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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표류"…위원장 지명에도 연내 정상화 난망

이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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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플랫폼을 아우르는 새로운 규제 기구인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출범 두 달 만에 위원장 지명을 받았지만, 실제 정상 가동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방송과 통신, 디지털 플랫폼을 단일 규제 틀로 묶는 이 기구는 국내 미디어·ICT 산업의 규칙을 다시 짜는 핵심 축으로 설계됐지만, 정치권 공방과 헌법 소송, 내부 규칙 정비 지연이 겹치며 초기부터 제도 공백 논란을 키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재허가·재승인 심사부터 글로벌 플랫폼 규제, 인공지능 기반 콘텐츠 관리까지 적체된 현안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 만큼, 방미통위 출범 지연이 곧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10월 1일 공식 출범했지만, 위원 위촉 지연으로 사실상 0인 체제에 머물러 왔다. 최근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위원장으로 지명되고, 대통령 몫 비상임위원으로 류신환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가 발탁되면서 첫 인선이 시작됐다. 다만 방미통위 설치법이 정한 구성 요건과 회의 정족수를 고려하면, 단기간에 정상적인 심의·의결 기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법에 따르면 방미통위는 상임위원 3명과 비상임위원 4명, 총 7명으로 꾸려진다. 회의를 열기 위해서는 재적위원 과반인 4명 이상이 참석해야 하며,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핵심 규제 의사결정은 모두 중단된다. 지금까지는 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최소한의 일반 사무만 유지해온 탓에, 방송 재허가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 플랫폼 규제 등은 한 건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변수는 정치 일정이다. 위원장은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으로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인사청문 요청서가 국회에 제출되면 후보자는 재산, 병역, 납세, 전과 내역과 함께 구체적인 직무 수행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요청일로부터 20일 안에 청문회를 열어야 하고, 이후 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거쳐 대통령 임명 절차가 진행된다. 행정·기술 규제 현안을 다루는 ICT 거버넌스의 정점 역할을 맡게 되는 만큼, 후보자의 정책 철학과 이해 상충 여부를 둘러싼 여야 공방도 예상된다.

 

청문 절차가 큰 논란 없이 마무리되고, 대통령 몫 여당 위원 2명이 동시에 임명될 경우 최소 정족수 4명은 연내 충족될 수 있다. 이 경우 방미통위는 전체 7석 중 4석만 채운 불완전 구성으로 출범하더라도, 법적 의사결정은 가능해진다. 그러나 야당 추천 몫 3명에 대한 합의가 지연되면, 기구 설계 취지였던 정치적 균형성과 다원성이 훼손된 채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뒤따를 전망이다.

 

야당은 이미 추천 거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과방위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여당 주도의 방송법 개정과 방미통위법 처리 과정을 문제 삼으며, 여당 4명·야당 3명 구도에 기초한 현 위원 구성 방식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방미통위는 여당과 대통령 추천 인사 중심의 최소 인원 체제로 당분간 버틸 가능성이 높으며, 주요 규제 결정이 정파적 논란에 휘말릴 소지도 크다.

 

법·제도 리스크도 걸려 있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방미통위 설치법이 헌법상 권력 분립과 절차적 정당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과 효력 정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가 방통위 폐지와 이 전 위원장의 자동 면직 효력을 일시 정지할 경우, 새로운 방미통위 체제 자체가 법적 다툼에 휘말릴 수 있다. 조직 존속 여부와 권한 범위가 불투명해지면, 위원회가 내리는 각종 재허가·제재 결정의 정당성도 사후 소송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운영 규칙 제정이 또 다른 과제다. 방미통위는 기존 방송통신위원회의 역할에 더해 플랫폼, 통신, 디지털 미디어 전반을 포괄하는 규제 구조를 목표로 한다. 이 때문에 위원회 의사 규칙, 심의 절차, 이해 상충 관리 원칙, 공영방송 관련 세부 규칙 등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공영방송 이사 선임 구조와 편성 독립,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조사·제재 절차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향후 규제 강도와 산업 부담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실제 현안은 이미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문제만 놓고 봐도 공백이 뚜렷하다. KBS1, MBC, EBS 등 12개 방송 사업자의 146개 채널은 지난해 말 허가 기간이 끝난 뒤, 방통위 폐지와 방미통위 출범 사이 과도기 탓에 법적 절차를 밟지 못한 채 사실상 무허가 상태로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연말에는 JTBC 등도 재승인 심사가 예정돼 있어, 위원회 구성 지연이 길어질수록 방송사들의 사업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개정 방송법에 맞춘 공영방송 지배구조 재편 역시 방미통위 심의·의결이 필요한 사안이다. KBS와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EBS 이사회는 새 법에 따라 재구성이 요구되는데, KBS는 이미 11월 26일까지 마감 시한을 넘겼고, MBC와 EBS는 다음 달 9일까지 이사진 개편을 완료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이 정치 일정과 맞물려 지연되면, 편성 독립과 경영 투명성 강화를 목표로 한 법 개정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송 이슈를 넘어 디지털 플랫폼과 ICT 규제 전반도 방미통위 정상화와 직결된다. 글로벌 앱 마켓 사업자들을 겨냥한 인앱결제 의무화 제재, 이른바 단통법 폐지 이후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를 어떻게 재정비할지에 대한 후속 고시·규칙 개정, 인공지능 기반 콘텐츠 확산에 대비한 이용자 보호 정책 등 주요 현안이 모두 위원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AI가 뉴스 추천, 콘텐츠 제작, 광고 타기팅에 깊숙이 개입하는 상황에서, 알고리즘 투명성과 플랫폼 책임을 어디까지 요구할 것인지는 ICT 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쟁점이다.

 

전문가들은 방미통위가 단순한 조직 교체가 아니라 미디어·통신·플랫폼을 하나의 규제 프레임 안에서 다루는 새로운 거버넌스 실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동시에 정치적 독립성과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규제 공백과 규제 과잉 논란이 동시에 벌어지는 이중 부담도 우려된다. 산업계에서는 재허가와 규제 심사가 늦어질수록 투자와 기술 도입 일정이 꼬일 수 있다며, 최소한의 인선과 운영 규칙이라도 조속히 확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방미통위가 언제, 어떤 형태로 정상화되느냐에 따라 디지털 미디어와 통신, 플랫폼 산업의 규칙이 다시 쓰이게 된다. 정치와 법, 기술과 시장이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제도 설계가 흔들리면 산업 전반의 신뢰도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산업계는 새 위원회가 규제 공백을 메우면서도 예측 가능한 규칙을 제시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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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김종철#이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