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단장 처벌 안 된다 질책 전화"...윤석열 전 대통령, 채상병 수사외압 정점으로 기소

박진우 기자
입력

채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수사 외압 의혹을 두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 특검이 정면 충돌했다. 윤 전 대통령이 외압의 정점에 섰다는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의 결론은 향후 정치권과 군 사법체계를 동시에 뒤흔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명현 특별검사는 21일 순직해병 특별검사팀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수사 외압의 정점으로 지목해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142일간 수사를 통해 2023년 7월 31일부터 8월 20일까지 대통령실과 국방부, 군 검찰이 단계적으로 개입해 해병대 수사단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조직적인 외압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특검팀 설명에 따르면 출발점은 2023년 7월 31일 오전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였다. 당시 임기훈 당시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이 해병대 수사단이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피혐의자로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라고 보고하자,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언성을 높였다고 특검은 전했다. 이른바 VIP 격노로 알려진 장면이다.  

 

특검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직후 집무실 내선전화 02-800-7070으로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군에서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말단 하급자부터 고위 지휘관까지 줄줄이 엮어서 처벌하면 어떻게 되느냐, 내가 누차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했다.  

 

이 통화 직후 이 전 장관의 움직임은 매우 빨랐다고 특검은 설명했다. 통화를 끊은 지 14초 만에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 언론 브리핑과 국회 설명을 취소하고, 경찰 이첩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어 약 1분 40여초 뒤 다시 김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애초 분리파견 조치됐던 임 전 사단장을 정상 근무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해병대 수사단 수사 결과를 이미 결재했던 이 전 장관이 대통령 질책 전화 한 통 이후 불과 2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핵심 방침을 뒤집었다는 게 특검 판단이다. 실제로 임 전 사단장 분리파견 전자문서는 결재된 지 약 1시간 40분 만에 취소 공문이 기안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팀은 이 전 장관이 같은 날 오후 1시 30분께 장관 주재 긴급현안회의를 열어 해병대 수사단 수사 결과를 변경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청와대와 국방부, 해병대 간에 연쇄적인 외압이 이어졌다고 봤다.  

 

특검에 따르면 박진희 당시 국방부 군사보좌관은 이튿날인 8월 1일 김계환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지휘 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달라"고 말하며 임 전 사단장을 피의자 명단에서 제외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날 유재은 당시 국방부 법무관리관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혐의자, 혐의 내용, 죄명을 다 빼라.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라"고 지시했다고 특검은 밝혔다.  

 

박 대령은 이에 대해 "말조심하라. 수사 외압으로 느낀다"며 거세게 반발했지만, 국방부 지시는 번복되지 않았다. 결국 박 대령은 군사법원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8월 2일 경찰에 수사 기록 이첩을 강행하려 했다.  

 

그러나 이 이첩 시도는 곧바로 대통령실과 경찰 라인까지 전달됐고, 이후 기록 회수를 위한 협조 요청이 빠르게 내려갔다고 특검은 설명했다. 보고와 지시의 흐름은 김계환 전 사령관에서 이종섭 전 장관, 조태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으로 이어졌고, 이후 조태용 전 실장이 이시원 당시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다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와 경북경찰청 순으로 전달됐다는 것이다.  

 

기록 회수 과정 전체가 약 1시간 30분 만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검팀은 대통령실과 국방부, 경찰이 긴밀히 움직였다고 보고 있다. 박 대령의 이첩 시도가 좌절된 직후 그를 겨냥한 보복성 수사도 가동됐다.  

 

특검에 따르면 같은 날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은 차관회의 도중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채해병 사망 사건 이첩에 관한 신속한 대응조치를 취하고 결과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신 전 차관은 곧바로 유재은 전 법무관리관과 김동혁 당시 국방부 검찰단장에게 기록 회수와 함께 박 대령의 선보직해임, 항명 수사를 지시했다.  

 

약 40분 뒤 박 대령은 해병대 수사단장 보직에서 해임됐다. 2시간가량이 흐른 뒤 김동혁 전 검찰단장은 박 대령을 상대로 항명 혐의 수사에 착수했다. 군 검찰은 8월 14일부터 30일까지 박 대령에 대해 두 차례 체포영장과 한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모두 기각했다.  

 

특검팀은 김 전 단장이 박 대령에게 항명이나 상관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지하고도 신병 확보를 무리하게 시도했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9월 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 끝난 뒤 구속영장이 기각될 때까지 약 6시간 46분 동안 박 대령을 구금한 행위에 직권남용감금 혐의가 있다고 보고, 이를 김 전 단장 공소장에 포함했다.  

 

해병대 수사단에서 회수된 채상병 사건 기록은 유재은 전 법무관리관 지시에 따라 국방부 조사본부로 넘어갔다. 이때부터는 조사본부를 상대로 한 두 번째 수사 외압이 시작됐다고 특검은 설명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과 마찬가지로 임성근 전 사단장에게 책임이 있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를 보고받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은 '현재 수사 기록만으로 혐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범죄 혐의를 특정하기 제한된다'는 문구로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특검 수사 결과 국방부 조사본부는 8월 15일부터 20일까지 재조사 기간 동안 다섯 차례나 보고서 문구를 수정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당초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해 8명을 피혐의자로 적시했던 해병대 수사단의 결과는 최종적으로 대대장 2명만을 혐의자로 남긴 채 경찰에 이첩됐다.  

 

특검팀은 국방부와 군 검찰이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허위 문서를 작성·배포하고, 국회에 거짓 답변서를 제출한 정황도 공소장에 담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국방부 괴문서다. 이 문서는 '해병대 순직 사고 조사 관련 논란에 관한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됐으며, 해병대 수사단 초동 조사가 미흡했고 윤 전 대통령의 격노나 수사 개입은 없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박정훈 대령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자료가 의도적으로 사건 편철에서 빠진 사실도 드러났다. 특검팀은 군 검찰이 무리한 신병 확보 시도를 감추기 위해 관련 서류를 고의로 누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검의 공소 제기로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측과 당시 국방부 지휘부,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어떤 반론을 펼칠지에 따라 정치권 공방도 거세질 전망이다.  

 

향후 국회는 특검 수사 결과를 토대로 군 사법제도 개편과 군 수사 독립성 강화 방안을 둘러싸고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채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을 둘러싼 책임 공방을 계속 벌이는 한편, 군과 수사기관의 권한 통제 방안을 놓고 정면 충돌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박진우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윤석열전대통령#채상병#박정훈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