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도 가족이라지만”…노령견 간병 이혼갈등, 디지털펫케어 한계 드러나
15살 노령견을 가족처럼 돌보겠다는 아내와, 임신 계획을 더 미룰 수 없다는 남편 사이의 갈등이 온라인에서 뜨거운 논쟁을 낳고 있다. 고령 반려동물을 둘러싼 ‘가족’의 정의가 충돌하는 동시에, 펫테크와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현실과 실제 돌봄 현장의 간극도 드러난다. 업계에서는 반려동물 의료·돌봄 수요가 커질수록 원격 모니터링, AI 진단, 간병 로봇 등 기술 수요가 더해질 것으로 보지만, 정서적 의존이 강할수록 기술만으로는 갈등을 완화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결혼 1년 6개월 차 30대 남성이 “개밖에 모르는 아내와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혀 관심을 모았다. 작성자 A씨는 두 사람이 함께 사는 15살 푸들이 시력 저하와 보행 장애를 겪으면서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아내는 이를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고 고가의 반려동물 용품과 사료를 구매하는 데 생활비를 크게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갈등의 핵심은 임신 시기였다. 부부는 원래 결혼 직후 임신을 계획했지만, 아내는 “반려견이 떠날 때까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예상 수명을 고려하면 앞으로 2년에서 3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편은 이미 여러 차례 임신을 미뤄 왔다며 “결혼한 이상 배우자로서의 책임과 계획이 우선돼야 한다”고 토로했다.
남편의 고민 글에는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일부는 “퇴사와 임신 같은 중대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아내의 태도가 문제”라며 인간 가족의 생활 안정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다른 이용자들은 “남편보다 더 오래 함께한 반려견의 말기 돌봄을 당연히 존중했어야 한다”며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은 결혼 자체를 지적했다. 이 논쟁은 고령 반려동물 돌봄을 둘러싼 윤리와 우선순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기술과 제도가 충분한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려동물 헬스케어 업계에서는 이 같은 갈등이 더욱 잦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려동물 수명 연장과 만성질환 증가로 보호자의 돌봄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24시간 간병에 요구되는 시간·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기술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심박·호흡을 실시간 측정하는 스마트 목걸이형 웨어러블, 식사·배변 패턴을 분석해 이상 징후를 알려주는 AI 사료기와 배변패드, 수면 중 호흡 상태를 감지하는 센서 매트 등 디지털 펫케어 장비가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노령견·노령묘 돌봄을 겨냥한 기술이 두드러진다. 관절 질환이나 치매 의심 증상을 포착하기 위한 보행 분석 카메라, 수면 패턴을 기반으로 통증과 불안 지수를 추정하는 알고리즘, 집 안 온도·습도와 활동량을 연동해 심부 체온 이상을 간접 감지하는 솔루션이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동물용으로 변형 적용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가정에서 기술 활용도는 생각만큼 높지 않다. 고령 반려동물에 대한 죄책감과 애착이 클수록 보호자들이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내가 지켜봐야 한다”고 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자동화와 원격 모니터링을 도입하는 데 심리적 거부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번 사연 속 아내처럼 반려동물을 ‘인간 자녀에 앞선 1순위 가족’으로 인식하는 경우에는 기술을 보조수단이 아니라 ‘돌봄 역할을 빼앗는 존재’로 인식할 위험도 있다.
수의·바이오 업계에서는 사람과 동물의 의료 격차도 여전히 크다고 지적한다. 사람 의료에서는 원격 모니터링과 AI 분석이 점차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반면, 반려동물 의료는 법적 규제가 느슨한 대신 표준화와 보험 제도가 미비하다. 노령견을 위해 고가의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선택할 때, 보호자의 주관적 판단과 감정이 비용보다 우선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경제적·정서적 소진이 심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해외에서는 이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펫 어드밴스드 케어’ 서비스가 확산되는 추세다. 일부 국가에서는 수의사가 반려동물의 상태 데이터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하고, 행동 전문가와 심리상담사가 보호자에게 소진 관리와 의사결정 상담을 제공하는 통합 플랫폼이 등장했다. 인공지능이 병세 악화를 조기에 감지해 불필요한 응급실 방문을 줄이는 동시에, 보호자의 수면 시간과 이동 시간을 관리해 주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도 펫테크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이와 유사한 모델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보호자 정서에 깊이 개입하는 서비스 구조가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정착하지는 못했다. 가족 갈등과 임신·직장 문제처럼 민감한 선택 영역으로 들어갈수록, 기술 제공 기업 입장에서는 법적·윤리적 책임 논란을 우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쟁이 노령 반려동물 돌봄을 둘러싼 사회 구조와 기술의 역할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한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자는 “반려동물 헬스케어 기술이 발전할수록 보호자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여지는 커지지만, 가족의 우선순위와 삶의 계획을 조정하는 문제까지 기술이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며 “정서적 의존과 돌봄 피로를 함께 다루는 서비스 설계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노령 반려동물 수가 늘어날수록 펫케어 기술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실제 일상에 기술이 안착해 가족 갈등을 줄이는 역할까지 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기술 발전 속도와 함께, 가족과 반려동물의 관계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