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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우려 우선 검토"…우원식, 베트남 서기장에 경제협력·한반도 평화 역할 요청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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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협력과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교차하며 한국과 베트남 최고위 인사들이 연쇄 회동을 가졌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베트남 공산당과 국가 지도부에 한국 기업의 투자 애로 해소와 함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의 적극적 역할을 요청했고, 베트남 측은 제도 개선과 중재 역할 의지를 드러냈다.

 

국회에 따르면 베트남을 방문 중인 우원식 국회의장은 21일 현지시간 하노이 공산당 중앙당사에서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양국 경제 협력과 한반도 정세를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우 의장은 면담에서 먼저 베트남의 중장기 국가비전에 한국 기업들이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투자 환경 개선을 주문했다. 그는 "베트남이 세운 '2045년 선진국 달성' 목표 추진 과정에 1만여개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이어 우 의장은 베트남 에너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 기업들의 자금지원 요건 완화 문제와 첨단기술법 개정으로 인한 기업 경쟁력 약화 우려를 구체적 애로 사항으로 제시했다. 특히 베트남이 외국투자기업의 조세부담 경감을 위해 운용 중인 투자지원기금과 관련해 "투자 조건 완화 등을 통해 수혜 대상이 확대된다면 더 많은 한국 기업이 베트남 첨단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베트남이 추진 중인 첨단기술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우려를 전달했다. 우 의장은 첨단기술 기업에 부여하던 법인세와 개인 소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축소하는 방향의 개정 움직임을 언급하며 "기업 경쟁력을 악화시키지 않는 합리적, 균형적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우 의장은 베트남의 지정학적 위치와 외교적 경험을 거론하며 역할 확대를 요청했다. 그는 "남북한 모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베트남이 한반도 평화 실현에 더 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베트남이 과거 전쟁과 분단을 겪은 뒤 통일과 경제 성장을 이룬 사례라는 점을 고려할 때, 남북 간 대화와 신뢰 구축 과정에서 중재자로 나설 수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또 럼 서기장은 한국 기업의 우려를 우선 반영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는 "첨단기술법 등 한국 기업의 우려를 우선으로 검토하고, 한국인 체류 절차 완화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첨단산업 투자환경과 인력 이동 제도에서 한국 측 요구를 전향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또 럼 서기장은 한반도 관련 발언에서도 중재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당사자 간 대화 촉진을 위해 한국 등의 메시지를 북한에 잘 전달할 것"이라며 "한반도 및 세계평화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남북한 모두와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베트남이 향후 비공식 채널이나 다자무대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을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앞서 우 의장은 국가주석궁에서 르엉 끄엉 국가주석과도 별도 면담을 진행했다. 그는 르엉 끄엉 국가주석에게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가에 사의를 표하며 "한국 기업과의 대화 자리를 자주 가져 달라"고 요청했다. 양국 간 고위급 경제 협의 채널을 더욱 촘촘히 가동해 실질적인 투자 확대와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해달라는 주문이다.

 

르엉 끄엉 국가주석은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기업 활동과 관련된 기관과 한국 측이 잘 협상할 수 있도록 지시하겠다"며, 경제 현안에서 실무 협상 채널을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한반도 문제에 대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언제든 중재자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또 럼 서기장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의 중재 의지를 재확인했다.

 

우 의장은 하노이 하이테크단지 방문 일정도 소화했다. 그는 현지에 진출한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공장과 한·베 과학기술연구원 VKIST를 찾아 연구개발 협력 현황과 향후 협력 방안을 점검했다. VKIST는 한국과 베트남이 공적개발원조 재원 등 총 7천만 달러를 투입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모델로 설립한 베트남 최대 규모 연구개발 센터다. 국회는 양국 R&D 협력이 첨단 제조업과 에너지, 디지털 전환 등 신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순방에는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 양부남 의원, 문금주 의원, 이기헌 의원, 정을호 의원과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 조오섭 국회의장비서실장이 동행했다. 여야 의원들이 함께한 만큼, 베트남과의 경제 협력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국회 차원의 초당적 외교 활동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반영됐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정치권에서는 한국 기업 우려가 제도 개선 논의로 이어질 경우, 양국 경제 협력의 질적 고도화와 함께 동북아 안보 지형 속에서 베트남의 전략적 역할이 한층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회는 향후 외교통일위원회와 관련 상임위를 통해 베트남과의 경제·안보 협력 구체 방안을 점검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베트남 등 우방국과의 연대를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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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또럼#르엉끄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