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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용 발사체로 선회…국가우주위, 우주개발 계획 수정해 산업 재편 예고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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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용 발사체 기술이 한국 우주개발 전략의 중심축으로 올라섰다. 국가우주위원회가 기존 일회용 중심 발사체 체제를 접고, 저비용·고빈도 발사를 목표로 하는 재사용 발사체 개발을 중장기 국가계획에 공식 반영했다. 차세대 발사체 사업이 1년 넘게 표류하며 산업계 혼선을 낳았던 만큼, 이번 수정계획이 국내 발사체 기술 방향성을 다시 정립하는 분기점이 될지 주목된다. 정부는 재사용 발사체를 축으로 민간 중심 우주산업 생태계를 촉진하고, 우주과학탐사와 군정찰위성 사업을 연계해 경제·안보·과학을 포괄하는 우주 전략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우주항공청은 25일 방효충 부위원장 주재로 제4회 국가우주위원회를 열고 제4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 수정계획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국가우주위원회는 국내 우주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최고 의결 기구로, 지난해 5월 우주항공청 출범과 함께 위원장 직위가 대통령으로 격상되며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한 상태다. 이번 수정계획은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시행 중인 제4차 기본계획의 3년차 중간 점검 성격으로, 최근 급변한 글로벌 우주개발 환경을 반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핵심 변화는 발사체 전략 전환이다. 기존 기본계획은 케로신 연료를 사용하는 누리호에서 확보한 기술을 토대로,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을 적용한 2단형 차세대 발사체 개발을 전제로 했다. 수정계획에서는 이 틀을 사실상 전면 재구성해 누리호 개량과 반복발사, 차세대 발사체의 메탄 기반 재사용 발사체화를 국가 주력 방향으로 못 박았다. 소모성 발사체에서 재사용 발사체로 기술 축을 옮기겠다는 의미다.  

 

재사용 발사체는 1단 부스터 등 주요 구간을 회수해 다시 쓰는 구조로, 대당 제작비를 줄이는 대신 초기 설계·시험 단계에서 더 높은 기술 난도가 요구된다. 케로신 대비 연소 효율과 엔진 재점화 성능에서 유리한 메탄 연료를 선택한 것은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이미 검증에 나선 방향과 궤를 같이한다. 특히 한 번 발사에 수백억 원이 소요되는 대형 발사체의 경우, 재사용 횟수가 늘어날수록 발사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어 위성 군집 발사나 우주탐사 미션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방향 전환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비판에 대한 정책적 응답이기도 하다. 당시 국회에서는 글로벌 추세상 차세대 발사체를 재사용 구조로 설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충분한 기획과 위험도 분석 없이 경제성만을 내세운 졸속 추진이 산업 생태계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존 차세대 발사체 사업이 1년 넘게 공전하면서, 정부 정책을 신뢰하고 선제 투자에 나섰던 기업들이 매몰 비용을 떠안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우주항공청은 수정계획 수립 과정에서 지난 7월과 8월 전문가 회의를 잇따라 열고, 9월에는 공개 공청회를 진행하는 등 의견 수렴 절차를 밟았다. 다만 업계의 근본적 문제 제기에 비해 계획 원안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평가도 함께 나온다. 정부는 이번 수정으로 국가 주력 재사용 발사체 개발의 정책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전국 단위로 민간 중심 우주산업 생태계를 키우기 위한 뉴스페이스 펀드 등 지원사업의 제도 도입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정책 추진을 뒷받침할 재정 검증 절차도 진행 중이다. 우주항공청은 이번 계획 변경에 앞서 기획재정부에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를 요청했고, 현재 관련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 재검토 결과는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예산 당국이 재사용 발사체 개발과 관련 민간 지원 프로그램의 투자 대비 효과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향후 3년간 한국 우주산업 예산 구조가 크게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국가우주위원회에서는 발사체 전략 외에도 우주과학탐사 로드맵, 군정찰위성 2차 사업 추진 기본전략, 군위성통신체계 3차 사업 추진 기본전략 등 안건이 함께 논의됐다. 우주과학탐사 로드맵은 우주탐사가 단순한 과학 연구를 넘어 미래 핵심 산업 분야로 떠오르고 있는 점을 전제로, 2045년까지 우리 기술로 이른바 K 스페이스를 완성하기 위한 실행 전략을 담았다.  

 

우주항공청은 우주항공 5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인류 지식 확장과 우주경제 영토 확대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저궤도와 미세중력 환경 활용, 달 탐사, 태양 및 우주과학 연구, 행성계 탐사, 천체물리 등 다섯 축을 중심으로 탐사 프로그램을 집중 추진한다. 저궤도와 미세중력 플랫폼은 우주 소재, 의약, 바이오 실험 등 산업 응용과 직결되며, 달과 행성계 탐사는 장기적으로 자원 탐사와 우주 인프라 구축의 기술 기반을 마련하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안보 영역에서는 차기 군정찰위성 2차 사업과 군위성통신체계 3차 사업의 추진 전략이 제시됐다. 고해상도 정찰위성과 군 전용 통신위성은 실시간 상황 인지와 지휘통제 능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상업용 발사체 및 상용 위성통신 기술과의 민군 협력 모델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사업 효율성이 달라질 수 있다. 국가우주위원회는 이번 회의에서 민군 협력과 범부처 우주개발 정책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조율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정책 방향에 대한 메시지도 나왔다. 방효충 부위원장은 정책과 제도가 환경을 뒤쫓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를 먼저 예측하고 포용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제5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 등 차기 우주정책 수립 과정에서 제도가 환경 변화를 신속히 반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간사위원인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오는 27일 예정된 누리호 4차 발사를 언급하며 한국 위성을 한국 발사체로 쏘아 올리는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 우주개발 정책이 국민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환경 변화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업무를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우주산업계는 재사용 발사체 전환과 우주과학·군위성 로드맵이 실제 예산과 제도 설계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발사체와 위성, 지상 인프라, 데이터 활용 산업까지 아우르는 생태계 전환 속도에 따라 한국의 우주 경쟁력 위상이 결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술과 산업, 제도의 정합성이 향후 한국 우주정책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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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우주위원회#우주항공청#재사용발사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