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 로비 실체 끝내 못 찾았다"…순직해병 특검, 윤석열 기소했지만 동기 미제로 남겨
수사 외압 의혹의 마지막 퍼즐로 꼽힌 이른바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을 둘러싸고 순직해병 특별검사팀과 핵심 관련자들이 정면으로 맞섰다. 수사 동기를 설명할 핵심 열쇠라는 평가 속에 수사가 이어졌지만, 침묵과 비협조가 겹치면서 정국의 또 다른 미제로 남게 됐다.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은 21일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은폐 의혹의 정점에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이른바 구명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구명 로비 의혹의 골자는 임 전 사단장이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피의자로 분류되자, 여러 경로를 통해 윗선에 자신을 혐의자 명단에서 제외해 달라고 청탁했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정치권과 일부 시민사회에서는 임 전 사단장의 로비 대상이 김건희 여사 아니었느냐는 설이 끊이지 않았지만, 특검팀 수사로는 이 대목이 확인되지 않았다.
특검팀은 구명 로비 의혹을 수사 외압의 동기 또는 배경을 설명해 줄 핵심 열쇠로 보고, 수사 외압 사건과 병행해 집중 수사를 이어왔다. 그러나 관련자들이 진술을 거부하거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수사는 장기간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특검팀은 그동안 임 전 사단장의 구명 로비 의혹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눠 들여다봤다. 하나는 전·현직 해병대 관계자들이 참여한 멋쟁해병 단체대화방을 통한 로비 정황이고, 다른 하나는 개신교계 인사들을 통한 청탁 의혹이다.
개신교계 라인은 사건 초반부터 관련자들의 출석 불응으로 수사가 지연됐다. 반면 지난달에는 멋쟁해병 단체대화방을 둘러싼 수사에서 일부 실마리가 포착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관심이 높아졌다. 임 전 사단장과 김건희 여사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종호 전 블랙펄 인베스트 대표가 2022년에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는 취지의 진술을 특검팀이 확보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진술은 이 전 대표와 친분이 있는 배우 박성웅 씨가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과 법조계의 시선을 끌었다. 이 전 대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서 김건희 여사의 계좌를 관리한 인물로 알려진 만큼, 특검팀은 두 사람 간 사적 관계를 토대로 이 전 대표가 김 여사에게 임 전 사단장의 구명을 부탁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이어왔다.
그러나 정작 수사 과정은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이 전 대표는 임 전 사단장을 알지 못하고, 구명 로비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끝까지 유지했다. 멋쟁해병 단체대화방의 다른 참여자들도 비슷한 취지의 진술을 내놓으면서 로비 의혹의 구체적 구조는 드러나지 않았다.
개신교계 라인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특검팀은 극동방송 설립자 김장환 목사와 한기붕 전 극동방송 사장 등이 임 전 사단장 측과 연결고리를 형성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참고인 조사를 시도했다. 법원이 특검팀 요청을 받아들여 공판 전 증인신문을 지정했지만, 양측 모두 증언을 거부하며 조사 시도는 무산됐다.
결국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기면서도 공소장에 수사 외압의 구체적인 동기를 담지 못했다. 수사의 출발점이 됐던 구명 로비 의혹을 행위의 배경으로 명시하지 못한 셈이다.
정민영 특별검사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구명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는 계속해오고 있으나 이번 윤 전 대통령 공소장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재판에서 증인 신청을 해서라도 의혹을 확인할 계획"이라며 공판 과정에서 추가 사실관계를 드러내겠다는 뜻을 전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수사 외압의 동기가 공소장 서술에서 빠지면서 범죄사실 구성이 어색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권남용 혐의 특성상 동기와 배경이 재판부 판단에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될 수 있어서다. 그러나 특검팀은 직권남용 성립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로서 항명 수사, 군사경찰 기록 회수 지시 등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의 공정성과 직무수행의 독립성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동기 입증 여부와 무관하게, 이러한 행위 자체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정 특검보는 "항명 수사, 기록 회수 지시 등 일련의 과정을 보면 군통수권자가 행사할 수 있는 재량의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관계만으로도 직권남용 혐의 입증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향후 재판 과정에서 구명 로비 의혹이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재판부가 관련 증인 채택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수사 단계에서 미제로 남은 퍼즐 조각들이 법정에서 재구성될 여지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이르면 오는 26일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그동안 파악된 구명 로비 의혹 전반에 대한 설명을 다시 내놓을 계획이다. 특검법에 따라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의 공식 활동 시한은 28일까지다. 정치권과 법조계는 특검 종료 이후 국회 차원의 추가 조사나 후속 특검 논의가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