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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랩바디 기술이전 본격화…에이비엘바이오, 릴리 자금으로 이중항체 가속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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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항체 플랫폼 기업 에이비엘바이오가 미국 일라일릴리와 체결한 기술이전 및 공동 연구개발 계약이 자금 집행 단계에 들어가며 글로벌 항체 신약 개발 경쟁에서 한 단계 도약할 기반을 확보했다. 양사는 에이비엘바이오의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를 활용해 비만과 근육 질환 등 미충족 의료 수요가 큰 적응증을 타깃으로 다양한 형식의 바이오 의약품을 공동 개발하며, 국내 바이오벤처와 글로벌 빅파마 간 오픈이노베이션 모델을 확장할 사례로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이 이중항체와 항체약물접합체를 축으로 한 차세대 항암 및 대사질환 치료제 경쟁 구도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26일 미국 반독점개선법에 따른 심사 등 관련 행정절차가 마무리돼 일라일릴리로부터 기술이전 선급금 4천만 달러, 한화 약 585억 원과 지분 투자 1천5백만 달러, 약 220억 원을 수령했다고 밝혔다. 두 건을 합친 유입 자금 규모는 약 805억 원이다. 이 선급금은 그랩바디 플랫폼 기술이전 및 복수의 치료제 후보 공동 연구를 위한 초기 대가이며, 지분 투자는 파이프라인 및 플랫폼 가치에 대한 전략적 베팅 성격을 띤다.

에이비엘바이오와 일라일릴리는 에이비엘바이오가 보유한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를 활용해 다양한 모달리티 기반 치료제 후보를 도출하는 공동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모달리티는 항체, 항체약물접합체, 단백질 치료제 등 서로 다른 제형과 작용 방식을 뜻한다. 그랩바디는 서로 다른 두 항원을 동시에 인식하는 이중항체 구조를 설계하는 플랫폼으로, 하나의 분자로 두 개의 질환 기전이나 두 위치를 동시에 겨냥하게 해 치료 효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중항체는 면역세포와 암세포를 동시에 결합해 면역반응을 집중시키거나, 다른 수용체를 동시에 차단해 내성 발생을 줄이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기존 단일항체가 한 타깃만 공격하는 것과 비교하면 기전 다중 타깃팅을 통해 치료 효과를 높이고 복합요법을 하나의 약제로 대체할 여지가 있어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에이비엘바이오의 플랫폼은 이중항체 설계의 안정성, 발현 효율, 약동학 개선을 앞세워 글로벌 기업의 관심을 끌어온 것으로 평가된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번 자금 유입을 계기로 이중항체 기반 항암제뿐 아니라 비만과 근육 질환 분야로 적응증을 공격적으로 넓힌다는 전략이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확보한 재원을 바탕으로 그랩바디 플랫폼의 적용 범위를 비만과 근육 질환 등 수요는 크지만 기존 치료 옵션이 제한적인 영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비만과 근감소증 등 근육 관련 질환은 고령화와 대사질환 증가로 환자 규모가 급격히 늘고 있어 글로벌 제약사들이 장기 성장 동력으로 삼는 시장이다.

 

동시에 회사는 이중항체 면역항암제의 임상 개발 전략도 병용요법 중심으로 재정비하고 있다. 면역관문억제제나 항암화학요법과 병용 투여해 반응률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다. 여러 면역 경로를 동시에 조절하는 이중항체의 특성을 활용하면 기존 단일기전 치료제만으로 한계가 있었던 난치성 고형암 대응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를 통해 글로벌 빅파마와의 추가 라이선스 아웃과 공동 개발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또한 이중항체와 항체약물접합체를 결합한 차세대 플랫폼 고도화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항체약물접합체는 특정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에 세포독성 약물을 결합해 암세포 등 표적 조직에만 독성을 집중시키는 기술로, 종양 주변 정상 조직 손상을 줄이면서도 강력한 약효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구조에 두 종류의 약물을 동시에 연결하는 듀얼 페이로드 ADC 개념을 적용해 암세포 내에서 서로 다른 기전의 항암 약물을 동시 전달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기존 ADC가 한 가지 약물만 싣는 구조에 비해 내성 극복과 치료 범위 확장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이번 계약은 규모 면에서도 눈에 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달 12일과 14일에 걸쳐 일라일릴리와 그랩바디 플랫폼 기술이전 및 공동 연구개발 계약과 지분 투자 계약을 각각 체결했다. 기술이전 계약에는 이번 선급금 4천만 달러를 포함해 총 26억2백만 달러, 한화 약 3조8천억 원 규모의 기술료와 개발 단계별 마일스톤, 판매 로열티가 포괄돼 있다. 여기에 별도의 1천5백만 달러 지분 투자가 더해지며, 플랫폼 가치를 인정받은 국내 바이오벤처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세계 신약개발 시장에서는 이중항체와 ADC를 축으로 한 플랫폼 경쟁이 이미 본격화돼 있다. 미국과 유럽 선도 제약사들은 면역항암, 자가면역질환, 대사질환 전 영역에서 복수 타깃 약물을 확보하기 위한 라이선스 인과 인수합병에 적극 나서는 추세다. 특히 비만과 근육 질환 등 대사성 질환은 대규모 장기 처방이 가능한 시장으로, 성공적인 신약이 탄생할 경우 연 매출 수조 원대 블록버스터로 성장할 수 있어 글로벌 빅파마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에이비엘바이오와 일라일릴리 간 협력이 한국 바이오 기업의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한 단계 진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단일 파이프라인 기술이전이 아니라 플랫폼 자체를 공동 연구개발 구조에 올려 다양한 파생 후보를 글로벌 파트너와 함께 개발하는 방식이어서, 성공 시 추가 마일스톤과 후속 라이선스 아웃 기회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상용화까지는 후보물질 선정, 전임상, 임상 1상에서 3상에 이르는 긴 검증 과정이 남아 있어, 시간과 리스크 관리가 관건으로 꼽힌다.

 

국내 바이오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가 글로벌 빅파마를 겨냥한 플랫폼 중심 기술이전 전략을 강화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상장 바이오기업들이 반복적인 자금 조달 대신 글로벌 제약사와의 장기 파트너십을 통해 연구개발 비용을 분담하고,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개발 기준을 적용하려는 흐름이 커질 수 있어서다. 결국 이중항체와 ADC 같은 고난도 플랫폼 경쟁이 심화될수록, 기술력뿐 아니라 협업 구조와 자본 조달 전략이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산업계는 에이비엘바이오가 확보한 자금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실제 임상 성과와 상업화 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국내 바이오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될지 주시하고 있다.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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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비엘바이오#일라일릴리#그랩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