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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 수요 급증”…뇌사 장기기증, 한국 이식의료 지탱

전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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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 상태에서 이뤄지는 장기기증이 국내 이식의료 시스템을 지탱하는 핵심 축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내 환자들은 인공장기와 첨단 의료기기의 도움을 받지만, 실제 생명을 연장하는 최종 치료 수단은 여전히 타인의 장기이식이다. 이식 대기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가운데, 한 20대 청년의 결정이 장기이식 시스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 달 18일 이대서울병원에서 뇌사 장기기증이 진행돼 3명의 중증 환자가 새 생명을 얻었다고 11일 밝혔다. 기증자는 부천 제일시장 트럭 돌진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23세 청년 문영인 씨로, 심장과 폐, 간을 별도의 수혜자에게 이식하는 절차가 이뤄졌다. 의료진은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장기 기능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집중 치료를 이어갔고, 가족 동의 이후 뇌사 평가와 장기 적합성 검사, 수혜자 매칭까지 이식의료 표준 프로토콜에 따라 신속하게 진행했다.

뇌사 장기기증 과정은 고도의 중환자의학과 이식외과 기술이 결합된 의료 절차다. 장기기증이 결정되면 의료진은 혈압과 산소포화도, 체온을 정밀하게 유지해 심장과 폐, 간 등 주요 장기의 기능 저하를 최소화한다. 동시에 장기 상태를 평가하는 영상검사와 혈액검사가 반복 실시되며, 각 장기별로 면역학적 적합성을 따져 수혜자를 선정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 장기이식 관리망에 등록된 이식대기자 데이터와 연계돼, 혈액형과 조직적합도, 긴급도 등을 기준으로 수혜자가 정해진다. 특히 심장과 폐 같은 고난도 장기는 수술 시간과 이송 시간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어, 이식센터 간 협업과 수술 스케줄 조정, 장기 운반 동선까지 초단위로 맞추는 의료정보 시스템이 가동된다.

 

부천 제일시장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는 장기기증이 첨단 의학의 성과이면서도, 동시에 가족의 윤리적 결정에 기대는 구조라는 점을 다시 부각했다. 문영인 씨는 아버지 생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시장을 찾았다가 트럭 돌진 사고에 휘말렸고, 병원 이송 후에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뇌사 판정을 받았다. 의료진은 3일을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고, 가족은 그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기기증에 동의했다. 결과적으로 문 씨의 심장과 폐, 간은 각기 다른 3명의 환자에게 이식돼 생명을 이어가는 기반이 됐다.

 

문 씨의 사례는 이식의료가 생물학적 기술뿐 아니라 가족의 선택과 사회적 인식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기도 부천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선천적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재활치료와 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학교생활과 일상 활동을 이어 왔다. 평소 밝고 친절한 성격으로 알려졌고, 친구들과 커피와 빵을 만드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카를 품에 안고 냄새를 오래 기억하고 싶어 손을 씻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한 인물이었기에, 가족에게 장기기증 결정은 고통스러우면서도 그의 성격을 떠올리게 하는 선택이 됐다.

 

뇌사 장기기증은 국내에서 법적·의학적으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뇌사 판정은 일정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신경학적 검사와 보조 검사를 통과해야만 인정되며, 이후에도 유가족 동의가 있어야 장기적출이 가능하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이 과정에서 뇌사자 관리, 가족 상담, 이식센터 간 조율을 전담하며, 장기 손상 최소화와 이식 성공률 제고를 위한 표준지침을 운영한다.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심장·폐 이식 생존율이 높아지고, 수술 후 면역억제제 조절 기술이 정교해지면서 장기기증은 말기 장기부전 환자에게 사실상 유일한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아 가는 추세다.

 

그러나 첨단 이식의학 인프라와 별개로, 장기기증 동의율은 여전히 수요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는 만성 심부전, 폐섬유화, 간경변 등 말기질환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공여자 확보가 부족해 대기기간이 길어지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해외 주요국은 생전 등록제, 장기기증 인식 캠페인, 유가족 심리 지원 시스템을 확충해 기증 문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흐름이다. 한국 역시 뇌사 기증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 투명한 배분 시스템, 이식 성과 데이터 공개를 통해 이식의료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는 단계로 보인다.

 

유가족의 메시지는 데이터와 제도 중심으로 논의되기 쉬운 이식의료의 인간적 얼굴을 보여준다. 어머니 최서영 씨는 영인이를 천사라고 표현하며 하늘나라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펼치길 바란다고 전했다. 어딘가에서 아들의 심장이 뛰고 있다고 믿으며 더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은, 국내 장기이식 시스템이 단순한 의료서비스를 넘어 생명 나눔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부천 사고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도, 그 안에서 생명 나눔을 실천한 기증자와 유가족에게 감사의 뜻을 밝혔다. 그는 유가족의 사랑이 다른 생명을 살리는 희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인공장기, 바이오프린팅, 재생의학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당분간 이식의료의 핵심은 실제 장기기증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사회 전반에서 생명 나눔에 대한 공감대가 얼마나 확산되느냐가 향후 이식의료와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전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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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기조직기증원#뇌사장기기증#장기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