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안티드론 시험장”…정부, 실증 허브로 육성 예고
안티드론 기술이 국가 안보와 방위산업 패러다임을 흔들 핵심 변수로 부상하면서, 새만금 개발 지역이 장거리 드론 대응 체계 실증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새만금개발청, 방위사업청이 새만금 일대를 안티드론 임시 실증 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전파차단 기반 드론 무력화 기술의 국내 시험 인프라가 본격적으로 갖춰진다. 업계와 군 당국은 이번 조치를 소형무인기 방어와 차세대 무기체계 개발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새만금개발청, 방위사업청은 17일 새만금 내 안티드론 임시 실증을 위한 관계기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협약의 핵심은 아직 본격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새만금 일대의 넓은 개활지를 활용해, 전파차단장치 등 각종 안티드론 기술과 장비를 안전하게 시험할 수 있도록 제도적·행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최근 북한 무인기를 활용한 테러와 정찰 가능성이 부각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이 공격과 방어 양 측면에서 폭넓게 사용되면서, 저고도·저비용 위협에 대한 국가 단위 대응 체계 구축이 시급해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파차단으로 드론의 위성항법 수신을 방해하거나, 조종 신호를 교란해 경로 이탈과 추락을 유도하는 안티드론 기술이 주요 대책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전파 혼신과 간섭을 수반하는 장거리 시험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장소가 제한적이었다.
이번 협약으로 새만금은 드론 대응 기술을 실전 환경에 가깝게 검증할 수 있는 핵심 시험장 역할을 맡게 된다. 새만금은 33.9킬로미터 규모의 세계 최장 방조제를 중심으로 조성 중인 국가 사업으로, 2050년 완공을 목표로 인프라와 내부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인구 밀집도가 낮고 개발이 초기 단계인 만큼, 광범위한 개활지와 상대적으로 단순한 전파 환경을 활용해 장거리 전파시험과 비행 실험을 병행할 수 있는 입지로 꼽힌다.
안티드론 기술의 구현에는 강력한 전파 방해 장비뿐 아니라 정밀한 감시·탐지 인프라와 통합 지휘 통제 체계가 필요하다. 육안이나 단일 레이더에 의존하던 기존 저고도 감시 방식과 달리, 최신 안티드론 시스템은 레이더, 광학·적외선 카메라, 전파 신호 분석 장비를 결합해 드론의 위치, 속도, 비행 패턴을 실시간 분석한다. 이후 위성항법 신호를 교란하거나 조종 전파 링크를 차단해, 표적 드론의 경로를 틀어지게 하거나 비상 착륙·추락을 유도하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특히 이번 실증 허브 조성은 국내 전파법과의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실험장 성격도 갖는다. 현행 전파법은 통신망 보호와 안전을 위해 전파 혼신과 간섭 유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다만 군사 활동이나 대테러 활동 등 공공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예외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의성과 고성의 드론비행시험센터, 전파플레이그라운드 충북, 새만금 일대 등 일부 구역에서만 제한적 전파차단 시험이 허용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번 협약에서 새만금 지역 내 안티드론 임시 실증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파 안전 관리 총괄 역할을 맡는다. 장거리 전파차단 시험이 주변 통신망과 항공 안전, 인근 지역 전파 서비스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 분석하고, 시험 시기와 범위, 출력 등을 세분화해 규제와 실증 사이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접근성과 규모, 전파 환경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가 시험·훈련장 후보지도 발굴할 계획이다.
새만금개발청은 국가 정책과 공공 안전 목적의 실증 수요를 개발 일정과 지역 여건에 맞춰 수용하는 조정자 역할을 맡는다. 관광·산업·에너지 복합단지로 개발 중인 새만금 지역에서 군·치안 인프라와 첨단 방산 시험장이 어떻게 공존할지에 대한 장기 조율도 필요한 상황이다. 남궁재용 새만금청 개발사업국장은 새만금이 국가정책과 공공 안전에 기여하는 거점이 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관계 기관과 긴밀히 소통하며 필요한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방위사업청은 이미 소형무인기대응체계사업의 실시간 장거리 전파시험을 새만금 일대에서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협약을 추가 사업의 시험 인프라 확대로 활용할 방침이다. 소형무인기대응체계사업은 북한 소형무인기의 위성항법 수신기를 교란해 비행 경로를 어지럽히거나 추락을 유도하는 장비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로, 실전 운용을 위해서는 넓은 지역에서 다양한 고도·경로 시나리오를 반복 검증해야 한다. 방위사업청은 앞으로도 유사한 대드론 체계 시험과 평가를 새만금에서 계속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새만금이 안티드론 실증 거점으로 부상하면서, 향후 AI 기반 군사 기술 개발의 테스트베드 역할도 확대될 전망이다. 정규헌 방위사업청 미래전력사업본부장은 이번 협약이 장거리 안티드론 기술의 본격적인 입증뿐 아니라, AI 파일럿과 피지컬 AI 등 첨단 무기체계 연구개발의 기반을 강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AI 파일럿은 인공지능이 항공기나 무인기를 스스로 조종·전술 운용하는 시스템을, 피지컬 AI는 자율 무기와 로봇 플랫폼 등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AI 무기체계를 가리킨다. 이들 기술은 안티드론 체계와 결합할 경우, 감시·탐지부터 대응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드론과 안티드론 기술 경쟁이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 등은 전자전 장비와 레이저, 요격 드론을 결합한 복합 대응 체계를 속속 배치하며, 실제 전장에서의 성능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한국은 전자전 기반 전파차단 기술과 센서 융합 기술에서 일정 수준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실사용 환경에서 장기간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범위의 시험장 확보는 아직 초기 단계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전파 규제와 안보, 산업 육성 간 균형도 핵심 과제로 남는다. 국내 전파 환경은 상업용 통신망과 항공·해상 항법 시스템, 공공 무선망이 밀집돼 있어, 무분별한 전파차단 시험은 안전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동시에 안티드론 기술을 상용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실전과 유사한 환경에서 반복적인 시험과 개선이 필수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새만금을 포함한 제한적 구역을 중심으로 전파차단 실증을 관리하는 이유다.
업계와 군 당국은 새만금 안티드론 시험장이 국내 방산 기업의 기술 검증 비용을 낮추고, 글로벌 방산 수출 경쟁력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해외 수출을 위해서는 목표국 지형과 전파 환경과 유사한 조건에서의 시험 데이터와 성능 입증 자료가 필요하다. 새만금이 이런 역할을 일부 수행할 경우, 국내 업체가 독자 기술을 신속히 고도화하고 해외 인증 절차에 대응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오용수 과기정통부 전파정책국장은 국내 전파환경과 지리적 조건을 고려할 때, 장거리 안티드론 시험이 가능한 장소가 매우 제한적이라고 언급하며, 새만금이 관광단지 조성 전까지 국방과 대테러 기관, 방산 업계의 임시 실증을 지원하는 최적 입지라고 평가했다.
산업계와 방산 분야에서는 새만금 안티드론 실증 허브가 실제 무인기 위협 대응 체계 구축과 첨단 무기체계 개발을 얼마나 가속할지 주목하고 있다. 결국 기술 고도화 속도뿐 아니라, 전파 규제와 개발 계획, 지역 사회와의 조율을 아우르는 입체적 조정 능력이 방산·안보 산업의 새로운 성장 조건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