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미 에너지부 ‘APR1400에 미국 기술 포함’ 판정”…한수원, 웨스팅하우스와 불공정 합의 논란

전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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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과 웨스팅하우스 간 원전 지식재산권 합의를 둘러싼 파장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가 지난해 8월 "한국형 원자로 APR1400에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원천 기술이 포함됐다"고 공식 판정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와 한수원의 수출 주도권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공개한 한수원 국회 보고 자료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는 2024년 8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한수원·한전, 웨스팅하우스, 한국 정부 관계자들 앞에서 "한국형 원자로 설계가 미국 원천 기술을 포함한다"고 발표했다. 이 판정은 작년 7월 한수원이 체코 신규 원전 2기 사업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이후 시행됐다.

한수원은 그간 "APR1400은 한국 독자 개발 성과"라며 미국 수출 통제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해왔지만, 미국 정부가 자국 웨스팅하우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지재권 분쟁에서 뒤로 밀려난 셈이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해 4월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를 거치지 않고 체코 원전 수출을 신고하자 '미국인 신청' 필요성을 내세워 이를 반려한 바 있다.

 

미국 정부의 8월 판정에 따라, 웨스팅하우스의 동의 없이는 한국의 독자적인 해외 원전 수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한수원과 한전은 2025년 3월까지 정해진 계약 시한에 쫓기며 협상에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올해 1월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합의문에는 "원전 1기 수출당 1조원 이상 로열티와 용역 계약 제공, 유럽 등 선진 원전 시장에서 독자 진출 포기" 등의 내용이 포함됐고, 유효기간은 50년에 이른다.

 

산업계는 "미국 정부의 강경한 수출 통제 때문에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한수원·한전 이사회는 작년 11월 해당 합의문에 서명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는 당시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거친 결과라는 후문이다.

 

합의 직전인 올해 1월 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미 에너지부는 '한미 원자력 수출 및 협력 원칙' 기관 간 약정에 나섰다. 이 약정은 한미 양국이 자국 산업 보호 및 비확산 체계 유지를 전제로 협력을 확대한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관계자들은 "미국의 원천 기술 주도권을 전제로 당분간 한미간 원전 협력의 정치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여야를 중심으로 비판과 수습론이 교차했다. 더불어민주당 허성무 의원은 "작년 8월 미국 에너지부의 기술 검증 발표는 웨스팅하우스 굴욕 합의의 핵심 사건임에도 산업통상자원부, 한수원, 한전이 모두 정보를 은폐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결정에 개입했는지 국정감사에서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여권과 정부 일각에서는 "원자력 산업통제 구조의 특수성과 한미관계 안정을 위해 파기나 재협상보다는 사태 수습에 주력해야 한다"는 실용론이 강해지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어떤 계약이든 아쉬움과 불가피한 한계가 공존한다"며 "한계에도 불구하고 수출 역사를 이어온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수원이 체코 원전 수주 관련 정보와 미국 정부 결정의 내용을 숨긴 채 낙관적 전망만 부각했다는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이날 국회는 한수원과 정부의 책임 공방, 미국 정부의 개입 경위 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이어갔다. 정치권은 원전 수출 주도권 상실 논란을 두고 정면 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전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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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웨스팅하우스#허성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