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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융합연구 재편 필요”…정부, 미래융합전략 논의

신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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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이 산업 전반의 융합 방식을 바꾸면서 국가 연구개발 전략도 재조정 기로에 들어섰다. 정부와 연구기관이 참여한 미래융합포럼에서는 데이터와 AI를 전제로 한 융합연구 체계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질병 사전예측부터 로봇, 에너지, 무전원 스마트기기까지 차세대 융합 유망기술 후보군이 제시됐다. 업계와 학계는 이번 논의가 AI 시대 국가 융합연구 방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4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넥스트 컨버전스 미래융합 유망기술과 인공지능 시대 융합연구 전략을 주제로 올해 하반기 미래융합포럼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제17회차를 맞은 이 포럼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미래융합협의회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미래융합전략센터가 주관해 AI 시대 기술 융합 양상과 선제 확보해야 할 미래융합 기술을 논의하는 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조강연을 맡은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는 AI 문명으로의 대전환이라는 큰 흐름을 짚으며, 생성형 AI와 자율지능 시스템 같은 최신 사례가 산업 간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 자체의 성능 경쟁을 넘어 데이터, 알고리즘, 하드웨어가 한데 묶이는 융합 구조가 표준이 되고 있어, 연구개발 전략도 단일 분야 최적화에서 융합 구조 설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번 포럼에서는 실제 융합연구 성과를 낸 연구자들에 대한 정부 포상도 진행됐다. 사람 피부와 유사한 감각 특성을 구현해 로봇에 적용할 수 있는 로봇 피부 기술을 개발한 김정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소형 핵융합로에서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원리를 규명해 차세대 에너지 연구 기반을 다진 황용석 서울대 교수, 초미세먼지 등 공기 중 유해물질을 걸러내는 필터링 시스템을 고안한 윤기로 건국대 교수 등에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표창이 수여됐다. 정부는 이 같은 사례가 소재·에너지·환경·로봇과 같은 전통 분야가 AI와 센서, 제어기술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융합 연구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KIST 미래융합전략센터는 지난 3월부터 논문과 특허 데이터를 분석해 도출한 미래융합 유망기술 후보를 공개하고, 전문가 패널과 함께 심층 토론을 진행했다. 건강 영역에서는 질병을 사전에 예측하고 사지마비 환자 등 중증 장애인의 사후 치료를 고도화하는 기술이 꼽혔다. 유전체 분석, 생체신호 모니터링과 AI 예측 모델을 결합해 발병 위험을 미리 탐지하고, 신경 인터페이스와 재활 로봇을 연동해 기능 회복을 돕는 식의 융합 시나리오가 논의됐다.

 

로봇 분야에서는 유연소재를 활용한 인공근육 하드웨어와 새로운 환경에 실시간으로 적응하는 지능형 AI의 결합이 핵심축으로 제시됐다. 단단한 금속 위주 로봇에서 벗어나 사람과 공존할 수 있는 소프트 로봇을 만들고, 로봇이 현장에서 취득하는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작업 환경 변화에 즉각 대응하는 구조가 목표다. 국내외 로봇 기업들이 센서·구동계 성능 향상에 집중해온 데 비해, 포럼에서는 재료과학·AI·제어공학이 통합된 연구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에너지 인프라 측면에서는 초고열 환경에서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융합기술이 주목받았다.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이터센터 등 고열 인프라에서 발생하는 열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고성능 냉각소재와 AI 기반 열제어 기술을 함께 개발하는 방향이 제안됐다. 서버별 온도 변화, 공조 패턴, 전력 사용량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냉각 효율을 자동으로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도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스마트기기 분야에서는 배터리를 탑재하지 않고도 기기를 구동하는 에너지하베스팅과 무선전력전송 기술이 융합 유망기술로 제시됐다. 태양광, 진동, 전파 등 주변 환경에서 소량의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수확해 센서나 초저전력 칩을 구동하고, 부족한 전력은 무선전력전송으로 보완하는 구조다. 웨어러블, 의료용 임플란트, 사물인터넷 센서 등에서 배터리 교체 부담을 줄이면서도 장기 운용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 산업 파급력이 크다는 평가가 나왔다.

 

패널들은 글로벌 차원에서도 유사한 융합 흐름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AI 기반 정밀의료, 에너지 효율 데이터센터, 소프트 로봇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각국 정부가 데이터 개방, 연구 인프라 투자로 뒷받침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개별 분야 성과를 넘어 데이터 표준, 공용 테스트베드, 규제 샌드박스 등 융합 친화적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정책 측면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시대에 맞는 융합연구 생태계 재구성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이우진 공공융합연구정책관 직무대리는 AI 시대를 맞아 융합연구에 대한 접근법 또한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며 앞으로 미래융합 유망기술을 전략적으로 발굴하고 융합연구 생태계가 AI 시대에 걸맞게 변화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이번 포럼에서 제시된 기술과 정책 방향이 실제 연구개발 투자와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신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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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kist#미래융합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