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심실보조장치 선행 전략…심장이식 생존율 높인다
좌심실 보조장치 같은 기계 순환 보조 장치가 심장이식 전 가교 치료 전략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중증 심부전 환자에게 에크모를 적용한 뒤 곧바로 심장이식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식 전 단계에서 좌심실 보조장치 치료를 먼저 적용할 경우 생존율을 눈에 띄게 높일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제시됐다. 심장 이식 수요가 늘고 기증 장기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장비로 얼마나 오래 버티게 하느냐가 이식 후 성적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결과를 계기로 국내 심장이식 가교 전략이 에크모 중심 구조에서 LVAD 중심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중증 심부전팀 순환기내과 최진오·김다래 교수, 심장외과 조양현 교수 연구팀은 한국장기이식등록사업 KOTRY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에서 심장이식을 받은 성인 환자 1021명을 후향적으로 분석했다. 이식 직전 어떤 가교 치료를 받았는지에 따라 환자를 에크모 그룹 357명, 좌심실 보조장치 LVAD 그룹 137명, 기계적 순환 보조 장치가 없는 Non MCS 그룹 527명으로 나누고, 이식 후 사망률과 합병증 발생률을 비교했다.

분석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차이는 이식 수술 후 입원 기간 동안의 조기 사망률이었다. 에크모 치료를 받고 이식에 들어간 환자군의 입원 중 사망률은 17.9퍼센트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LVAD 그룹과 기계 보조 없는 그룹은 각각 4.4퍼센트로 동일한 수준의 낮은 사망률을 보여, 에크모 기반 전략 대비 4분의 1 수준의 위험도에 그쳤다.
장기적인 생존율 지표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나타났다. 이식 후 1년 생존율은 에크모 그룹이 77.5퍼센트에 머문 반면, LVAD 그룹은 89.0퍼센트, Non MCS 그룹은 92.5퍼센트로 90퍼센트 안팎의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즉 응급 생명 유지 장비인 에크모를 통해 겨우 이식까지 연결된 환자보다, 심장을 장기간 기계적으로 보조받거나 안정된 상태에서 이식에 들어간 환자의 예후가 뚜렷하게 좋은 양상을 보인 셈이다.
연구팀은 이식 심장이 초기에 제 역할을 못하는 합병증, 중증 이식편 기능부전 Severe PGD 지표도 함께 비교했다. 그 결과 에크모 그룹에서 Severe PGD 발생 위험은 기계 보조 장치가 없는 그룹 대비 약 3.7배, LVAD 그룹 대비 약 2.2배 더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심장이식 후 초기에 이식 심장이 충분한 박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저혈압, 장기 저관류 같은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해 조기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중증 이식편 기능부전은 심장이식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예후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에크모는 혈액을 체외로 빼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체내로 주입하는 방식으로, 심장과 폐 기능이 거의 정지 상태에 이를 만큼 악화됐을 때 마지막 단계에서 사용하는 인공 심폐 장치에 가깝다. 급성 심정지, 심인성 쇼크 상황에서 생명을 붙잡아 두는 데 필수적인 장비지만, 혈관 손상, 출혈, 혈전 형성, 전신 염증 반응 등 부작용 위험이 높고 장기간 사용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반대로 좌심실 보조장치는 심장이 박출하는 혈액을 기계 펌프로 장기간 보조하거나 일부 대체하는 장비다. 흉부에 소형 펌프를 이식하고 복부나 옆구리를 통해 전원 케이블을 체외로 빼어 배터리와 컨트롤러에 연결하는 구조로,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지속적인 혈류를 제공해 환자의 전신 상태를 회복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LVAD는 궁극적으로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대기 환자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브리지 투 트랜스플란트, 아직 이식 적응증이 명확하지 않은 환자에게 치료 반응을 보며 이식 여부를 정하는 브리지 투 캔디더시 같은 전략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연구팀은 에크모 기반 전략의 한계를 전신 상태 측면에서 해석했다. 에크모가 투입되는 환자는 이미 심부전이 극도로 악화된 데다 신장, 간, 폐 등 다른 장기의 기능까지 동반 저하된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빠르게 심장이식을 진행하면, 새로 이식한 심장이 충분한 박출을 시작하기 전에 다른 장기의 회복 실패와 전신 염증 반응이 겹치면서 조기 사망과 중증 이식편 기능부전 위험이 크게 올라간다는 설명이다.
반면 LVAD를 먼저 이식한 뒤 일정 기간 심박출을 안정적으로 보조하면, 신장과 간 기능이 회복되고 환자의 영양 상태와 근육량이 개선돼 수술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이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동일한 심장이식 수술이라도 어느 장비를 통한 어떤 가교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환자가 수술대에 오르는 전신 컨디션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의미다.
연구를 주도한 김다래 교수는 에크모와 LVAD의 역할을 분리해 해석했다. 김 교수는 에크모가 응급 상황에서 생명을 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다장기 부전이 동반된 상태에서 곧바로 이식에 들어가면 오히려 이식 후 사망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LVAD를 통해 전신 상태를 충분히 향상시킨 뒤 심장이식을 진행하면 이식 후 생존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심장이식 수술 자체의 술기가 성숙 단계에 접어든 상황에서, 이식 대기 전략은 이제 병원마다의 차별화 포인트이자 생존율 격차를 만드는 핵심 변수로 인식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에크모를 중심으로 한 단기 가교 전략이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이번 결과를 계기로 LVAD 같은 장기 보조 장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기증 심장 풀이 제한적인 현실에서, 적절한 환자 선정과 가교 전략 최적화는 전체 이식 생존율을 높이는 비용 효율적인 경로로 여겨진다.
조양현 교수는 에크모 상태에서 곧바로 심장이식에 들어가는 관행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상태가 허락하는 환자의 경우 에크모로 응급을 넘긴 뒤 LVAD로 전환해 전신 상태를 충분히 안정시킨 후 이식을 진행하는 브리지 투 캔디더시 전략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주요 심장이식 센터에서는 LVAD를 활용한 중장기 가교 전략이 표준 치료 축으로 자리잡으며, 에크모 단독 가교 비중을 줄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연구는 한국장기이식등록사업이라는 국가 단위 레지스트리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분석이라는 점에서, 향후 보험 정책과 장기 배정 기준, 이식 대기 순위 산정 방식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근거 데이터로 평가된다. 좌심실 보조장치가 고가 의료기기라는 점을 감안할 때, 생존율 향상 효과와 비용 효과성을 동시에 검토하는 후속 연구와 정책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연구 결과는 심장이식 분야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로 꼽히는 국제심폐이식학회지 최근호에 게재돼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심부전 환자 증가와 고령화에 직면한 국내 의료계에서, 어떤 환자에게 언제 에크모와 LVAD를 적용할지에 대한 세밀한 프로토콜 수립이 향후 심장이식 성적을 좌우하는 과제가 될 전망이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연구를 계기로 LVAD 기술 발전과 비용 절감, 환자 선정 알고리즘 고도화 같은 후속 과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