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완전표시제 국회 통과…식약처, 표시대상 지정 권한 확보
유전자변형기술을 둘러싼 논쟁이 소비자 알권리 규제로 옮겨붙고 있다. 유전자변형식품, 이른바 GMO를 둘러싼 안전성 논의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국회가 완전표시제 도입의 근거 법안을 의결하면서 식품 산업 전반의 레시피와 원료 조달 구조 변화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업계는 검사 한계와 비용 부담을 들어 우려를 쏟아내고 있고, 정치권과 소비자단체는 알권리와 선택권 강화를 이유로 제도 안착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글로벌 차원에서 GMO 규제가 여전히 국가별로 갈라진 상황에서, 한국이 표시 확대 쪽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3일 국회 본회의에서 GMO완전표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보건복지위원회 대안 형태로 상정돼 가결됐다. 유전자변형식품 표시를 둘러싼 전면 개편 논의가 시작된 지 10년가량 만에 입법 절차를 넘긴 것이다. 이번 개정으로 유전자변형 원료를 사용했지만 제조나 정제 과정에서 유전자변형 DNA와 단백질이 남지 않아 지금까지는 표시 의무가 없던 식품 일부가, 식약처 지정에 따라 표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겼다.

법안을 국회에 설명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여러 의원이 각각 발의한 5건의 법률안을 통합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 의원은 식약처장이 정하는 일부 유전자변형 식품은 최종 제품에 유전자변형 DNA나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유전자변형 식품임을 표시하도록 해,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식품안전관리인증 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식약처장에게 관련 시스템 구축과 운영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국내 GMO 표시 기준은 과학적 검출 가능성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었다. 현재는 가공 후 최종 제품에 유전자변형 DNA나 단백질이 검출되지 않으면 GMO 표시 의무가 없다. 식용유, 전분당, 간장 등 고도 정제 공정을 거치는 제품은 DNA와 단백질이 분해되거나 제거돼 실험실 분석으로 GMO 여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 식품위생 규제의 전제가 돼 왔다. 이번 개정은 검출 가능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원료 사용 이력과 공정 정보를 근거로 식약처가 표시 대상을 지정할 수 있게 한 점이 가장 큰 변화다.
개정안에 따라 식약처장은 식품위생심의위원회 심의와 의결을 거쳐 특정 품목을 GMO 표시 대상으로 지정한다. 실제 품목, 표시 문구와 방식, 비의도적 혼입 허용 기준 등 세부 규칙은 향후 시행령과 고시를 통해 확정된다. 업계와 국회 안팎에서는 대두와 옥수수 같은 대표적 GMO 작물에서 출발한 식용유, 간장 등이 1차 지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원료 단계에서 유전자변형 작물이 사용됐는지를 기준으로 할 경우, 글로벌 곡물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국내 식품 산업 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식품업계는 기술 검증 한계와 비용 부담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업계는 식용유, 전분당, 간장 등은 제조 공정상 DNA와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아 GMO 여부를 실험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데도, 원료 이력만으로 표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과학적 검증과 괴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유전자분석 기반 검사법은 DNA가 남아 있어야 작동하고, 단백질 분석 기반 면역검사도 단백질이 정제 과정에서 제거될 경우 적용이 어렵다. 결국 원료 거래 단계의 서류 확인과 추적 시스템에 의존해야 해, 표시가 과학적 측정보다는 공급망 관리 결과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격과 수급 측면의 파장도 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GMO 완전표시제가 시행되면 Non-GMO 원료를 선호하는 소비자 수요가 늘어나고, 이에 맞추기 위해 식품 기업이 원료를 바꾸면 원재료 가격이 상승해 제품 원가와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글로벌 곡물 시장에서 Non-GMO 콩과 옥수수는 이미 프리미엄이 형성돼 있어, 공급 전환 시 중소 식품업체의 비용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다수 가공식품에 폭넓게 쓰이는 전분당, 식용유 등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으면, 전체 가공식품 가격 구조를 흔들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정치권과 소비자단체 쪽 시각은 다르다. GMO 완전표시제 도입 과정에서 소비자 부담을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현재 국제 흐름과 국내 여론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송옥주 의원실 관계자는 대만 등에서 이미 GMO 완전표시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운영하고 있고, 일부 우려와 달리 Non-GMO 원료를 사용하더라도 가격 차별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올리브유를 사용하는 치킨 브랜드와 카놀라유를 사용하는 치킨 브랜드 간 판매가 차이가 크지 않은 사례도 인용되는데, 유전자변형 카놀라를 원료로 한 카놀라유 사용이 실제 소비자 가격에 결정적 요인이 아니라는 논리다.
송 의원실 측은 소비자 가격 급등을 전제로 한 반대 논리는 현 시점에서 맞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개정안 구조상 식품기업이 시장 상황과 원료 수급 여건을 감안해 점진적으로 적응할 수 있고, 표시 의무가 곧바로 Non-GMO 전환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GMO 표시가 강화되더라도, 소비자는 GMO 제품과 Non-GMO 제품 간 품질과 가격을 비교해 선택할 수 있고, 기업도 수요를 보며 제품 라인업을 조정할 수 있어 시장이 균형점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전망이 깔려 있다.
정책 집행 기관인 식약처도 제도 도입의 속도와 범위를 조율하겠다는 태도다. 식약처는 이번 개정으로 인해 발생할 사회·경제적 영향을 고려해, 소비자단체와 업계와의 충분한 소통을 거쳐 GMO 표시 대상 식품과 비의도적 혼입 비율 기준을 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의도적 혼입 비율은 Non-GMO로 관리되는 원료라도 수입·보관·운송 과정에서 소량의 GMO가 섞일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해 설정하는 허용 한도로, 수치 설정에 따라 기업 부담과 소비자 신뢰 수준이 크게 달라진다.
세계적으로도 GMO 규제와 표시 정책은 여전히 국가별 편차가 크다. 유럽연합은 비교적 엄격한 GMO 표시 제도를 운영하지만, 미국 등은 안전성 심사를 전제로 표시 의무를 완화하는 추세다. 한국은 그간 검출 가능성 중심의 제한적 표시 체계를 유지해 왔으나, 이번 개정으로 유럽 쪽에 조금 더 가까운 방향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이게 됐다. 다만 표시 대상 지정과 예외 기준이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실제로 식탁에서 GMO가 사실상 사라지는 효과가 나타날지, 아니면 정보 제공 수준의 변화에 그칠지는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GMO 완전표시제 도입이 곧바로 식량안보나 농업 바이오기술 정책과 연결된다는 점도 주목한다. 유전자변형 작물은 농업 생산성 향상과 기후 변화 대응 수단으로 자리 잡아 왔고, 국내 식품기업은 상당 부분 수입 GMO 원료에 의존해 공정을 설계해왔다. 표시 강화로 소비자 수요가 변하면, 국내외 종자기업과 바이오 농업 기술 기업의 투자 전략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 반대로 소비자 신뢰를 높인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과학적 안전성 평가와 투명한 정보 제공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GMO 정책이 재정렬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결국 이번 개정은 GMO 기술 자체를 제한하기보다는,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는 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 다만 표시 문구가 과학적 사실과 소비자 인식을 어떻게 연결할지, 그리고 식품업계의 비용 부담과 소비자 가격을 어느 수준에서 조정할지가 제도 안착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산업계는 향후 하위 법령 논의 과정에서 자사 공정 특성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소비자단체는 표시 범위와 기준이 지나치게 완화되지 않도록 감시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업계는 이번 제도가 실제 시장에서 어떤 가격과 수급 변화를 초래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