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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차·배터리 공동전략 모색”…한-EU, 기술동맹 구상→공급망 재편 분수령

송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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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헨나 비르쿠넨 유럽연합 수석부집행위원장이 서울에서 만나 반도체, 인공지능, 미래차, 배터리, 공급망을 아우르는 첨단 산업 협력 구도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기술주권과 안보,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시적 의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EU 파트너십을 단순한 통상 관계를 넘어 경제안보 동맹 수준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산업통상자원부가 전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공급망 충격이 상수로 변해가는 국제 환경 속에서 미래차와 배터리, 그리고 AI를 매개로 한 산업 생태계의 재편 방향이 이번 협의를 통해 한층 구체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측은 우선 글로벌 제조업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한 반도체 분야에서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공동의 책무로 규정하며 긴밀한 공조 의지를 확인했다. 특히 AI 연산 수요와 전기차, 자율주행차용 고성능 칩 수요가 급격히 팽창하는 상황에서, 한-EU 간 생산과 연구개발, 수급 정보 공유를 포함한 중장기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의견이 모였다. 김정관 장관은 EU가 추진 중인 데이터 공유 생태계 메뉴팩처링-X를 사례로 들며, 한국형 메뉴팩처링-X 구축 계획을 설명하고 제조 데이터의 상호 운용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공동 작업을 제안했다. 그는 산업 전반의 AI 확산이 제조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데이터와 알고리즘, 인프라를 아우르는 국제표준 협력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차·배터리 공동전략 모색”…한-EU, 기술동맹 구상→공급망 재편 분수령
미래차·배터리 공동전략 모색”…한-EU, 기술동맹 구상→공급망 재편 분수령

AI와 산업 데이터 거버넌스 논의는 곧바로 미래차와 배터리 협력 의제로 확장됐다. 양측은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기차 전환 가속, 충전 인프라 확충, 자율주행차의 통신·데이터 처리 체계에서 한국과 EU가 상호 보완적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을 공유했다. 특히 전기차 충전망과 차량-인프라 간 통신 규격, 자율주행을 위한 고정밀 지도와 주행 데이터 관리 등에서 일관된 규범이 마련되면,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글로벌 완성차와 부품 업체들의 비용 구조와 혁신 속도가 동시에 개선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는 설명이다.

 

배터리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들의 대규모 EU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유럽 역내 생산능력과 공급망 회복력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우리 측은 유럽 현지 공장에서 생산되는 첨단 배터리가 전기차 제조사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연계 저장장치 수요까지 흡수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역내 생산 배터리에 대한 수요 기반이 두텁게 형성돼야 투자와 고용, 기술 축적이 선순환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한-EU 배터리 공조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대응과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전략 속에서 전략 자산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 측은 AI 국제표준 논의와 관련해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AI 표준 서밋을 언급하며 EU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공식 제안했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서밋이 자율주행 알고리즘 검증, 차량 내 데이터 처리 기준, 사이버 보안 요구 수준을 포함한 미래차 AI 기술 규범을 논의하는 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제기된다. 표준화 우위를 확보하는 쪽이 장기적으로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커넥티드카 서비스 시장에서 규칙 제정자의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한-EU 공조가 단기 거래를 넘어 규범 동맹의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우리 측은 체코 원전 사업에 대한 역외보조금규정 조사와 EU 철강 신규수입규제안 등 통상 이슈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전달했다. 체코 원전 입찰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프랑스전력공사를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EDF가 한수원의 역외보조금규정 위반을 문제 삼으며 체코 법원과 EU에 이의를 제기한 상황이어서, 산업·에너지·통상 이슈가 복합적으로 얽힌 양상이다. 산업계에서는 반도체, 미래차, 배터리 협력이 심화될수록 규제와 통상 갈등을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메커니즘의 필요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자동차 산업 전문가들은 한-EU 간 협력이 미래차와 배터리 기술에서 규범과 표준, 데이터 인프라까지 포괄하는 구조로 확장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한 축의 기준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전기차 전환과 자율주행차 상용화, 탄소중립 이행 속도는 결국 안정된 공급망과 예측 가능한 규범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양측의 논의가 향후 10년 자동차 산업 지형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송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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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김정관#헨나비르쿠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