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료관광 국가전략산업 육성하자…규제 완화, 디지털 인프라 관건
K의료관광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자는 목소리가 국회와 의료계에서 동시에 커지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의료기술과 한류 열풍이 결합하며 외국인 환자 수는 급증하고 있지만, 비대면 진료 규제와 수도권 쏠림, 사후관리 공백 등 제도적 한계가 산업 성장의 속도를 늦추고 있어서다. 업계와 학계는 의료·관광·IT가 융합된 디지털 의료관광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뒷받침할 규제 완화와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대한민국 의료관광의 미래와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공청회를 열었다고 25일 밝혔다. 행사는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주최하고 서울시의사회가 주관했으며, 의료관광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정책 협력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됐다.

전현희 의원은 한국 의료기술 경쟁력이 이미 글로벌 수준에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그는 K컬처와 한류 확산으로 K의료에 대한 해외 관심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며, 의료관광은 단일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새로운 성장동력 후보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규제 완화, 관광 비자 제도 개선, 의료 연계 관광 인프라 구축, 숙박·문화 산업과의 연계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묶은 패키지 지원이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전 의원은 동시에 안전·보험 체계 정비와 부작용 방지 대책을 갖춰야 산업 신뢰도가 유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의료관광이 의료기기, 문화콘텐츠, 관광 산업과 동반 성장하는 복합 산업이라고 규정하며,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국회 차원의 입법과 정책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의료와 IT, 서비스 산업이 결합하는 구조인 만큼, 단순 홍보 차원을 넘어 데이터·보험·비자 정책을 아우르는 종합 전략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린 발언으로 풀이된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최근 수치로 드러난 K의료관광 성장세를 짚었다. 지난해 외국인 의료관광객이 117만 명을 기록하면서 한국 의료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고, 미용·성형뿐 아니라 정밀의료와 고난도 수술 분야에서까지 신뢰도가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의사 입장에서 체감하는 한국 의료의 기술력, 안전성, 사후관리 체계는 세계적 수준이라고 강조하며, K컬처 열풍과 글로벌 콘텐츠 확산이 의료에 대한 관심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황 회장은 구조적 취약점도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의료 수요가 여전히 미용 중심에 치우쳐 있고, 암·심혈관 등 중증 질환 환자 유치는 기대만큼 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부처별로 역할이 갈라진 분절 구조 탓에 산업을 종합적으로 조정할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고 평가했다. 해결책으로는 의료관광 인증제 도입, 표준계약서 사용 의무화, 외국인 환자 대상 원격 상담 허용 등 제도적 안전장치와 디지털 기반 서비스 확충을 함께 제시했다.
황 회장은 특히 K스마트 사후관리 시스템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환자가 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모바일 앱이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건강 상태 모니터링, 상담, 재방문 안내가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면, 의료의 질과 만족도가 동시에 높아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를 뒷받침할 의료·관광 연계 정책을 병행해야 의료관광 산업이 일시적 붐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의사회도 윤리성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안전한 의료관광 환경 조성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공청회 발제자로 나선 변정우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는 주요 의료관광 사례 분석을 통해 한국 의료관광 산업의 현실과 과제를 짚었다. 그는 한국이 세계적 수준의 의료기술과 인프라를 갖췄음에도 제도·서비스·지역 간 편차와 각종 법적 규제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 잠재력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변 교수는 수도권 집중과 사후관리 체계 부재를 핵심 문제로 꼽았다. 현재 외국인 환자가 서울과 일부 대형 병원에 쏠리면서 지방은 의료·통역·숙박·교통 인프라가 부족해 유치 경쟁에서 밀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지역별 의료관광 클러스터가 성장하지 못하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지역 거점 병원을 중심으로 의료·관광·문화가 결합된 분산형 클러스터 전략을 설계해야 국가 전체의 수익성과 서비스 품질이 함께 올라갈 수 있다고 제안했다.
사후관리 측면에서는 IT 강국이라는 위상과 현실 사이의 격차가 크다고 평가했다. 변 교수는 치료가 끝난 후 환자가 본국으로 돌아가면 추적 관리와 상담, 약물 복용 모니터링, 재방문 유도 등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진료 정보와 연계된 모바일 플랫폼, AI 기반 위험도 분석, 원격 모니터링 등을 활용하면 환자 상태를 장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지만, 의료법상 비대면 진료 규제가 외국인 환자 대상 사후관리에도 동일하게 적용돼 시스템 구축이 가로막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외국인 환자의 사후관리 목적에 한해 비대면 진료 범위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언어·문화 장벽과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 의료광고 제한 등도 의료관광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거론됐다. 변 교수는 다국어 대응 인력 부족, 종교·식습관·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이 환자 불편과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슬람권과 동남아 환자 유치를 위해 할랄 식단, 기도 공간, 가족 동반 입원 규정 등 세밀한 문화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동시에 디지털 기반 글로벌 헬스케어 플랫폼을 만들려면 개인정보 보호와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규제 등 여러 법률을 함께 손봐야 해, 현행 제도 하에서는 민간이 적극 투자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진단했다.
K메디컬 브랜드 인지도 강화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변 교수는 국가 차원의 일관된 K메디컬 홍보 전략, 의료관광 비자 제도 개선, 진료비 투명성 확보, 의료분쟁 조정 체계 명확화 등을 경쟁력 강화의 필수 조건으로 꼽았다. 특히 치료비 산정 기준과 예상 비용을 사전에 다국어로 공개해 가격 불신을 줄이고, 외국인 환자 전담 의료분쟁조정 시스템을 별도로 구축하면 산업 전반에 대한 신뢰도와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적 개선 방안으로는 외국인 환자 대상 비대면 사후관리 허용 범위 확대, 진료비 기준의 투명성 강화, 의료관광 비자 제도 정비, 외국인 환자 전담 의료분쟁조정 체계 마련 등이 제시됐다. 변 교수는 한국 의료기술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라섰지만 이를 지지할 제도·서비스·마케팅 체계는 여전히 미비하다고 강조하며,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력과 연계된 종합적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한 매년 의료관광 사업 실적을 정례적으로 평가하고, 백서 발간 등을 통해 성과와 문제점을 공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데이터 기반 평가 구조를 갖춰야 지역별, 진료과별, 환자 유형별 성과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맞는 지원과 규제 조정을 설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과 서울시의사회는 향후 관련 법 제정과 개정을 통해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K의료관광이 디지털 기술·지역 균형·규제 혁신을 삼각축으로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향후 입법 논의의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