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A 무기 수입 27%”…이재명 순방지, K-방산 핵심 시장 부상
무기 수입 다변화를 추진하는 중동·북아프리카 국가들과 한국 방위산업계가 맞붙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동·북아프리카 순방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 지역이 K-방산의 핵심 수출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합작법인 설립과 현지생산 등 전략적 협력 모델을 둘러싼 물음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3일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중동 주요국의 방위산업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 동안 전 세계 무기 수입의 27%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세계 10대 무기 수입국 가운데 카타르 3위, 사우디아라비아 4위, 이집트 8위, 쿠웨이트 10위 등 4개 국가가 이 지역에 포함됐다.

국방비 추세도 가파르다. 보고서는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국방비가 2024년 2천206억 달러로 전 세계 국방비의 약 9.5% 수준이라며 전년보다 15.6% 늘어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2020년대 후반까지 연평균 최소 국내총생산 대비 3%씩 늘어나 2029년에는 2천558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진은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교전, 이란의 미사일 공격 등 최근 갈등이 잇따르며 역내 안보 불안정이 커진 점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2023년 10월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발발과 2024년 이스라엘-헤즈볼라 교전, 이란과의 미사일 공격 등으로 중동 국가들의 국방비 지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변화는 무기 수입처 다변화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에 대한 무기 수출에서 미주 비중은 2019년 77.1%에서 2024년 52.2%로 낮아졌다. 반면 같은 기간 아시아 비중은 9.5%에서 18.3%로, 유럽 비중은 11.5%에서 27.0%로 각각 상승했다. 미국이 여전히 최대 공급국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중동 국가들이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아시아와 유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이 흐름 속에 한국 방산 수출도 빠르게 증가했다. 한국의 대중동 무기 수출 규모는 2019년 2억4천106만 달러에서 2024년 7억4천748만 달러로 3배 이상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미국이 다수 중동 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최대 공급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동 지역이 무기 공급처를 다변화하면서 아시아에서의 수입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현지 시간 기준으로 국빈 방문한 아랍에미리트는 이런 변화의 중심에 선 국가로 꼽힌다. 보고서에 따르면 UAE는 역내 국방비 지출 2위 국가로, 2023년 국방비 지출은 전년보다 11.6% 증가한 299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꾸준한 군사력 강화 정책에 따라 UAE는 25개 국영기업을 통합한 EDGE그룹을 중심으로 방산 수출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 방산업계에서는 UAE를 단순 수출 시장이 아니라 전략적 현지화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실제로 한화는 최근 EDGE그룹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인공지능 기반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필요할 경우 합작회사 설립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도 EDGE그룹 산하 플랫폼스 앤드 시스템스와 고정익·회전익 항공기, 무인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 연구와 생산 방안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양국 정상 차원의 논의도 제조·기술 협력 단계로 나아가는 방향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18일 채택된 한-UAE 공동선언문에는 단순 무기 판매를 넘어 공동개발과 현지생산 등으로 방산 협력 수준을 높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관련 브리핑에서 방위산업 분야에 있어 양국의 완성형 가치사슬 협력모델을 구축하겠다며 이를 통해 150억 달러 이상 규모 방산 사업에서 한국 기업 수주 가능성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입은행 보고서는 UAE뿐 아니라 중동·북아프리카 다수 국가에서 노후 장비 교체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스라엘, UAE, 이라크 등 중동 6개국의 전략자산 8천440기 가운데 약 70%가 노후화 등으로 교체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한국 기업이 미국·유럽산 무기보다 가격 경쟁력과 납기 준수 능력, 무기 확장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성장 기회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수출 구조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보고서는 중동 주요국이 추진하는 현지화 전략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완제품 수출에서 벗어나 현지 기업과 합작법인을 세우고 현지에서 조립·생산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합작법인 설립과 기술 이전, 현지 인력 양성까지 포괄하는 포괄적 패키지가 있어야 경쟁국과의 각축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 뒷받침 과제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보고서는 수출 계약 체결과 이행을 위한 금융 지원, 연구개발 환경 개선, 정부 간 수출 계약 거버넌스 구축, 주요국과의 방산 협력 강화가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가 많은 만큼 정책금융과 수출보험, 정부 간 계약 체계를 연계한 지원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중동·북아프리카 순방에서 방산 협력을 주요 의제로 내세운 가운데, 정부는 향후 주요국과의 정상외교와 연계해 합작법인 설립, 공동개발, 현지생산을 아우르는 방산 협력 전략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역시 국회 차원의 제도 개선과 예산 지원을 두고 논의를 이어가며 K-방산 수출 확대를 뒷받침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