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NA서 AI로 유방암 검진 재정의…루닛, 연구초록 14편으로 존재감 부각
의료 인공지능 기술이 영상의학 진단 패러다임을 다시 짜고 있다. 국내 의료 AI 기업 루닛이 세계 최대 영상의학 학회인 RSNA 2025에서 유방암 검진과 폐질환 진단, 치료 반응 예측까지 포괄하는 14편의 연구초록을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 공략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다수의 연구가 주요 구연 발표 세션에 배정되면서, AI가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판독 방식과 암 검진 전략 자체를 바꾸는 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루닛은 30일부터 내달 4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북미영상의학회 2025에서 자사 AI 의료영상 분석 솔루션을 활용한 연구초록 14편을 발표한다. 이 가운데 8편이 학회의 주요 연구 성과로 꼽히는 구연 발표로 채택됐다. RSNA는 영상의학 분야에서 학술적 영향력이 가장 큰 학회로, 구연 선정 자체가 기술력과 임상 현장 기여도를 방증하는 지표로 받아들여진다.

구연 발표의 상당수는 상용 AI 알고리즘 간 성능 비교와 판독 워크플로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네덜란드 유방암 검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4개 상용 AI 알고리즘의 디지털 유방단층촬영 DBT 판독 및 유방암 검출 성능을 비교한 연구, 7개 상용 AI 알고리즘의 유방촬영술 기반 검진 선별 성능을 비교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실제 국가 검진 환경에서 상용화된 여러 솔루션을 한 데이터셋 위에서 직접 비교해, 알고리즘별 민감도와 특이도, 판독 효율 개선 정도를 정량적으로 제시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의사결정 과정에 미치는 영향도 집중 조명된다. 루닛은 AI가 전문의의 판독 결과뿐 아니라 시선 이동 패턴과 판독 시간 등에 어떤 변화를 유발하는지 분석한 연구를 발표한다. AI가 의심 병변 후보를 제시해 재검토를 유도하는지, 혹은 오히려 과도한 신뢰로 인해 특정 부위를 간과하게 만드는지 등 작업 환경 차원의 영향을 계량화한 것이다. 학회에서는 이 결과를 두고 AI를 보조 도구로 활용하는 최적의 UI 설계와 판독 프로토콜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유방암 검진 패러다임 전환을 다룬 연구도 구연 세션에 배치됐다. 전통적으로 두 명의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각각 판독하는 이중 판독 방식에서, AI를 한 축으로 통합한 이중 판독과 더 나아가 AI 통합 단일 판독 구조로 전환했을 때 검출율, 위양성률, 판독 소요 시간 등 핵심 지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검증했다. 병원과 국가 검진 프로그램 입장에서는 인력 부담과 비용 구조를 동시에 좌우하는 문제여서, 정책·제도 논의의 근거 데이터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흉부 엑스레이 영역에서는 기흉 검출 성능 비교 연구가 진행된다. 여러 상용 AI 소프트웨어를 동일한 흉부 영상 데이터에 적용해 기흉을 얼마나 정확하게 탐지하는지, 크기가 작은 기흉이나 복잡한 병변이 동반된 사례에서 민감도가 얼마나 유지되는지 등을 분석한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의 신속한 기흉 발견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의 AI 정확도 향상은 의료진 업무 부담 경감과 환자 예후 개선 둘 다에 직결되는 과제로 꼽힌다.
유방 밀도와 유방암 위험도 분석을 결합한 연구도 눈길을 끈다. 루닛은 유방 밀도를 활용한 고위험군 추정치와 기존 임상 위험 예측 모델 간의 성능을 비교해, 영상 기반 지표가 가족력, 연령, 과거 병력 등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모델을 어느 수준까지 보완할 수 있는지 제시한다. 또 유방 밀도 변화가 위험 예측 모델의 보정과 정확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단일 시점이 아닌 장기 추적 데이터에서 AI가 의미 있는 패턴을 포착할 수 있는지 평가했다.
영국 유방암 검진 프로그램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에서는 유방 밀도와 병리학적 예후 단계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동일한 진단 시점이라도 유방 밀도에 따라 예후가 어떤 양상으로 차이를 보이는지 규명함으로써, 향후 국가 검진에서 개인별 검진 주기 조정이나 맞춤형 추적 전략 수립에 AI 기반 영상 지표가 반영될 가능성을 타진하는 내용이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기존 위험 예측 점수가 인구집단 평균을 중심으로 작동하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된다.
포스터 발표 세션에서는 유방암 전주기 관리와 항암치료 반응 예측에 초점이 맞춰진다. 유방암 수술 후 반대측 유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암을 조기에 검출하기 위해 AI 양성 소견을 어떻게 최적화할지, 디지털 유방단층촬영에서 AI가 놓치기 쉬운 특정 유방암 아형의 특성을 어떻게 보완할지에 대한 연구가 포함됐다. 이는 민감도를 높이면서도 불필요한 재검사를 줄여야 하는 상용 제품 설계의 핵심 과제와 연결된다.
또 다른 연구는 생물리학 기반 모델과 상용 유방 밀도 평가 기반 모델을 결합해 유방암 발생 위험을 예측하는 접근법을 다룬다. 두 모델의 단독 성능을 비교하는 동시에 결합했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검증해, 단일 AI 점수보다 다층적 위험 점수가 실제 임상 의사결정에 더 유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 유방암 환자에서 재발 위험 점수를 예측하는 모델, 선행 항암치료 후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 여부를 영상 데이터만으로 추정하는 모델, 선행 항암치료 후 병리학적 완전 관해 여부 예측 모델 등도 함께 소개된다.
이들 연구는 단순한 병변 검출을 넘어 치료 전략 수립과 예후 관리로 AI 활용 범위를 확장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글로벌 제약사와 병원이 관심을 보이는 분야 역시, 특정 환자가 어느 항암요법에 더 잘 반응할지, 수술 범위를 어디까지 줄일 수 있을지 등 치료 의사결정과 연계된 AI 모델이라는 점에서 루닛의 발표는 파트너십 확대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도 해석된다.
루닛은 2021년 이후 유방암 검사용 루닛 인사이트 MMG, 흉부 엑스레이 분석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CXR 등을 앞세워 북미와 유럽 주요 병원에 진출해 왔다. 경쟁사인 미국, 유럽 기반 의료 AI 기업 역시 RSNA를 전면에 내세워 최신 성능 지표와 임상 근거를 공개하는 상황이어서, 상용 알고리즘 간 직접 비교 연구에서 우위를 점할 경우 향후 조달 입찰과 대형 병원 계약에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의료 AI를 단일 제품이 아닌 통합 플랫폼으로 제공하는 경쟁이 본격화된 상태다.
규제 측면에서는 각국 의료기기 인허가와 보험 수가 반영 여부가 상용화 속도를 좌우하는 변수로 꼽힌다. 미국에서는 FDA가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심사 가이드라인을 단계적으로 정비하고 있으며, 유럽도 의료기기 규정 MDR에 따라 AI 기반 판독 보조 솔루션의 안전성과 임상적 유효성을 강조하는 추세다. 루닛이 이번 RSNA에서 축적한 실사용 데이터와 다기관 연구 결과를 향후 규제 기관 제출 자료로 활용할 경우, 고위험군 선별이나 치료 반응 예측 분야에서도 허가 범위를 넓혀갈 여지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유방암 검진, 위험도 예측, 폐질환 진단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 기술 적용 결과를 이번 RSNA에서 공개한다며 실제 의료 현장에서 AI의 영향을 계량적으로 보여주는 연구가 다수 포함돼 있어 학계와 업계의 관심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 성과를 사업 성과와 직결시키기 위해 현장에서 글로벌 파트너와 협업 기회를 적극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루닛은 RSNA 2025에서 루닛 인터내셔널과 통합 부스를 운영해 브랜드 통합 이후 첫 통합 전시를 진행한다. 암 조기 진단부터 개인별 위험도 예측, 치료 반응 평가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AI 포트폴리오를 선보이며, 단일 알고리즘 공급사를 넘어 암 정밀의료 플랫폼 기업으로의 도약을 노리는 구상이다. 산업계는 이번 RSNA에서 쌓인 임상 근거와 글로벌 평판이 루닛의 실제 시장 확대와 수익 구조 개선으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