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이혼 소장까지 쓴다”…가정법률 플랫폼, 디지털 분쟁 촉발
인공지능 기반 가정법률 플랫폼이 국제결혼 가정의 분쟁 양상을 바꾸고 있다. 온라인 상담과 자동 서류작성, 다국어 번역 기능이 결합되면서, 배우자 일방이 손쉽게 가정폭력 신고와 이혼 소장을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이 기술이 ‘법률 접근성 확대’라는 명분 아래 빠르게 확산되는 동시에, 실제 사실관계와 다른 진술을 증폭해 분쟁을 격화시키는 부작용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외국인 배우자의 체류 자격과 양육권이 연동되는 구조에서, 디지털 법률 도구가 국제 이혼을 둘러싼 새로운 위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한 가정법률 전문 라디오 상담 프로그램에 소개된 50대 한국인 남성과 25살 연하 태국 국적 아내의 사례는 이 같은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남성 A씨는 대기업에 입사해 가계를 책임지며 50대에 국제결혼을 택했고, 태국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4살 쌍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아내는 한국어 능력시험 1급을 취득하고, 국내 적응과 육아에 성실히 참여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아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 늦은 귀가와 잦은 외출이 이어졌고, 결국 태국인 남성과의 애정 표현, 실제 주말 데이트 정황이 휴대전화 메신저 기록을 통해 확인되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A씨가 부정행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말다툼이 격해졌고, 감정적으로 아내의 휴대전화를 던진 행위가 곧바로 가정폭력 신고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아내는 온라인을 통해 확보한 다국어 법률 정보와 자동 번역 서비스, 모바일 신고 채널 등을 활용해 빠르게 피해자 진술을 정리하고, 가정법원에 임시 조치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결과 A씨는 주거지에서 퇴거 조치를 당했고, 2개월간 접근금지 등 임시 조치 하에 숙박업소를 전전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어 아내는 디지털 문서 자동작성 기능을 통해 작성된 이혼 소장을 보내며, 경제력이 있는 남편에게 수년 동안 폭언과 가정폭력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재산의 50퍼센트 분할을 요구했다.
가정법률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AI 문서작성 기능은 사용자의 키워드 입력과 선택형 문항 응답만으로 이혼 소장 초안을 생성한다. 폭언, 통제, 경제적 학대, 상습 폭행과 같은 표현이 추천 문구 형태로 제시되고, 사용자는 이에 동의하거나 일부를 수정해 제출 문서를 완성한다. 법률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배우자도 모국어로 상황을 설명하면, 자동 번역과 자연어 처리 기술이 한국어 법률 서식에 맞춘 문장을 출력해 주는 구조다. 특히 가정폭력 관련 서류에는 휴대전화 파손, 소리 지르기, 밀치는 행위 등 세부 유형이 카테고리별로 정리돼 있어, 실제로 발생한 단일 사건이 ‘장기간 반복된 폭력’ 양상으로 포장될 위험도 제기된다.
법조계는 이러한 디지털 도구가 폭언과 물건 파손, 신체적 폭력을 포괄해 가정폭력으로 보는 현행 법체계와 결합할 때, 일시적 충돌 상황이 과장된 법률 리스크로 비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상담에 참여한 한 변호사는 남편이 아내의 휴대전화를 던진 행위만으로도 임시 조치 요건이 충족된다고 쓴소리를 하면서도, 애정 표현과 실제 데이트 정황만으로도 아내 쪽이 명백한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문서가 이 같은 맥락을 충분히 담지 못한 채 ‘가해자 대 피해자’ 이분법으로 사안을 구조화하면,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기각되는 국내 판례 흐름과 충돌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재산분할 자동 계산 기능은 갈등을 키우는 도구로 작동할 여지도 있다. 다수의 플랫폼은 입력된 자산 총액, 혼인 기간, 자녀 수 등을 기반으로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분할 비율을 추천한다. 그러나 혼전 취득 재산인 특유재산은 원칙적으로 분할 대상이 아니고, 혼인 기간이 짧고 남편이 외벌이로 가계를 유지해 온 경우 분할 비율이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인 법리다. 그럼에도 알고리즘이 사실상 ‘50대 50’을 디폴트 값에 가깝게 추천하면, 사용자는 자신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고 오인할 소지가 있다. 전문 변호사는 이번 사례에서 아내의 50퍼센트 요구를 무리한 주장이라고 해석하며, 실제 소송 결과는 알고리즘 산출값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결혼 가정에서는 F6 결혼이민 비자와 같은 체류 자격 문제가 AI 가정법률 도구와 맞물리며 또 다른 변수가 된다. 혼인 파탄 시 결혼이민 비자는 연장 자체가 어려워지는데, 국내 법원과 출입국 당국은 혼인 파탄 사유와 책임 소재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외국인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명백할 경우 비자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는 반면,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해서는 보호 차원에서 별도의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일부 외국인 배우자가 체류 연장을 위해 양육권과 가정폭력 피해자 지위를 강하게 주장하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AI 기반 법률 상담과 문서 자동작성 기능이 이 같은 전략을 손쉽게 실행할 도구로 제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 파급력과 함께 제도적 보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가정법률 분야를 겨냥한 AI 서비스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북미의 일부 리걸테크 기업은 이혼 조정, 재산분할, 자녀 양육권 합의 과정을 자동화하는 플랫폼을 구독형 서비스로 제공하며, 챗봇 기반 협상 시뮬레이션과 결과 예측 모델을 결합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민법과 가정법을 통합 지원하는 디지털 상담 도구가 확산 중이다. 국내에서도 스타트업과 대형 로펌이 협업해 다국어 이혼 소장 템플릿, 가정폭력 진술서 자동작성, 비대면 조정 신청 등 기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관계 검증과 책임 소재 판단을 AI가 수행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점에서, 알고리즘 출력이 ‘사실에 부합하는 진술’로 오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규제 측면에서 보면, 현행 법체계는 의료와 금융 분야 소프트웨어에 대해선 별도의 허가와 인증을 요구하면서도, 가정법률 AI 도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심사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 규제는 엄격해졌지만, 민감한 가정폭력 피해 진술과 불륜 정황, 의료·재산 정보가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AI 학습에 활용될 수 있는 구조에 대한 명시적 제한은 부족하다. 알고리즘이 편향된 사례를 반복 학습해 특정 성별, 국적, 연령대 사용자에게 일관되게 불리한 전략을 권고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이를 검증하고 교정할 제도적 장치는 미비한 상태다. 업계 일각에서는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사전 인증 제도처럼, 가정법률 AI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투명성·책임성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향후 국제결혼 가정에서 디지털 법률 서비스의 실사용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면서도, 기술 도입 속도에 비해 법률·윤리·이민 정책 논의는 뒤처져 있다고 평가한다. 한 가정법학 연구자는 가정폭력 신고와 이혼 소장 작성 과정에 AI가 깊숙이 개입할수록, 사건 초기 단계에서부터 타협과 조정의 여지가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산업계는 AI 기반 가정법률 플랫폼이 실제로 분쟁 비용을 줄이고, 취약계층의 법률 접근성을 높이는 도구로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는 한편, 허위·과장 진술과 체류 전략에 악용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보완할지에 대한 논의에 나설 필요가 커지고 있다. 결국 가정법률 AI 기술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윤리, 산업과 제도 간 균형을 맞추는 새로운 규범이 전제 조건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