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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미생물 신호…연세대·한양대, 줄기세포 운명지도 제시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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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 미생물이 위장관 줄기세포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통합 기전 지도가 제시됐다. 위와 소장, 대장을 아우르는 전체 소화관에서 미생물 유래 대사산물이 조직특이줄기세포의 휴지기와 증식, 분화를 정교하게 조율하며, 이 과정이 장 점막 재생은 물론 위암과 대장암 같은 소화기암 발생에도 직결된다는 분석이다. 업계와 학계는 미생물 기반 치료제와 정밀의학 전략 설계의 기준선을 제시한 연구로 보고 향후 장기 재생의학과 항암 치료 패러다임 전환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연세대 의과대학 의생명과학부 남기택 교수와 한양대학교 ERICA 바이오신약융합학부 정행등 교수 연구팀은 위장관 전체에서 장내 미생물과 조직 줄기세포 간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고 31일 밝혔다. 위, 소장, 대장을 각각 따로 보던 기존 연구를 넘어, 장내 미생물 생태계와 줄기세포 조절 신호를 하나의 연속된 축으로 통합한 점이 특징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장내 미생물에 게재됐다.  

사람의 위장관에는 체내 미생물의 약 9할이 공생하며, 이들은 면역, 대사, 신경 기능 등 전신 건강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동시에 위장관 점막은 강한 산성 환경과 기계적 자극을 견디기 위해 끊임없이 재생돼야 하며, 이 역할을 맡는 것이 조직특이줄기세포다. 연구팀은 장내 미생물이 단순 동거자가 아니라, 다양한 대사산물을 통해 줄기세포와 신호를 교환하는 능동적 조절자로 작동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장내 미생물이 생산하는 단쇄 지방산과 트립토판 유래 인돌, 숙식산, 2차 담즙산 등을 줄기세포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 신호 전달 분자로 규정했다. 연구팀은 이런 대사산물들이 줄기세포의 휴지기 유지, 증식 개시, 분화 방향 결정 등 각 단계에 어떻게 관여하는지를 정리하면서, 기존 보고들을 위장관 전 구간 관점에서 재배열해 기능 지도를 그려냈다. 기존 연구가 미생물이 풍부한 대장에 치우쳐 있던 한계를 보완한 셈이다.  

 

기전 분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위 영역이다. 산성 환경 탓에 미생물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위에서도 공생 미생물이 생성하는 부티레이트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 부각됐다. 연구에 따르면 부티레이트는 GPR43로 알려진 특정 수용체를 통해 위 주세포의 휴지기 상태를 유지시키고, 비정상적인 증식을 억제해 암 발생을 막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위 주세포는 손상 시 줄기세포처럼 행동할 수 있는 예비 줄기세포로, 이들의 증식 제어가 위암 예방에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소장과 대장에서는 미생물 대사산물이 더욱 복합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연구팀은 해당 대사산물이 장 상피세포에 직접 작용하는 것뿐 아니라, 파네스 세포와 선천성 림프구인 ILC3 같은 세포를 통해 줄기세포 주변 미세환경을 재구성한다는 점을 짚었다. 파네스 세포는 항균 펩타이드 분비와 줄기세포 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세포로, 미생물 조성과 대사산물 농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LC3는 염증과 장 장벽 유지에 관여하는 면역세포로, 특정 대사산물 신호에 따라 줄기세포 활성 방향을 달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런 분석은 장내 미생물이 점막 재생과 장 장벽 유지에 필요한 줄기세포 활성도를 세밀하게 조율한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충실한 재생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줄기세포 증식이 필수지만, 조절이 무너지면 과증식과 유전자 손상이 겹쳐 암세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연구팀은 대사산물 미세 농도 변화와 수용체 발현 상태가 이런 경계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연구에서 주목한 또 다른 개념은 부티레이트 역설이다. 부티레이트는 대표적인 단쇄 지방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상황에 따라 조직 재생을 돕는 보호因자로 작용하거나, 반대로 암 세포 증식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돌변한다는 양면성이 보고돼 왔다. 연구팀은 동일한 대사산물이라도 농도, 작용 시점, 표적 세포 유형, 주변 염증 환경에 따라 결과가 극단적으로 갈릴 수 있다는 점을 다수 사례와 함께 정리했다. 이 분석은 미생물 기반 치료제 개발 시 고농도 투여나 장기 노출 전략이 예기치 못한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로도 해석된다.  

 

이번 연구는 플랫폼 기술이나 신약 후보 자체를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미생물 신호를 매개로 한 줄기세포 조절 축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냈다는 점에서 산업계 관심을 끈다. 유익균 조합을 설계하는 차세대 프로바이오틱스 기업, 장내 미생물 대사산물을 모사한 합성 저분자 약물을 개발하는 제약사, 장 점막 재생을 겨냥한 세포치료제 업체 모두에게 공통의 기전 로드맵을 제공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장내 미생물 치료제와 재생의학 결합 시도가 활발하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재발성 장염을 대상으로 한 분변 미생물 이식제와 특정 균주 기반 캡슐 제형이 이미 허가 단계에 진입했고, 일부 기업은 장 점막 염증과 암 전단계를 타깃으로 하는 파이프라인을 확장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은 대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위와 소장을 포괄한 기전 정리는 향후 위암과 십이지장 질환 등으로 적응증을 넓히는 데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국내 규제 환경에서는 장내 미생물 기반 치료제가 생물학적 제제 혹은 세포유전자치료제와 유사한 엄격한 심사를 받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여기에 줄기세포 조절이라는 고위험 영역이 더해지면, 안전성 검증 요구 수준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부티레이트 역설에서 드러난 양면성은 장기 독성 시험 설계와 용량 설정 과정에서 필수 고려 항목이 될 전망이다.  

 

남기택 교수는 장내 미생물과 줄기세포 간 상호작용을 통합적으로 정리한 이번 연구가 그간 상대적으로 연구가 적었던 위 영역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고 평가했다. 그는 위암과 대장암 발생이 미생물 불균형과 특정 대사산물 신호 전달 이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유익균이나 미생물 유래 대사물질을 활용한 점막 재생과 암 줄기세포 표적 치료 전략 개발의 이론적 토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와 연구계는 이번 연구를 계기로 장내 미생물 생태계와 줄기세포 조절 네트워크를 동시에 겨냥하는 복합 정밀치료 개발 경쟁이 가속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기술과 제도, 안전성과 효과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미생물 기반 재생의학과 항암 치료 산업의 성패를 가르는 새로운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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