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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 개편 역행 우려”…제약바이오, 비대위 출범으로 공동 대응

최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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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제도 개편을 둘러싼 정부와 산업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제약바이오 업계가 범산업 차원의 비상대책기구를 꾸리며 집단 대응에 나선다.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관리를 이유로 약가 조정 폭을 확대할 경우 연구개발 중심의 산업 구조 전환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업계는 이번 기구 출범을 약가정책과 바이오산업 전략 간 균형을 재점검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24일 서울 협회 미래관 비전홀에서 긴급 이사장단 회의를 열고 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공식 결의했다. 보건복지부가 조만간 구체적인 약가제도 개편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제약바이오 업계 차원의 통합 창구를 선제적으로 마련한 셈이다.

협회와 참석자들은 정부가 준비 중인 약가제도 개편 방향이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 전략과 국정 기조에 역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약 개발과 바이오의약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초기 대규모 연구개발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가격 체계가 필수적인데, 약가 인하 중심의 개편이 추진될 경우 기업의 혁신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비상대책위원회에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외에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한국제약협동조합 등이 참여해 제약바이오 전 분야를 포괄하는 연대 구조를 만들기로 했다. 합성의약품, 바이오의약품, 수출입, 신약개발, 중소제약까지 주요 이해관계자가 모두 참여하면서 업계 의견을 하나의 목소리로 모으겠다는 구상이다.

 

비상대책위원회는 기획정책위원회, 대외협력위원회, 국민소통위원회 등 3개 분과를 중심으로 신속 대응 체계를 가동한다. 기획정책위원회는 약가제도 개편안의 세부 내용을 분석하고, 연구개발 투자와 산업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약가 조정 방식, 건강보험 재정 절감 목표, 위험 분담 구조 등 기술적 요소를 검토해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대외협력위원회는 정부와 국회, 유관 기관을 상대로 업계 입장을 전달하고 정책 대화를 조율한다. 보건복지부의 약가제도 개편 논의 과정에서 산업계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협의 채널을 다각도로 확보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국민소통위원회는 환자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개편안이 의약품 접근성, 치료 선택권, 장기적 의료비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며 공감대 형성에 나설 계획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정부가 추진 중인 약가제도 개편의 경과와 향후 일정, 제도가 시행될 경우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에 미칠 파급효과가 집중 논의됐다. 참석자들은 제약바이오강국 도약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약가가 과도하게 억제되면 혁신 신약 개발과 글로벌 진출 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우려를 공유했다.

 

업계는 특히 연구개발 투자 회수 기간이 길고 실패 위험이 높은 바이오 분야 특성상 약가 삭감이 곧바로 투자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신약 하나가 상용화되기까지 통상 10년 이상,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만큼, 가격 체계가 혁신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기업들은 임상 개발 단계 축소, 파이프라인 조정, 해외 생산 전환을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 약가제도 개편안이 발표되면 산업계가 겪게 될 연구개발 동력 약화와 투자 계획 차질을 구체적인 데이터와 사례를 통해 알릴 방침이다. 동시에 개편안의 세부 조항별로 매출 구조, 파이프라인 전략, 고용과 설비투자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해 합리적인 수정 의견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정책 방향에 대한 기본 요구도 분명히 했다. 비대위는 정부가 내놓을 약가 개편안이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만 치우치지 말고, 제약바이오기업의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적정 보상과 혁신 가치 인정에 기반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첨단 바이오의약품, 희귀질환 치료제, 혁신 신약 등에 차등적인 가격 보상 구조를 마련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국제적으로도 각국은 건강보험 재정 관리와 혁신 신약 접근성 간 균형점을 모색하는 중이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비용 효과성 평가와 성과 기반 지불을 결합하는 모델을, 미국은 약가 인하 압박과 동시에 혁신 의약품에 대한 인센티브 구조를 병행하는 추세다. 국내 약가제도 개편이 이러한 글로벌 흐름과 괴리될 경우, 국내 기업의 해외 임상 및 수출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비대위 출범을 계기로 약가를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닌 바이오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전략 변수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제약바이오산업이 고부가가치 수출 산업이자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약가제도가 연구개발 위험을 분담하고 성공 보상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정교하게 설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향후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과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산업계는 이번 비상대책위원회가 단기 대응을 넘어 중장기 약가 정책 논의 구조를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최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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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제약바이오협회#약가제도개편#비상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