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형 홀추력기 띄운 KAIST 누리호4차, 군집위성 경쟁점 될까
전기로 움직이는 차세대 우주추진 기술이 국내 소형위성 산업의 판도를 바꾸려 한다. 한국과학기술원 KAIST가 개발한 초소형 홀추력기 시험위성 K-HERO가 누리호 4차 발사체에 실려 우주 검증에 나서면서다. 업계는 이번 발사를 민간주도 발사 시대 개막과 동시에, 초소형 전기추력기 상용화를 가르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연비가 뛰어난 전기추력기가 군집위성 운용의 핵심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국내 원천 기술을 실제 궤도에서 검증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 의미가 쏠린다.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최원호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큐브위성 K-HERO는 27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는 누리호 4차 발사체에 탑재돼 저궤도에 투입된다. 누리호 4차 발사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은 민간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처음으로 주관하는 민간주도 발사로, 국내 우주산업 체계 전환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주 탑재체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와 함께 산학연이 제작한 12기의 큐브위성이 동시 탑재되며, 그 중 하나가 전기추력 실증 임무를 맡은 K-HERO다.

K-HERO는 KAIST 홀추력기 시험위성이라는 이름 그대로, 150W급 초소형 위성용 홀추력기 성능을 실제 우주환경에서 검증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가로와 세로 10센티미터, 높이 30센티미터, 무게 3.9킬로그램의 3U 표준 큐브위성 규격을 따르며, 발사체와의 기계적 안정성, 전기 규격, 인터페이스 설계 조건을 충족하도록 구성됐다. 이번 비행은 설계와 핵심 부품의 우주환경 내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기초위성 단계로, 본격적인 비행모델 개발을 위한 필수 관문이다.
홀추력기는 전기추진기 일종으로, 흔히 전기로 움직이는 우주용 엔진에 비유된다. 화학로켓이 연료를 짧은 시간에 많이 태워 큰 추력을 한 번에 내는 방식인 데 비해, 홀추력기는 전기를 이용해 제논 같은 기체를 플라즈마 상태로 이온화한 뒤 이를 고속으로 분출해 긴 시간 동안 조금씩 힘을 내는 구조다. 추력 그 자체는 작지만, 연료 효율이 매우 높아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추진제 양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최원호 교수팀이 개발한 150W급 초소형 홀추력기는 여기에 더해 30W 수준의 저전력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돼, 수십 와트급 전력만 사용할 수 있는 초소형위성에도 탑재가 가능하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홀추력기 기술은 이미 20년에서 30년 이상 대형 정지궤도 통신·방송 위성과 미국 NASA, 유럽 ESA의 심우주 탐사선에서 검증된 바 있다. 다만 그동안은 추력기 자체 크기와 전력 요구량이 커서 수톤급 대형 위성에나 적용할 수 있었고, 소형위성에는 현실적으로 도입이 어려웠다. 최근 들어 위성 플랫폼 소형화와 전력전자 기술 고도화가 맞물리면서 소형·초소형 전기추력기 기술 개발이 세계적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수천기 규모 군집위성을 운영하는 스페이스엑스 스타링크 위성군이 궤도 유지와 충돌 회피에 전기추력기를 적극 활용하면서, 고효율 전기추력기는 군집위성 시대의 필수 탑재장비로 인식되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유럽, 미국, 일본의 전기추력기 전문 기업들이 수백 와트급부터 수 킬로와트급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내놓으며 상용 위성에 적용해 왔다. 초소형위성 시장에서도 미국, 유럽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수십 와트급 홀추력기, 이온추력기 상용 제품이 등장해 스페이스엑스, 원웹 등과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대형 위성 중심으로만 전기추력 기술 개발이 이뤄져 소형위성·큐브위성급 전용 추력기 상용 사례는 없었다. 이번 K-HERO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이유도 초소형 홀추력기를 국내 기술만으로 설계, 제작하고 실제 궤도에서 검증하는 첫 시도이기 때문이다.
최원호 교수는 2003년 국내에서 처음 홀추력기 연구를 시작해, 플라즈마 물리 기반의 원천 기술을 쌓아 왔다. 2013년에는 KAIST 과학기술위성 3호에 200W급 홀추력기를 탑재해 실용 위성 임무에 적용함으로써 기술 성숙도를 입증한 바 있다. 이번 K-HERO에 적용된 차세대 모델은 이전보다 전력 요구 수준을 낮추고, 구조를 소형화해 3U급 큐브위성에도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개발 과정에는 최 교수팀이 실험실을 기반으로 설립한 창업기업 코스모비도 참여해, 우주 검증 이후 곧바로 상용 제품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시장 관점에서는 저전력 홀추력기 상용화가 국내 우주 스타트업과 방산, 통신 기업의 위성 전략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저궤도 초고속 통신망 구축에 필요한 6G 통신위성, 촘촘한 군집 운용이 필요한 감시정찰 위성, 대기 상호작용이 큰 초저궤도 고해상도 지구관측 위성 등은 연료 효율과 궤도 유지 능력이 사업성에 직결된다. 연료 효율이 높은 전기추력기를 활용하면 같은 질량의 위성으로 더 긴 수명과 더 많은 기동을 확보할 수 있어, 발사 비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군집위성 비즈니스 모델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국가 전략 차원에서도 전기추력기 내재화는 의미가 크다. 위성 추진계는 수출 규제와 안전 규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분야로, 해외 의존도가 높을 경우 발사 일정과 위성 설계가 외부 변수에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특히 군용 감시정찰 위성, 심우주 탐사선 등 안보·전략 임무에 사용되는 위성의 경우 해외 부품 수급망 차단이 곧 임무 중단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국내 연구진이 설계한 홀추력기를 국내에서 직접 제작해 우주에서 검증하게 되면, 향후 군집위성 사업이나 정부 주도의 우주탐사 프로젝트에서 추진계 선택권을 넓힐 수 있다.
다만 전기추력기 우주 검증과 본격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장기간 우주환경에서의 내구성과 반복 점화 신뢰도, 플라즈마 방출이 위성 본체 전자기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뒷받침하는 장기 운용 데이터가 필요하다. 또 전기추력기 성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위성 전체 전력 설계, 궤도 설계, 임무 시나리오까지 함께 최적화해야 하기 때문에, 위성 시스템 엔지니어링 역량과 함께 표준 인터페이스를 구축하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와 제도 측면에서는 전기추력기 군집위성 확산이 우주교통관리 체계와 맞물려 논의될 여지도 있다. 다수 위성이 능동 기동 능력을 갖게 되면 충돌 회피 기동이 가능해지는 장점이 있는 반면, 궤도 상에서 예측 불가능한 궤도 변경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은 위성 궤도 수명 종료 후 의무적인 궤도 이탈과 재진입 기준을 도입하는 등 우주파편 관리 규범을 강화하는 추세라, 전기추력기 탑재 위성의 탈궤도 계획 역시 설계 단계부터 제도와 연계될 필요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원호 교수는 K-HERO 검증을 기점으로 국내 소형위성 시장 구조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본다. 그는 K-HERO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전기추력기를 탑재한 소형위성이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이번에 검증되는 홀추력기가 저궤도 군집 감시정찰 위성, 6G 통신위성, 초저궤도 고해상도 위성, 소행성 탐사선 등 다양한 임무에 활용될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KAIST 이광형 총장도 케이 히어로 발사는 KAIST 전기추력 기술을 우주에서 직접 검증하는 기회이자, 국내 소형위성 기술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외적으로 군집위성, 6G 위성통신, 우주탐사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K-HERO가 목표대로 초소형 홀추력기의 안정적 운용 가능성을 입증할 경우 국내 전기추력기 산업 생태계도 빠르게 성장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주업계는 이번 실증이 기술 검증을 넘어 실제 상용위성 프로젝트로 이어질지, 그리고 민관이 함께 추진하는 소형위성 전기추력 표준 구축 논의로 확장될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