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충돌, 국회 신뢰 훼손"...나경원·황교안 1심 벌금형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격화한 국회 물리 충돌을 두고 사법부와 정치권이 다시 맞섰다. 법원이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들에게 유죄를 선고하자, 피고인들은 정치적 항거였다고 주장하며 맞받아쳤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는 20일 오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 자유한국당 관계자 26명에 대해 모두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2019년 이른바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의 책임자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던 나경원 의원에게 벌금 2건 합계 2천400만원을 선고했다. 또 사건 당시 당 대표였던 황교안 전 총리에게는 2건 합계 1천900만원, 현재 국민의힘 원내대표인 송언석 의원에게는 2건 합계 1천15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현직 의원인 이만희·김정재·윤한홍·이철규 의원은 각각 850만원·1천150만원·750만원·55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지방자치단체장인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청남도지사는 각각 750만원과 150만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의원직 상실 요건인 국회법 위반 벌금 500만원 이상에 해당하는 인물도 있지만, 국회의원 직 상실 여부는 각각의 혐의 구성과 법률 해석에 따라 최종 확정 판결 이후 판단될 전망이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국회 자체 결정에 반한 행위라는 점을 특히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국회가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신뢰를 회복하고자 마련한 국회의 의사결정 방침을 그 구성원인 의원들이 스스로 위반한 첫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어 "분쟁의 발단이 된 쟁점 법안의 당부를 떠나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재판부는 "특히 헌법과 법률을 누구보다 엄격히 준수해야 할 의원들이 불법 수단을 동원해 동료 의원의 활동을 저지했다"고 강조하며 공권력에 대한 조직적 방해 행위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패스트트랙 충돌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대상이 아니고, 저항권 행사로도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정치적 동기를 언급하며 양형에서 일부 참작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이 사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당성을 공론화하려는 정치적 동기로 범행에 나아갔다"며 "사건 발생 이래 여러 차례의 총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며 피고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도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실형이 아닌 벌금형이 선택되면서 의원직과 지자체장 직 상실형은 피했다.
형사사건에서 선출직 공무원이 직을 잃으려면 금고 이상 형이 필요하고, 국회법 위반 사건에서는 벌금 500만원 이상이 선고돼야 한다. 재판부가 일반 형사범죄와 국회법 위반 혐의를 나눠 판단한 만큼, 피고인 개개인의 직 상실 여부는 상급심에서 다시 한 번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경원 의원은 선고 직후 법정 밖에서 기자들과 만나 재판 자체에 유감을 표했다. 그는 "정치적인 사건을 6년간 사법 재판으로 갖고 온 것에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며 "무죄 선고가 나오지 않은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법원은 명백하게 우리 정치적 항거의 명분을 인정했다"며 "더불어민주당의 독재를 막을 최소한의 저지선을 인정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오늘 판결은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항소 여부에 대해선 "조금 더 판단해보겠다"고 말을 아꼈다.
황교안 전 총리는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졌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취재진에 "끝까지 싸우겠다"고 짧게 말한 뒤 자리를 떠, 향후 항소심 대응에서 강경한 태도를 예고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이 사건은 2019년 4월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여야 물리 충돌에서 비롯됐다. 당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채이배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을 의원실에 가두고, 국회 의안과 사무실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한 혐의로 2020년 1월 기소됐다.
쟁점이 된 패스트트랙 법안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법안 등이 포함돼 있었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신속처리안건 지정을 강행하려 했고, 자유한국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단체 행동에 나서면서 국회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나경원 의원에 대해 징역 2년, 황교안 전 총리에게 징역 1년 6개월, 송언석 의원에게 징역 10개월과 벌금 200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의안 처리 방해였다고 보고 중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모든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맥락과 이후 선거를 통한 국민 판단을 고려해 벌금형으로 선을 그었다.
피고인 중 한 명이던 고 장제원 전 의원에 대해서는 올 4월 사망을 이유로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이 사망하면 형사소추가 더는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적용한 조치다.
이번 판결에 대한 정치권의 공식 반응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지만, 여야가 서로 책임 공방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국회의 물리력 동원을 처벌한 것에 의미를 두고, 국회 관행 개선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당시 패스트트랙 추진에 대한 위헌성 주장과 다수당의 일방 강행이라는 프레임을 재차 부각하며 정치재판 논란을 제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한 뒤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피고인 상당수가 항소 의사를 내비친 만큼 사건은 2심, 나아가 대법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향후 항소심에서 면책특권 범위, 국회 의사과정의 사법심사 한계, 정치적 행위와 형사책임의 경계가 다시 한번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이날 법원이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에 대해 유죄 판단을 내리면서, 국회 내 물리력 행사를 둘러싼 책임 논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치권은 향후 정기국회와 총선을 앞두고 국회 관행 개선과 정치적 책임 공방을 둘러싸고 또 한 차례 정면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