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다음 시대 준비”…팀쿡 후계 구도에 월가 촉각
팀쿡 최고경영자가 애플 수장을 맡은 지 13년을 넘기며 회사 가치는 10배 이상 뛰었다. 그러나 올해 예순다섯 살에 접어든 그가 어느 시점에선가 바통을 넘겨야 한다는 현실도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애플은 최고경영자 정년 규정이 없고 쿡 역시 당분간 회사를 계속 이끌 생각이지만, 이사회 세대교체 시점이 다가오면서 승계 구도가 월가와 테크 업계를 자극하는 모양새다.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은 누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브랜드를 통합하며 애플의 다음 성장 축인 인공지능과 확장현실, 서비스 구독 모델 전환을 완수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25일 현지시간 애플 내부에서 차기 CEO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4명의 핵심 임원을 짚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마케팅 등 애플 수익과 전략의 핵심 축을 각각 책임지는 인물들이다. 쿡은 대부분의 커리어를 애플에 바친 만큼 여전히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고, 회사 안팎에서 퇴진 압박도 전혀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아트 레빈슨 이사회 의장이 올해 75세로, 애플 이사진이 물러나기 시작하는 세대교체 시기가 다가오면서 지배구조 변화와 함께 승계 카드가 테이블 위에 올라온 형국이다.

시장에서는 쿡이 당분간 CEO를 유지하다가 일정 시점에 이사회 의장직으로 올라가고, 운영을 맡을 새 CEO를 선임하는 시나리오를 유력하게 본다. 반대로 이사회 의장과 CEO를 동시에 겸임하는 방식으로 현 체제를 연장할 여지도 남아 있다. 향후 인공지능과 반도체, 서비스 플랫폼을 둘러싼 IT 빅테크 경쟁이 장기전 양상으로 전개되는 만큼, 애플이 어떤 형태의 리더십 구조를 택하느냐는 기업가치와 기술 투자 방향에 직결되는 변수다.
후보군 가운데 가장 젊은 존 터너스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수석부사장은 애플 재직 24년차로, 아이패드와 맥, 에어팟을 거쳐 현재는 아이폰을 포함한 모든 제품 하드웨어를 총괄한다.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조직은 제품 외형을 담당하는 디자인, 칩을 설계하는 실리콘 팀, 소프트웨어 조직이 만든 기능을 실제 완제품으로 구현하는 핵심 축이다. 특히 터너스가 주도한 인텔 칩에서 애플 실리콘으로의 전환은 맥 라인업 에너지 효율을 크게 끌어올린 사례다. 팬을 달지 않고도 고성능을 유지하는 맥 노트북은 팬데믹 당시 재택근무 수요와 맞물려 판매량 급증을 이끌었고,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이전보다 높은 수준의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하드웨어 경쟁력이 여전히 애플 사업 구조의 기초 체력인 만큼, 터너스를 차기 CEO로 보는 시각은 애플을 ‘디바이스 회사’로 규정하는 시각과 맞닿아 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을 맡은 크레이그 페더리기 수석부사장은 매년 개발자 회의에서 새로운 운영체제와 기능을 직접 소개해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임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 워치, TV 등 10억 대가 넘는 기기에서 구동되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책임진다. 페더리기는 회의에서 과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팀이 어떤 결과를 내야 하는지 분명히 제시하는 강한 관리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최근 애플이 대규모 언어모델과 생성형 인공지능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평가가 나오자, 시리 개선 작업의 선봉에 그를 세운 것도 소프트웨어 출시 일정을 지켜온 그의 실행력을 높이 평가한 결과로 풀이된다. 시리는 14년 전 등장했지만 챗GPT와 같은 최신 AI에 비해 성능 격차가 커진 상태여서, 페더리기의 행보는 애플 AI 전략의 시험대로 여겨진다.
서비스 부문을 맡고 있는 에디 큐 수석부사장은 1980년대 말 애플에 합류한 이후 쿡 체제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업으로 꼽히는 서비스 매출을 키운 인물이다. 업계에서는 아이폰을 ‘디즈니월드’에 비유한다. 단말기 안으로 들어온 소비자는 게임, 구독, 클라우드 저장공간, 검색 광고 등에서 지속적으로 지출하며, 애플은 직접 서비스 제공이나 파트너와의 매출 배분을 통해 수익을 끌어낸다. 큐는 음악 레이블, 출판사, 영화 스튜디오와의 복잡한 협상을 이끌었고, 최근 포뮬러 원 모터스포츠 중계 계약까지 따내며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한때 실패로 평가받던 데이터 동기화 서비스를 아이클라우드로 재출범시키고, 혹평을 받았던 지도 서비스를 수습한 경험도 있다. 다만 60대를 넘긴 나이 탓에 그가 승계자로 지명되더라도 장기 집권형 CEO가 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그렉 조즈위악 수석부사장은 내년이면 애플 입사 40년을 맞는 마케팅 책임자다. 애플은 제품의 성능과 더불어 브랜드 설계에 공을 들여 프리미엄 가격과 높은 마진을 유지해 왔고, 조즈위악은 이 브랜드 전략의 실무 총괄이다. 매년 아이폰 신제품 공개 행사에서 주요 설명을 맡고, 이후 언론 투어에서 신제품을 직접 소개하는 역할을 해왔다. 동시에 인공지능 전략 부진 등 민감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회사 입장을 대외적으로 설명하는 창구 역할도 수행한다. 최근에는 애플의 AI 성과가 회사가 스스로 세운 품질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등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다. 브랜드와 평판이 매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 시대에 마케팅 책임자를 승계자로 택할지 여부는 애플이 기술보다 브랜드를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기울 것인지와도 연결된다.
글로벌 IT 업계에서는 차기 CEO가 어떤 배경을 가졌느냐에 따라 기술 투자 우선순위와 인수합병 전략, 서비스 구독 모델 전환 속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하드웨어 출신은 디바이스 혁신과 칩 자립에, 소프트웨어 출신은 AI와 플랫폼 생태계 경쟁력에, 서비스 출신은 구독과 광고 수익 극대화에, 마케팅 출신은 브랜드·가격 전략에 방점을 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애플이 향후 몇 년간 직면할 규제 리스크, 특히 앱스토어 수수료나 서비스 번들링을 둘러싼 규제 당국의 압박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도 새 리더십의 평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애플 안팎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승계 시점을 가늠하긴 이르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쿡이 여전히 일선에서 정력적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고, 애플 실리콘과 웨어러블, 서비스로 이어지는 성장 축이 완전히 소진된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주와 시장은 테슬라, 엔비디아 등과의 인공지능 경쟁, 중국 수요 둔화, 반독점 규제 강화라는 변곡점에서 애플이 어떤 리더십 구조로 다음 10년을 설계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산업계는 결국 승계 공식보다 신기술과 비즈니스 모델 전환 속도가 애플의 미래 가치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