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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폐로 확장하는 팀네이버 사우디와 스마트시티 금융까지 노린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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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기반 디지털화폐가 중동 스마트시티 금융 인프라의 새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의장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직접 만나 부동산 투자와 연계된 디지털화폐 협력, 데이터센터, 연구개발까지 포괄하는 협력 확대를 논의하면서다. 디지털트윈으로 시작된 팀네이버의 사우디 진출이 금융과 인프라 영역으로 번지며, 향후 글로벌 핀테크와 디지털자산 시장 구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행보를 네이버파이낸셜의 해외 확장과 디지털화폐 인프라 사업의 변곡점으로 본다.

 

네이버와 사우디 국영 통신사 SPA에 따르면 이해진 의장은 18일 현지 시간으로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시티스케이프 글로벌 2025 현장에서 마지드 알 호가일 사우디 지방자치주택부 장관을 만났다. 세계 최대 규모 건설·건축·프롭테크·부동산 전시회로 불리는 이 행사에서 팀네이버는 디지털트윈과 인공지능, 클라우드 기술을 실제 도시와 부동산 운영에 적용한 사례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회동은 팀네이버의 전시 참여를 계기로 성사됐다. 이해진 의장은 지난해 글로벌투자책임자 직함으로 사우디를 찾았지만, 이번에는 창업자이자 네이버 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전면에 나섰다. SPA는 두 인사의 만남이 지방자치주택부와 네이버 간 기존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협력 범위를 넓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네이버와 사우디의 협력 축은 우선 디지털트윈이다. 네이버는 2023년 10월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로부터 국가 차원의 디지털트윈 플랫폼 구축 사업을 수주했다. 디지털트윈은 실제 도시와 건물 정보를 3차원 가상 공간에 그대로 구현해 시뮬레이션하는 기술로, AI와 클라우드를 결합하면 교통 흐름, 인구 이동, 시설 관리, 에너지 효율을 미리 예측하고 최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마트시티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올해 5월에는 사우디 주택공사 NHC와 합작법인 네이버 이노베이션을 설립해 사우디 스마트시티 사업의 실행력을 높였다. 이 합작법인은 이미 메카, 메디나, 제다 등 3개 핵심 도시의 디지털트윈 구축을 완료한 상태다. 현재는 지방자치단체 행정 시스템과 연계해 도시계획, 인허가, 자산 관리까지 통합하는 발라디 디지털트윈 프로젝트 2단계 협력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새롭게 부상한 축은 부동산 기반 디지털화폐 협력이다. SPA 보도에 따르면 양측은 부동산 투자와 연계해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화폐 분야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디지털트윈으로 구축한 도시와 자산 정보를 바탕으로, 부동산 개발과 투자, 임대 수익 등을 토큰화해 거래하거나 정산하는 구조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부동산 물리 자산을 기초로 하는 디지털화폐나 토큰은 가격 변동성이 큰 기존 가상자산과 다른 금융 상품으로 설계될 수 있어, 중동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와 결합 시 자본 조달과 유통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여지가 있다.

 

데이터센터 협력도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사우디는 국가 차원에서 클라우드와 데이터 허브 전략을 추진 중이고, 네이버는 자체 클라우드와 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 경험을 갖춘 사업자다. 디지털트윈과 AI 기반 도시 운영, 디지털화폐 인프라를 동시에 운영하려면 대량의 데이터 수집과 처리, 저장이 필요해 데이터센터 공동 개발은 필수 인프라에 해당한다. 향후 중동 지역을 겨냥한 네이버 클라우드 거점이 사우디에 구축될지 여부도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이번 논의가 네이버파이낸셜의 글로벌 전략과 연결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네이버와 두나무는 오는 26일 이사회를 열고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 간 포괄적 주식 교환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두나무는 디지털자산 거래 인프라와 블록체인 기술을 쌓아온 사업자다. 포괄적 주식 교환이 성사될 경우 네이버파이낸셜은 디지털결제와 금융 데이터에 두나무의 블록체인, 토큰 증권, 거래 플랫폼 역량을 접목할 수 있다. 여기에 사우디 스마트시티의 디지털화폐 실증이나 인프라 구축 기회가 더해지면, 한국의 빅테크 기반 디지털금융 플랫폼이 중동에서 도시·부동산 금융 모델을 선점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사우디는 네옴을 비롯한 초대형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도시와 금융 인프라를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부동산을 기초로 한 증권형 토큰 발행과 디지털자산 규율 논의가 진전되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 신도시 전체를 디지털트윈과 디지털화폐 기반으로 엮으려는 시도는 상대적으로 이례적이다. 네이버가 사우디와 디지털트윈, 데이터센터, 디지털화폐를 묶어 패키지 형태의 기술·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경우, 한국 빅테크가 중동 디지털 인프라 수출의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해진 의장과 알 호가일 장관은 기술 협력 범위를 미래 연구개발로 넓히는 방안도 함께 논의했다. 신기술 연구개발 협력 확대와 과학·기술 분야 양국 간 인력 및 기술 교류, 공동 프로그램 추진 가능성을 주제로 협의한 것이다. 이는 단순 프로젝트 수주에서 나아가 사우디가 지향하는 디지털 경제 전환 과정에 장기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디지털화폐와 디지털자산은 각국 규제와 금융감독 체계 차이가 큰 영역이다. 부동산 기반 디지털화폐가 실제 발행과 거래 단계로 이어지려면 사우디 현지 금융 규제뿐 아니라 국제 자금세탁 방지 규범, 투자자 보호 기준 등을 충족해야 한다. 한국 내에서의 디지털자산 규율 논의와도 맞물릴 수 있어, 네이버와 네이버파이낸셜, 두나무의 규제 대응 전략이 사업 속도를 좌우할 변수로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네이버가 사우디에서 디지털트윈 중심의 도시 기술 공급자를 넘어, 데이터와 금융 인프라까지 아우르는 디지털 파트너로 역할을 넓히는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부동산 자산과 연동된 디지털화폐 모델이 사우디 스마트시티에서 상용화 단계로 나아간다면, 글로벌 핀테크와 도시 개발 시장에 새로운 레퍼런스를 제시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산업계는 이번 협력이 중동 스마트시티와 디지털금융 시장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 수 있을지, 그리고 규제와 제도 정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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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네이버#사우디아라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