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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투자 백지수표 요구”…이재명 대통령 “국익 해치는 빅딜 불가” 정면 맞서
정치

“미국, 투자 백지수표 요구”…이재명 대통령 “국익 해치는 빅딜 불가” 정면 맞서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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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주도권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관세 협상 후속 논의에서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정부가 미국의 투자 요구에 강하게 반발하며, 대미 투자 3천500억달러 규모·비자 확대·농산물 비관세 장벽 등 핵심 쟁점에서 교착국면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11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8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실무 협의 자리에서 한미 양국은 7월말 타결된 관세 합의의 후속 조치를 본격 논의했다. 실무진은 대미 투자 패키지의 구체적 이행 방안에 집중했으나, 투자처·규모와 이익 배분 방식을 둘러싸고 견해차만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최근 일본과 체결한 ‘문서화 합의’를 언급하며 “원하는 곳에, 원하는 시기, 원하는 방식”의 투자를 강력 요구 중이다. 사실상 백지 수표 방식의 전폭적인 동의를 한국에 강요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직접 투자 비중을 최소화하고 보증 위주로 부담을 낮추려는 방침을 고수했다. 특히 3천500억달러는 지난해 한국 GDP의 20%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라는 점에서, ‘일본선례’를 한국에도 일괄 적용하는 방식이 수용되기 어렵다는 입장이 명확히 드러났다.

 

투자 이익 배분 문제에서도 이견은 뚜렷하다. 미국은 “투자 이익 90%를 미국에 귀속한다”는 일본식 조건 도입을 요구하고 있으나, 우리 측은 “한국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불균형”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일본과 외환보유고 등 근본 여건이 다르다. 외환시장 충격까지 감안해야 하며, 미국에도 상응하는 해법을 요구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농산물 비관세 장벽과 자동차 관세 인하 문제도 쟁점이다. 미국은 한국에 과채류 수입 협력 등 비관세 장벽 해소의 구체적 시간표 제시를 압박하고 있다. 특히 미측은 20년 넘게 지체된 사과 수입위생 절차를 예로 들며 “약속 이행의 명확한 로드맵”을 촉구했다. 한편 미일 간 자동차 관세 인하가 전격 추진된 데 비해, 미국은 “한국이 먼저 행동에 나설 경우”에만 해당 혜택을 내놓을 수 있다는 입장으로 자동차 문제도 지렛대화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별도로 미국 내 한국인 불법체류 구금 사태를 계기로 비자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300여 명의 현지 근로자 구금이 장기화되면서, “비자없인 정상적 투자 이행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김정관 산업장관은 11일 미국으로 출국,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등과 고위급 협상 테이블에 나선다. 김 장관은 “비자, 투자 조건 등에서 우리 국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명확한 선을 그을 것”이라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할 계획이다. 정부는 “미국의 일본식 투자 협약을 그대로 수용할 의사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이번 방문 기간 일본과 같은 MOU 서명 등 급진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시각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또한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현지 투자는 기업들로선 매우 망설일 수밖에 없다”며 투명한 조건 조성을 촉구했다. 통상 당국자 역시 “3천500억달러 중 지분투자만으로 충족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실마리 찾는 협의 과정이 우선”이라 설명했다.

 

관세 협상 후속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한미 양국의 입장차 해소와 투자 이행 방안 구체화는 당분간 난항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미국과 지속 대화를 이어간다”면서도, 대등한 관점에서 국익 우선 관철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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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한미관세협상#투자논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