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적 생사확인부터 추진하겠다"…정부, 이산가족 교류 3년 청사진 확정
남북관계 경색 속에서도 이산가족 문제를 둘러싼 긴박감은 커지고 있다. 통일부가 향후 3년간의 이산가족 정책 방향을 내놓으면서, 생존자 고령화가 가팔라지는 현실과 북한의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철거 조치가 맞부딪힌 양상이다.
통일부는 31일 제5차 남북 이산가족 교류촉진 기본계획 2026∼2028년을 수립해 발표했다. 정부는 남북관계 진전 시 이산가족 교류 재개의 출발점으로 전면적 생사확인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생사확인 결과를 토대로 소식교환과 상봉 등 후속 교류를 단계적으로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기본계획에는 당국 차원의 이산가족 교류 재개, 민간 차원의 이산가족 교류 활성화,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 해결, 이산가족 교류기반 확대, 이산가족 위로 및 국내외 공감대 확산, 이산가족 역사·문화 계승 및 후손 세대 참여 확대 등 6개 중점 추진과제가 담겼다. 통일부는 이들 과제를 2026년부터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우선 생사확인 제도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통일부는 남북관계가 개선될 경우 남북 당국 간 협의를 통해 상시 생사확인 및 사망 시 통보제도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통일부는 지난해 이산가족 3만6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며 "조사 대상 이산가족의 62.3%가 생사확인을 희망했고, 77.2%가 가장 시급한 정책으로 전면적 생사확인 및 사망 시 통보제도를 꼽았다"고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산가족 문제를 남북 정치의 책임이라고 공개 발언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월 3일 추석 연휴 메시지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이 생사 확인이라도 하고 하다못해 편지라도 주고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남북의 정치의 책임"이라고 말해,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재개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남북 당국 간 이산가족 교류의 물꼬는 오랫동안 트이지 않고 있다. 남북 간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 이후 당국 차원의 이산가족 만남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마지막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2018년 8월 금강산에서 이뤄진 행사였다.
북한은 최근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일방적으로 철거하고 있다. 이 면회소는 과거 5차례 이산가족 상봉에 사용된 상징적 공간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위성사진 분석 결과 면회소 철거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이산가족 상봉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병행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통일부는 "이산가족면회소 기능 정상화를 위한 남북협의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금강산 면회소를 대체할 상봉장소 마련과 함께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교환방문 방식도 사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대북 제재 문제도 과제로 남는다. 통일부는 남북 이산가족 교류가 재개될 경우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대북 제재 면제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상봉 행사에 필요한 장비와 물자의 대북 반입이 불가피한 만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체제 안에서 예외 인정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당국 교섭이 막힌 상황에서 민간 차원의 이산가족 교류는 제한적이지만 계속 이어지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2023년부터 지난달까지 민간 중개인을 통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1건 3명, 생사확인 1건, 서신교환 2건이 성사됐다. 정부는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등 재개 가능성이 높은 민간 사업부터 지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지원 금액은 현행보다 20% 이상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산가족 고령화에 대응한 통계·복지 체계 개편도 예고했다. 통일부는 현재 3년마다 실시하는 이산가족 실태조사 주기를 1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생존자의 건강상태와 교류 수요를 더 촘촘히 파악해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역사·문화 기록 사업도 새롭게 추진된다. 통일부는 이산가족 생애기록물을 수집해 디지털화하는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은 분단 세대의 경험과 기억을 후손 세대와 공유하고, 이산가족 문제를 한반도 평화 담론의 역사적 자산으로 남기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도 기본계획의 한 축을 차지한다. 통일부는 "남북 간 대화에 기반한 문제 해결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이 재개될 경우 이 사안을 핵심 의제로 적극 상정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부는 그동안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를 인도적 사안으로 규정하고, 남북 대화의 주요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한편 이날 함께 공개된 통계는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성을 보여준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이산가족 신청자는 13만4천514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생존자는 3만4천658명으로, 전체의 25.8%에 그쳤다. 생존자 비율은 2023년 29.5%, 2024년 27.5%에서 계속 내려가는 추세다.
연령 구조는 더 심각하다. 이산가족 생존자 중 90세 이상 비율은 2017년 18.9%, 2019년 22.9%, 2023년 29.7%, 2025년 32.0%로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통일부는 고령 이산가족의 급격한 감소가 예상되는 만큼, 생사확인과 상봉 추진의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정책 설계에 반영하겠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남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3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해 왔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경색된 현실을 고려할 때, 새 계획의 상당 부분은 향후 정세 변화와 북한의 태도 변화에 달려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될 경우 이산가족 문제와 납북자·국군포로 문제가 대화 재개의 초기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남북관계 변화 추이를 지켜보면서, 국제사회와의 협의를 병행해 이산가족 교류 재개 방안을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