중일 협력 구조는 다시 암초에 걸린 모습이다. 외교당국 안팎에서는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전략 경쟁이 한층 심화한 상황에서 일본 총리의 발언이 중국의 강경 대응을 불러온 만큼, 양측이 단기간에 협상 타협점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3국 협력의 연속성과 제도적 틀을 유지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으나, 실무선에서는 중일 갈등의 진정 속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 일정과 의제 조율도 중일 양자 관계의 흐름에 따라 유동적으로 재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외교가에서 제기된다.

 

향후 중일 외교 채널이 갈등 관리에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한중일 메커니즘의 재가동 시점도 결정될 전망이다. 외교부와 관계 부처는 3국 협력의 실익을 확보하는 방향에서 상황을 점검하며, 향후 중일 관계 진전에 맞춰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방안을 다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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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사나에#한중일정상회의#마오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