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우라늄 농축 절차 조속 이행” 박윤주, 미 랜도 부장관과 원자력 협상 틀 논의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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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둘러싼 한미 간 이해가 다시 맞부딪쳤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를 놓고 외교·안보 라인 협상이 본격화하면서 양국 원자력 협력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교부는 30일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이 내달 1일 미국을 방문해 크리스토퍼 랜도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회담한다고 밝혔다. 장소는 미국 워싱턴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이달 14일 조인트 팩트시트 발표 이후 이뤄지는 첫 고위급 논의다.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합의한 팩트시트 이행을 촉구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사안을 조속히 구체화해 달라는 메시지를 미측에 전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미국이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과 자국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한국이 어느 수준까지, 어떤 방식으로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후속 논의가 불가피한 대목이다.

 

외교 소식통들 사이에선 이번 회담을 두고 협상 내용을 확정하기보다 협상 구조와 절차를 정비하는 데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다시 말해 농축·재처리 문제를 다룰 실무 채널과 일정, 범위를 설계하는 협상 틀을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2035년까지 유효한 현행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개정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부 안팎에선 협정 전면 개정과, 기존 협정 틀을 유지하되 부속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 사이에서 검토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현행 협정 내에서 해석과 절차를 조정해 신속하게 이행하는 방안이 우선 논의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국회 답변에서 같은 기류를 내비쳤다. 조 장관은 28일 국회에서 한미 원자력 협력 방향을 묻는 질문에 대해 “협정을 개정할지 아니면 현재 협정에 추가로 어떤 조항을 추가시킴으로써 우리가 농축과 재처리를 할 수 있게 할 것인지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양한 법적·외교적 시나리오를 두고 정부 내 조율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시사한 셈이다.

 

한미 양측은 차관급 회담에서 농축·재처리 원칙과 일정 등 큰 틀을 정리한 뒤, 후속 실무 협의체를 가동하는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필요할 경우 양국이 별도의 협상 대표를 임명해 기술·안전·비확산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 문제도 의제에 오를 수 있다. 조현 장관은 국회에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역량을 먼저 평가하고 그 이후 미국과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취지로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회담에선 구체적인 사업 추진보다는 핵추진잠수함의 필요성과 중장기 로드맵을 공유하는 수준의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원자력과 안보를 넘어 관세·통상 현안도 테이블에 올라갈 전망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한미 관세협상 후속 조치를 지원하기 위한 대미투자특별법이 발의됐다. 한국이 관세협상 이행을 위해 제도 정비에 나선 만큼 미국 측에도 관세 인하 소급 적용 등 가시적인 성의를 보여 달라는 요구가 전달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한미 양국은 경주 정상회담에서 동맹의 외연을 에너지·첨단산업·안보 전반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번 차관급 회담이 팩트시트에 담긴 약속을 실제 제도와 사업으로 옮기는 시험대가 되는 셈이다. 후속 협상이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한국의 원자력 산업 경쟁력과 대미 외교 레버리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외교부는 “두 차관은 한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과 외교 당국은 차관급 협의를 출발점으로 후속 실무 채널과 국회 논의를 병행하며 한미 원자력 협력 구체화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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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주#크리스토퍼랜도#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