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코드로 허가정보 듣는다”…식약처·부광, 장애인 의약외품 접근성 확대한다
의약외품 안전정보 제공 방식이 점자와 QR코드 기반의 디지털 정보로 확장되며 장애인의 정보 접근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세계 장애인의 날을 계기로 시각·청각장애인 단체, 제약사와 함께 치약 등 의약외품에 점자와 QR코드를 병행 표시하는 시연을 진행하며, 향후 의무화와 표준화 논의의 분기점이 될지 주목된다. 산업계에서는 모바일 기반 안전정보 제공 서비스가 고령층과 기타 취약계층으로까지 확대될 경우, 의약외품 패키징과 정보 인프라 전반의 업그레이드를 요구하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식약처는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과 함께 2023년부터 의약외품 모바일 간편검색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제품에 부착된 의약외품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의약품안전나라와 연계돼 허가사항과 사용상 주의사항 등 안전정보를 글자, 음성, 수어 영상 형태로 제공하는 구조다. 이번에는 QR코드를 활용하는 시범사업을 더해, 바코드보다 접근성과 활용성이 높은 방식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확인했다.

9일 오유경 식약처장은 치약에 점자와 음성·수어 영상 변환용 코드를 표시하고 있는 부광약품을 방문했다. 현장에서 시각·청각장애인과 함께 점자 표기 치약, QR코드가 부착된 의약외품을 직접 확인하고, 스마트폰 스캔을 통해 허가사항 등 안전정보를 조회하는 전 과정을 점검했다.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은 점자와 QR코드가 결합된 정보 제공 방식이 실제 구매와 사용 과정에서 어느 지점에서 도움이 되고, 어디에서 보완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핵심 기술적 요소는 두 가지다. 첫째는 물리적 패키징 단계에서의 점자 인쇄와 촉각 인식 설계이고, 둘째는 디지털 단에서의 QR코드 기반 정보 서비스다. 점자는 포장지나 튜브 표면에 돌출된 패턴으로 인쇄돼 내용물을 구분할 수 있게 하며, QR코드는 다차원 바코드 형식으로 의약품안전나라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된다. 사용자는 스마트폰 카메라 앱이나 전용 앱으로 QR코드를 인식해 자동으로 웹 페이지나 앱 화면으로 이동하고, 이 화면에서 음성 합성 기술을 통한 안내와 수어 영상 스트리밍을 활용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기존 텍스트 기반 라벨만 의존할 때와 비교하면, 문자 해독이 어려운 시각·청각 장애인, 노령층도 실시간으로 안전정보에 접근하기 쉬워지는 구조다.
특히 이번 시연은 기존 점자만으로는 커버되지 않던 정보 격차를 보완하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점자 표기가 돼 있어도 글자 수와 면적 제약으로 제품명과 극히 제한된 정보만 담기기 마련이다. 반면 QR코드는 허가사항 전체, 사용상의 주의사항, 부작용 신고 방법 등 방대한 안전정보를 담은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기 때문에 정보량 측면에서 기존 방식의 한계를 크게 넘어섰다. 음성과 수어 영상은 각각 시각·청각장애인의 정보 인식 채널을 직접 지원하는 형태라, 실제 사용자의 체감 효용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에서는 기술 구현을 넘어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의 구체적인 개선 요구도 이어졌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박송이 주임은 치약 포장에 표기된 점자와 QR코드를 시연하며, 포장지 어디에 QR코드가 있는지 손끝으로 바로 찾을 수 있도록 촉각 마킹을 넣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일반 엠보싱보다 점자 높이를 더 높여 가독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고, 외부 상자뿐 아니라 실제 치약 튜브 등 패키지 본체에도 점자를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용자 입장에서 제품을 손에 쥐고 바로 내용을 식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접근성이 확보된다는 지적이다.
점자 표기의 필요성을 둘러싼 인식 간극도 현장에서 드러났다. 박 주임은 전체 시각장애인 중 점자 활용 비율이 약 10퍼센트에 그친다는 이유로 점자 표기 도입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존재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1급 시각장애인 3만여 명 가운데 상당수가 점자를 실질적인 정보 획득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 권리는 법적 의무 수준에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점자가 없어도 스마트폰 음성 인식과 카메라를 활용해 어느 정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중복 가능층과 달리, 최중증 장애인은 점자가 사실상 유일한 독립적 식별 수단이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 측에서는 QR코드를 통한 정보 접근성이 특히 높게 평가됐다. 한국농아인협회 이준행 회원은 바코드보다 QR코드가 실제 사용 과정에서 더 편리했다고 밝혔다. 바코드는 주로 숫자와 텍스트 기반 조회 시스템에 연계돼 있어 전문 앱이나 리더기가 필요할 때가 많지만, QR코드는 범용 스마트폰 카메라만으로도 인식이 가능하고, 바로 수어 영상이나 시각적 안내 화면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식약처와 업계가 협력해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등 디지털 약자, 저시력자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안전정보 제공 체계를 단계적으로 넓혀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점자와 QR코드 도입이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패키징 표준의 일부로 자리 잡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부광약품은 2014년부터 선제적으로 의약품·의약외품에 점자 표기를 도입했고, 2021년 기준 점자 표기가 있는 의약품 94개 품목 중 42개가 부광약품 제품일 정도로 비중이 크다. 현재도 일반의약품 45개, 치약 등 의약외품 10개에 점자를 확대 적용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장애인 접근성 제고가 브랜드 이미지와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제약사 전략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의약품과 헬스케어 제품의 접근성 강화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일부 국가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라벨 의무화, 고대비 색상과 가독성 높은 폰트 사용, 고령층을 위한 대형 글꼴 표기가 규제나 가이드라인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다만 QR코드를 통한 음성·수어 영상 제공처럼 장애유형별 맞춤형 디지털 서비스까지 일괄 도입한 사례는 아직 제한적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한국의 시도가 향후 글로벌 의약외품 패키지 규격과 서비스 모델에 참고 사례로 활용될 여지도 있다고 본다.
제도 측면에서는 아직 QR코드와 점자 표기가 전면 의무화되지는 않았지만, 식약처는 현장 의견을 반영한 정책 설계 방향을 시사했다. 오유경 처장은 QR코드 표기 위치와 촉각 마킹 같은 세부 요소가 실사용 편의성과 직결된다며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의무화 여부에 대해서는 장애인단체, 업계, 소비자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야 할 영역이라며,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접점을 찾아가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향후 의약외품 표시 규정 개정이나 가이드라인 제정 과정에서 QR코드, 점자, 촉각 마킹을 포함한 통합형 정보 제공 체계를 검토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데이터와 윤리 관점에서 보면, QR코드 기반 정보 제공은 개인 데이터 수집을 최소화하면서도 공공 안전정보를 확장할 수 있는 구조로 평가된다. QR코드 자체에는 제품 식별 정보만 담고, 상세 내용은 공공 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방식이어서, 사용자의 민감한 건강 정보가 추가로 수집·저장되지 않는 구성이 가능하다. 동시에 수어 영상, 음성 안내 등 멀티모달 정보 제공은 정보격차 해소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강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다만 향후 맞춤형 안내 기능이 더해질 경우, 개인정보보호 규제와의 정합성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도가 단기적으로는 장애인 대상 의약외품 안전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중장기적으로는 헬스케어 전반의 사용자 경험과 패키징 설계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의료·제약 업계에서 이미 디지털 헬스케어, 원격 모니터링, 환자용 앱 등 다양한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의약외품 역시 물리적 용기와 디지털 정보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제품으로 재정의될 여지도 크다는 분석이다.
오유경 처장은 치약을 비롯한 의약외품은 국민이 일상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제품인 만큼, 누구나 쉽게 안전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의약외품 안전정보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다 편리하게 제공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점자와 QR코드 기반 정보 제공이 향후 얼마나 빠르게 제도화되고, 다른 제약사와 품목군으로 확대될지 지켜보며 대응 전략을 세우는 모습이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