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데이터 국외반출 회의록”…정부 비공개 고수에 투명성 논쟁
고정밀 공간정보가 디지털 경제와 안보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는 가운데, 지도 국외 반출 심의 과정의 투명성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국회가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의 정밀 지도 반출 여부를 다루는 협의체 회의록 공개를 법률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정부는 안보 위협을 이유로 비공개 기조 유지를 공식화했다. 데이터 주권과 국가안보, 산업 경쟁력의 경계선에서 제도 설계 방향이 IT·플랫폼 업계를 포함한 공간정보 산업 전반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의원 시절 발의한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정부 의견에서 국토교통부는 지도 국외 반출 협의체 회의록을 비공개로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정안은 국외 반출 협의체가 작성하는 회의록을 원칙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국가안보나 민감정보에 해당하는 부분만 비식별 처리해 제한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국토지리정보원 예규상 국외 반출 협의체 회의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반출 허가 여부가 국가 안보와 산업 생태계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사안인데도, 기준과 논리, 각 부처의 입장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학계와 업계에서 지속돼 왔다. 특히 자율주행, 드론, 디지털 트윈, 국방 정찰 시스템 등 고정밀 지도 활용 분야가 급성장하면서, 반출 심사의 불투명성이 곧 국내외 서비스·플랫폼 사업자의 예측 불가능성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논쟁의 중심에는 구글의 정밀 지도 국외 반출 신청 사례가 있다. 협의체는 축척 1대 5000 수준의 구글 정밀 지도 반출 요청에 대해 여러 차례 결정을 유보해 왔다. 최근 유보 결정은 신청 서류 보완 필요를 이유로 내놓았지만, 한미 통상 마찰 가능성 등 안보 외적 요소가 심의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나 회의록이 전면 비공개인 탓에 구체적 논의 내용, 찬반 근거, 각 기관별 판단 기준은 외부에서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국토교통위원회는 검토보고서에서 개정안 취지에 긍정 평가를 내렸다. 국토위는 회의록 공개 원칙을 법률에 명시함으로써 국가안보와 국익 관련 의사 결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정부 의사 결정의 민주적 정당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비공개가 필요한 민감 정보는 부분 삭제 후 나머지를 공개할 수 있도록 설계해, 정보 보호와 협의체 내 자유로운 의견 교환, 심의의 공정성·중립성 사이에서 균형을 도모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토부는 회의록 비공개 유지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협의체 논의 과정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등에서 도출된 안보 조건의 구체적 근거와 각 부처의 정무적 판단 논리 등이 다뤄지고 있어, 이를 공개할 경우 국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정밀 지도는 군사시설 위치, 주요 기반시설의 취약 지점, 비상시 동선 정보 등과 결합할 경우 방위태세에 직결될 수 있는 만큼, 심사 과정 자체를 공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논리다.
입법 논의는 데이터센터 규제 방향과도 맞물려 있다. 개정안에는 지도를 국외로 반출하려는 자가 해당 데이터를 저장·관리하는 데이터센터를 국내에 설치하고,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보안조치를 이행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핵심 지도 데이터의 물리적 저장 위치를 국내로 한정해, 외국 서버 이전에 따른 통제력 약화를 막겠다는 취지다. 이는 글로벌 빅테크와 국내 클라우드 사업자, 위치 기반 서비스 기업들의 인프라 전략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정밀 지도 보안 관리와 국내 기업과의 규제 형평성 측면에서 국내 중심 데이터센터 운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법률에서 데이터센터 국내 설치를 직접 의무화하는 방식에는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데이터센터 운영은 보안조치 항목 중 하나로 볼 수 있어 세부 의무는 시행규칙인 국토부령에서 규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향후 기술 변화와 산업 환경에 따라 행정 규칙 차원에서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공간정보 업계에서는 협의체 회의의 전면 비공개가 유지될 경우, 지도 국외 반출 허가 기준이 언제든지 정치·외교·통상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반출 여부는 글로벌 지도 플랫폼과 위치 기반 서비스 사업자의 국내 서비스 품질, 자율주행·물류·스마트시티 프로젝트의 데이터 접근성, 국내 지도 기업의 경쟁 전략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회의록 일부라도 공개되면 정부가 어떤 위험 요소를 중시하는지, 어떤 기술적·보안적 보완이 요구되는지를 파악해 사업 계획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기대다.
한편 주요국은 디지털 지도와 위성 영상 등 지리공간 정보 관리에서 안보와 산업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군사·치안 목적의 고정밀 군사 지도를 엄격히 통제하는 대신, 상업용 지도 데이터에 대해서는 기업 활용을 폭넓게 허용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반면 한국은 고정밀 지도 반출 심사에서 안보 우려를 강하게 적용해 왔고, 이 과정이 비공개로 진행되면서 글로벌 플랫폼과의 서비스 격차 논란이 반복돼 왔다.
전문가들은 지도 데이터를 둘러싼 규제가 단순한 보안 정책을 넘어, 국내 IT 플랫폼 산업과 자율주행·드론·스마트시티 등 신산업 생태계를 좌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데이터 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은 불가피하더라도, 심사 기준과 절차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지 않으면 국내외 기업의 투자와 기술 도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산업계는 이번 공간정보관리법 개정 논의가 실제 제도화 단계에서 어떤 형태로 결론 날지, 그리고 정부가 안보와 투명성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설정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