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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윤성 간암, T세포 몰리면”...차병원, 면역항암 한계 짚어 맞춤치료 제시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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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윤성 간세포암에서 면역항암제 병합치료가 잘 듣지 않는 기전을 국내 연구진이 영상과 유전체 데이터를 통합해 규명했다. 간세포암은 진행 단계에서 면역항암제와 표적항암제 병합요법이 표준 치료로 자리잡고 있지만, 환자 간 반응 차가 커 임상 현장에서는 ‘누가 이득을 볼지’를 가려내는 정밀 예측 지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이번 연구는 CT·MRI 기반 종양 형태 분류에 더해 유전자 변이와 면역세포 구성을 함께 분석, 침윤성이 뚜렷한 간암에서 조절 T세포가 크게 늘고 특정 암 관련 유전자 경로가 활성화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향후 간암 치료에서 영상 판독 단계부터 면역항암제 적합군과 비적합군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 의과학대학교 분당차병원 암센터 종양내과 전홍재 교수와 김찬 교수, 연구교수 이원석, 병리과 황소현 교수 연구팀은 진행성 간세포암 환자에서 아테졸리주맙과 베바시주맙 병합요법을 받은 307명을 대상으로 임상 정보, CT·MRI 영상, 유전체·전사체·단백체 데이터를 종합 분석했다고 25일 밝혔다. 연구팀은 영상 이미지를 기반으로 종양 형태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으며, 그 결과 전체 환자의 42.7퍼센트가 IV형, 즉 간 실질을 넓게 파고드는 침윤성 형태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침윤성 간세포암 환자의 치료 성적은 다른 형태와 비교해 크게 떨어졌다. 연구에 따르면 침윤성 유형에서 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 병합요법에 의미 있는 반응을 보인 환자는 14.6퍼센트에 그쳤다.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은 2.8개월,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은 7.1개월로, 같은 치료를 받은 다른 형태 간세포암 환자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연구팀은 나이, 기저 간기능, 이전 치료 이력 등 다양한 임상 요인을 통계적으로 보정했음에도 침윤성 형태와 불량한 예후 사이의 연관성이 유지됐다고 설명했다. 영상상 확인되는 침윤성이 간세포암의 나쁜 예후를 예측하는 독립적인 영상 바이오마커로 기능한다는 의미다.  

 

후속 분석에서 연구팀은 침윤성 간세포암의 분자적 특징을 추적하기 위해 유전체, 전사체, 단백체를 통합적으로 들여다봤다. 유전체 수준에서는 종양억제 유전자인 TP53과 DNA 손상 복구를 담당하는 ATM 유전자 기능이 손실된 돌연변이가 침윤성 환자군에서 높은 빈도로 관찰됐다. 이러한 변이는 세포 주기 조절과 손상 복구 시스템을 무력화해 세포 증식을 가속화하고, 암세포가 주변 조직을 파고드는 침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사체와 단백체 분석에서는 상피 세포가 더 이동성이 높은 간엽 세포 성질로 바뀌는 상피 간엽 전환과 TGF-β 신호 경로가 활발히 작동하는 패턴이 확인됐다. 상피 간엽 전환 경로가 활성화되면 세포 간 접착이 느슨해지고 이동성이 커져 암세포가 혈관과 림프관을 타고 퍼질 위험이 커진다. 동시에 TGF-β 신호는 종양 주변 면역세포의 기능을 떨어뜨려 면역계의 감시를 회피하게 만들기 때문에, 면역항암제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신호축으로 꼽힌다. 연구팀은 이러한 분자 경로들이 침윤성 간암에서 동시에 강화돼 치료 저항성과 전이 위험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면역환경 분석에서는 조절 T세포, 이른바 Treg의 침윤이 특히 두드러졌다. Treg는 본래 자가면역 반응을 막기 위해 과도한 면역 반응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지만, 종양 조직에서는 반대로 항암 면역을 억누르는 세포로 작용한다. 연구진은 침윤성 간세포암 조직에서 Treg 비율이 높아져 면역 억제적 종양미세환경이 형성되고, 이로 인해 PD-L1을 표적으로 하는 면역항암제가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된다고 분석했다. 즉 CT·MRI에서 침윤성이 강하게 관찰되는 종양일수록 내부에서는 Treg 중심의 면역억제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침윤성 간암을 특징짓는 유전자 시그니처를 도출했다. 전사체 데이터에서 침윤성 환자군에서 공통적으로 높게 발현되는 유전자 묶음을 추려낸 뒤, 이를 외부 독립 코호트에 적용해 재검증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면역항암제 3상 임상시험인 IMbrave150 코호트를 포함한 5개 독립 코호트에서 분석한 결과, 연구팀이 정의한 침윤성 유전자 시그니처를 많이 가진 환자일수록 생존율이 낮고, 면역항암제 반응도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해당 시그니처가 간세포암 환자의 예후 예측 및 치료 전략 수립에 활용 가능한 분자 지표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침윤성 간세포암에 대한 연구는 주로 CT와 MRI에서 보이는 형태학적 특징과 간 기능, 나이, 바이러스 감염 여부 같은 임상 요인을 바탕으로 예후를 추정하는 수준에 머무른 경우가 많았다. 영상 정보를 정량화한 방사선유전체학 시도는 있었지만, 유전체와 단백체, 면역세포 구성을 함께 엮어 분석한 사례는 제한적이었다. 이번 연구는 영상으로 관찰되는 침윤성 형태와 암세포 내부의 유전자 변이, 단백질 발현, 면역미세환경 사이의 연계를 한 번에 제시했다는 점에서, 간암 분야 정밀의료의 기초 자료를 확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적으로는 간세포암 치료에서 면역항암제와 항혈관신생 표적치료제 조합이 일종의 표준 스키마로 자리잡은 상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PD-1·PD-L1 억제제를 중심으로 한 병합요법이 잇달아 승인됐고, 아시아권에서도 B형 간염과 C형 간염 관련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면역항암제 활용 범위를 넓히는 임상시험이 활발하다. 그러나 진단 시점에서 면역항암제 비반응군을 골라 내거나, 오히려 항암제가 독으로 작용할 수 있는 환자를 배제할 수 있는 명확한 바이오마커는 아직 부족하다. 이번에 제시된 침윤성 영상형과 유전자 시그니처는 그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후보 도구로 주목받을 수 있는 지점이다.  

 

연구 성과는 실제 진료 전략에도 변화를 예고한다. 전홍재 교수는 침윤성 종양을 영상 판독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구분하면, 고위험군을 조기에 식별해 면역항암제 단독 또는 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 병합요법 선택 여부를 보다 정밀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에는 침윤성 간암 환자에서 Treg를 겨냥하는 면역조절제나 TGF-β 억제제, 상피 간엽 전환을 막는 표적치료제 등을 병용하는 새로운 조합 전략 연구가 뒤따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침윤성 유전자 시그니처를 임상 현장에서 바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추가 검증 작업이 필요하다. 다양한 인종과 기저 간질환을 가진 환자군에서 동일한 예측력이 유지되는지, 간이식이나 국소치료를 병행하는 경우에도 적용 가능한지 등을 평가해야 한다. 비용과 검사 시간 측면에서 병원 정보시스템과 연계된 고속 유전체 분석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면역억제성 종양미세환경을 직접 겨냥하는 신약 개발 역시 병행돼야 한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지원사업,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추진하는 글로벌의사과학자 양성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간질환 분야 국제학술지인 임상분자 간학 최신호에 게재됐다. 간암 치료 패러다임이 면역항암제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영상과 유전체, 면역환경을 한 번에 연결한 이번 연구가 실제 치료 선택지를 어떻게 재구성할지 의료계와 산업계의 관심이 향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러한 예측 기술이 간암 치료 시장에서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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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차병원#침윤성간세포암#면역항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