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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냉한 하늘, 왕릉의 고요”…구리에서 만나는 한강변 가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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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냉한 하늘, 왕릉의 고요”…구리에서 만나는 한강변 가을 산책

장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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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맑은 하늘을 배경 삼아 한강변을 걷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찾던 도시의 강변이었지만, 지금은 일상과 휴식이 자연스럽게 섞인 산책길이 됐다. 사소한 산책이지만, 그 안엔 달라진 삶의 태도가 담겨 있다.

 

구리한강시민공원엔 이른바 ‘코스모스 인증샷’ 열풍이 불고 있다. 모처럼 선선한 9월의 기온과 파란 하늘 아래 걷다 보면, 넓은 강변의 코스모스 꽃밭이 그 자체로 소풍이 된다. 강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거나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올려본다는 후기가 SNS에 줄을 잇는다. “탁 트인 시야와 부드러운 바람, 그게 다인데도 오늘은 왠지 위로받는다”고 적은 시민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구리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구리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최근 지역 하천공원‧역사유적 방문율은 코로나 이전 대비 27% 늘었다. 다양한 연령층이 왕래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고, 테마별 특색 공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구리 동구릉을 찾는 이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조선을 연 태조 이성계부터 왕과 왕비 아홉 분의 능이 숲에 둘러싸인 고요한 풍경을 이룬다. “봉분 위 억새는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시간을 건너는 느낌이라”며 한 방문객이 감상했다. 고즈넉한 능원 산책로를 걸으면서, 잠시나마 세상의 소음과 분주함이 잦아드는 경험을 했다는 후기도 이어진다.

 

트렌드 연구가 김지현은 “지방 도시의 강변과 왕릉 같은 도심 속 자연·역사 공간은, 외부 여행보다 오히려 내 삶 가까이에 집중하는 새로운 휴식 방식”이라고 해석한다. 복잡한 스케줄에서 벗어나, 오롯이 ‘걷는 시간’ 그 자체에 위로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이런 한적한 휴식이야말로 요즘 최고의 힐링”, “굳이 어디 멀리 떠나지 않아도 내 곁의 계절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공감이 많다. 누군가는 “비슷한 일상이 계속되지만, 계절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라 적었다.

 

강변 산책로도, 조용한 왕릉 숲길도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어느덧 이런 ‘도심 속 소풍’이 우리 삶의 작은 사치처럼 자리잡았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매일의 순간을 나답게 살아낼 것인가일지 모른다.

장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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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구리한강시민공원#동구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