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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미만막는SNS법"…레딧, 호주상대소송전 → 글로벌플랫폼규제분수령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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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가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전면 제한하는 법을 도입하면서 글로벌 빅테크와의 정면 충돌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 기반 소셜 뉴스 플랫폼 레딧이 호주 고등법원에 직접 소송을 제기하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 침해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분쟁이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한 연령 제한 규제와 플랫폼의 자기책임, 데이터 보호, 콘텐츠 표현의 자유가 복합적으로 얽힌 새로운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레딧은 최근 호주 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소셜미디어 이용 금지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요청했다. 해당 법은 10일부터 시행됐으며, 레딧을 포함한 10개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해 호주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계정 개설을 원천 차단하도록 규정한다. 각 기업은 이용자 연령을 확인하는 기술적 조치를 강제받고,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4950만 호주달러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단기간 내 강도 높은 연령확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레딧이 문제 삼는 핵심은 표현의 자유와 플랫폼 특성에 대한 고려 부족이다. 레딧은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금지법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명시했다. 토론형 커뮤니티인 레딧 특성상 정치, 사회, 기술, 과학 등 공적 의제에 대한 참여와 의견 개진이 주된 이용 형태인데, 연령 일괄 차단 조치가 이러한 참여권을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논리다. 특히 미국과 영연방 국가에서 중시되는 시민적 자유의 관점에서, 특정 연령 기준 이하 전체를 공적 토론장 밖으로 밀어내는 조치가 정당한지에 대한 헌법적 논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기술 구현 방식 측면에서 레딧은 자체 연령검증 도입에 따른 개인정보 위험을 정면으로 제기했다. 레딧 측은 성명을 통해 대다수 이용자가 성인이고 18세 미만을 겨냥한 마케팅이나 광고를 하지 않으며, 16세 미만은 주된 이용자층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자사 앱이 애플 앱스토어에서 17세 이상 등급으로 분류돼 있는 점을 들어, 연령 검증 책임을 플랫폼 내부가 아니라 앱스토어와 운영체제 단계에서 처리하는 것이 개인정보 수집과 유출 위험을 줄이는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장치·OS 사업자와 앱마켓 운영사가 연령인증과 부모 동의를 담당하고, 개별 서비스는 그 결과만 신뢰하는 구조를 선호하는 셈이다.

 

이번 논쟁은 기술 구현의 세부 설계에 따라 개인정보 보호 리스크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생체 인증이나 신분증 스캔 방식은 정확도가 높은 대신 민감정보를 대량 수집해야 하고, 휴대전화 번호 기반 인증은 통신사 데이터와 결합해 새로운 추적 가능성을 키울 우려가 있다. 반면 앱스토어 계정 연령 정보 활용은 상대적으로 데이터 범위를 줄일 수 있지만, 기기를 공유하는 가족·공용 단말 환경에서는 실제 사용자 연령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호주 법의 집행 과정에서 어떤 기술 조합을 허용할지에 따라 글로벌 플랫폼의 연령인증 아키텍처 설계 방향이 사실상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레딧은 금지대상 선정 기준의 일관성도 문제로 제기했다. 특히 16세 미만 이용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게임·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 등 일부 앱이 초기 금지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점을 꼬집으며, 실제 청소년 이용 비중과 무관하게 특정 플랫폼이 선별적으로 규제를 받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호주 정부가 금지 목록을 계속 검토 중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어떤 데이터와 지표를 기준으로 위험도를 판단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설명을 내놓지 않아 향후 법정 공방에서 알고리즘적·정책적 투명성 문제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메타도 규제의 부작용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10대가 또래와 소통하기 위해 규제 사각지대로 이동할 수 있다고 우려를 전했다. 공식 플랫폼이 일괄 차단될 경우, 연령인증이 느슨하거나 관리가 어려운 해외 소규모 앱이나 암호화 메신저, 비공식 커뮤니티로 이용이 이동해 오히려 위험 모니터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여러 국가에서 성인물·도박 콘텐츠 사이트를 차단했을 때, 우회 접속과 비인가 플랫폼으로의 이동이 증가해 통제 난도가 높아진 역효과가 보고된 바 있어, 호주의 청소년 보호 전략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호주 정부는 규제의 명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애니카 웰스 호주 통신장관은 당국이 플랫폼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들의 편에 서 있으며, 소셜미디어에서 발생하는 피해로부터 아이들을 단호히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사이버 괴롭힘, 자해·자살 관련 콘텐츠 노출, 온라인 성범죄, 중독성 알고리즘에 의한 과도한 사용 등이 이미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인식이다. 특히 플랫폼이 알고리즘과 데이터 분석을 통해 청소년의 취약성을 이용한 맞춤형 광고와 추천을 수행해 왔다는 비판 여론이 강한 만큼, 일정 수준의 강제력이 없는 자율규제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비교 관점에서 호주의 조치는 매우 강경한 편에 속한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아동 온라인 프라이버시와 유해 콘텐츠 차단을 위해 별도 법제를 운영하지만, 대체로 부모 동의와 시간대·콘텐츠 제한 등 조건부 이용 허용에 초점을 맞춰 왔다. 예를 들어 미국의 아동온라인프라이버시보호법은 13세 미만의 개인정보 수집을 엄격히 제한하면서도, 보호자 동의 하 서비스 이용 여지를 남겨둔다. 유럽에서도 디지털서비스법과 관련 지침을 통해 아동 대상 맞춤형 광고를 제한하면서, 연령 일괄 금지보다는 위험 기반 접근을 취하는 추세다. 이런 흐름 속에서 호주의 16세 미만 전면 차단은 새로운 규제 모델로 평가받고 있으며, 법적 정합성과 실효성이 입증될 경우 다른 국가의 벤치마크 대상이 될 여지도 있다.

 

다만 이번 법은 기술산업 전반의 데이터 거버넌스 구조에도 파급을 줄 수 있다. 연령인증 강제는 사실상 모든 SNS·커뮤니케이션 서비스에 추가 데이터 수집과 보관을 요구하는데, 이는 대규모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사이버 공격과 정부 정보요구에 대한 노출을 키운다. 레딧이 앱스토어·OS 차원의 인증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이 같은 데이터 집중 리스크를 분산시키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향후 호주 법원이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데이터 최소수집 원칙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향후 디지털 규제 설계의 기준이 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청소년 보호 기술과 글로벌 플랫폼 규제의 방향이 중장기적으로 갈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연령 기준 일괄 차단 방식이 정당하다고 판단되면, SNS뿐 아니라 게임, 스트리밍, 메타버스, 커뮤니티 전반으로 비슷한 모델이 확산될 수 있다. 반대로 표현의 자유 침해나 데이터 과잉수집 논리가 받아들여질 경우, 플랫폼이 위험 콘텐츠 노출 최소화를 위해 알고리즘과 콘텐츠 검열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계는 레딧의 소송이 어디까지 인정받을지, 그리고 호주식 강경 규제가 디지털 시대 청소년 보호의 표준이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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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딧#호주소셜미디어금지법#메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