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국 협력 기초 훼손"…중국, 한중일 문화장관회의 취소하며 대일 압박 강화
중일 갈등이 한중일 협력 틀로 번지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을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정면 충돌한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가 참여하는 한중일 문화장관회의가 취소되면서 3국 대화 채널 전반에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20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중국 문화여유부는 지난 18일 한국 정부에 오는 24일 마카오에서 열릴 예정이던 2025 한중일 문화장관회의를 잠정 연기한다고 통보했다. 2007년 시작된 이 회의는 한중일 3국이 해마다 번갈아 개최해 온 고위급 문화협력 회의다.

중국 측은 연기 사유를 별도로 밝히지 않았지만, 중국 외교부는 취소 배경을 다카이치 총리 발언과 직접 연관 지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을 겨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일본 지도자는 공공연하게 극도로 잘못된 대만 관련 발언을 발표해 중국 인민의 감정을 상하게 했고, 전후 국제 질서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일한 3국 협력의 기초와 분위기를 훼손했고, 중일한 관련 회의의 개최 조건이 잠시 갖춰지지 못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갈등의 출발점은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언급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달 7일 일본 중의원에서 대만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이른바 대만 유사시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직 일본 총리가 대만 문제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직접 연결한 것은 처음이다.
이 발언 이후 중국은 외교 라인과 관영매체를 총동원해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와 국방부는 연일 논평을 내고 있고, 관영 언론도 사설과 해설을 통해 다카이치 총리를 겨냥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과 유학 자제를 권고하고 일본 영화 상영을 멈추는 조치를 내놓는 등 사실상 제재 성격의 대응책도 연달아 꺼내 들었다.
경제 분야에도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은 2년여 만에 재개한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이달 들어 다시 중단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일 수산물 수입 중단과 문화 교류 제한이 맞물리면서 일본 경제와 다카이치 총리 구상에 압박을 가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함께 제기된다.
정부 간 교류 채널도 흔들리고 있다. 중국 외교부 류진쑹 아주사장은 18일 비공개 조율을 위해 베이징을 찾은 가나이 마사아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내려다보는 모습을 중국 매체 카메라에 그대로 노출했다. 외교 실무진 회동 장면을 의도적으로 공개하며 일본을 향한 냉랭한 기류를 부각한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TV 계열 소셜미디어 계정 위위안탄톈도 강경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 계정은 중국이 일본을 겨냥한 실질적 반격 준비를 마쳤다며 대일본 제재와 양국 정부 간 교류 중단을 주요 수단으로 거론했다. 외교, 경제, 문화 전 영역에서 압박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이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한중일 3자 대화의 한 축인 문화장관회의가 멈추면서 향후 3국 협력 의제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미 한중일 3국은 일본이 주도해 개최를 추진해온 한중일 정상회의 일정을 조율 중이었고, 각 부문별 상설 대화 채널도 재가동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중일 관계 악화가 장기화하면 정상회의는 물론 외교, 경제, 환경 등 부문별 3자 회의도 개최 여건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중국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 정부로서도 운신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한중일 협력 틀을 통해 외교 다변화와 지역 협력을 도모해 온 만큼, 중일 갈등 장기화는 한국 외교 구상에도 직간접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다만 한국 정부는 양국 갈등과는 별개로 한중, 한일 양자 채널을 유지하며 협력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일 갈등의 불씨가 대만 문제에서 비롯된 만큼, 향후 양국 관계는 미국과 대만 정세, 동중국해 안보 환경과도 맞물려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동북아 안보와 경제를 연결하는 다자 협력 플랫폼이 흔들릴 경우 역내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외교가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대치가 어느 수준에서 조정될지가 한중일 협력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와 장관급 대화가 재개될지, 아니면 중단 국면이 이어질지에 따라 동북아 협력 구도도 재편될 수 있다는 관측이 뒤따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