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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사고 실시간 공유망 구축…WHO와 한국, 글로벌 안전망 강화 나선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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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사고 정보를 국경을 넘어 신속히 공유하는 글로벌 식품안전망 구축이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보건기구와 손잡고 식품안전 비상대응 역량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기로 하면서, 대규모 식품오염 사고와 같은 비상상황에서 정보 전달 지연으로 인한 2차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업계와 보건 당국은 이번 협력체계를 식품안전 거버넌스 전환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31일 2026년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식품안전 정책 방향을 소개하며 WHO와의 공조 강화 계획을 공식화했다. 핵심은 식품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 간 정보를 지체 없이 공유하고,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대응하는 국제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양측은 식품안전 비상상황을 가정한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각국이 자국 여건에 맞는 비상대응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실무 지침과 모형을 제공할 방침이다.  

특히 이번 계획은 기존 개별 국가 중심 관리 방식의 한계를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지금까지는 위해식품이 한 국가에서 문제를 일으킨 뒤 다른 국가에 수출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식중독균 오염 가공식품이나 잔류 농약 기준을 초과한 농산물이 여러 나라에 동시 유통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정보 연계의 속도와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WHO와 한국이 추진하는 비상대응 협력 체계가 가동되면, 특정 제품이나 원료에서 위해 요인이 확인되는 즉시 관련 정보가 실시간에 가깝게 공유되는 구조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국제 공용 식품사고 신고 포맷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 연계 플랫폼 구축이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각국이 사용하는 분류 코드, 위해 요인 명칭, 회수 조치 단계가 다르면 정보가 공유돼도 현장 적용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WHO와 협의해 통일된 사고 분류 체계와 보고 양식을 도입하고, 이를 국내 식품안전관리 시스템과 연동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런 구조가 정착되면 위해식품 추적 시간과 회수 의사 결정까지 걸리는 기간이 지금보다 뚜렷이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시장과 소비자 관점에서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위해식품의 국내 유입 차단 속도다. 그동안 해외에서 위해 정보가 늦게 전달되면 이미 국내 유통이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에야 회수 조치가 이뤄지는 경우가 있었다. 앞으로는 사고 발생 국가의 통보와 동시에 우리나라가 해당 제품 수입 통관을 즉시 중단하거나 검사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식품기업 입장에서도 국제 기준에 맞춘 위기관리 체계를 갖추는 것이 수출 경쟁력 확보의 필수 조건이 될 수 있어, 품질관리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WHO와의 협력에는 식품안전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를 대상으로 한 기술 지원도 포함된다. 식약처는 비상대응계획 수립 경험과 검사·위해평가 노하우를 바탕으로, 관련 시스템이 부족한 국가의 제도 설계와 인력 교육을 지원할 계획이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저개발국 생산 비중이 커지는 현실을 고려할 때, 특정 국가의 관리 사각지대가 곧바로 전 세계 식품안전 리스크로 이어지는 구조를 완화할 수 있는 접근이다. 우리나라로서도 원재료 수입선 다변화 과정에서 파트너 국가의 관리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식품안전 정보 공유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역내 긴급경보시스템을 운영하며 회원국 간 위해식품 정보를 하루 단위로 주고받고 있고, 북미 지역에서도 공동 대응 프로토콜이 정비되는 추세다. 한국과 WHO의 이번 협력은 이러한 다자간 정보망과 연계될 가능성이 크며, 아시아 지역에서 표준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빠른 디지털 행정과 식품 이력추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국제 식품정보 공유 확대에는 개인정보 보호와 기업 영업비밀, 국가별 규제 수준 차이 등 넘어야 할 과제도 존재한다. 위해사고와 연관된 생산 이력, 물류 경로, 검사 결과를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WHO와 논의 과정에서 과학적 근거와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되, 필요한 경우 비식별 처리와 단계별 공개 방안을 병행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력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국내 제도와 산업 구조에 맞춘 후속 정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식품기업의 자발적 신고와 데이터 제공을 유도하는 인센티브 설계, 지방자치단체와 검사기관의 현장 대응 역량 강화, 디지털 기반 이력추적 시스템 고도화 등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식품안전 비상대응의 글로벌 표준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국과 WHO의 협력이 어떤 실효성을 보여줄지에 관심이 쏠린다. 산업계는 이번 협력체계가 종이 위 계획을 넘어 실제 시장과 유통 현장에서 작동하는 안전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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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who#식품안전비상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