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건희는 몰랐다서 알았을 것 같다로"…도이치 주포 이씨, 검찰·특검 진술 왜 갈렸다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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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주가조작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이모씨가 검찰 수사 당시와 특검 조사에서 김건희 여사의 범행 인지 여부를 두고 상반된 진술을 내놓으면서, 정치권과 법조계가 거센 파장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민중기 특별검사팀에 체포·구속된 이씨는 특검 조사에서 2010년 10월 28일과 11월 1일 진행된 통정매매와 관련해 "김 여사가 연루됐을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거래는 주가조작 일당이 문자를 주고받은 뒤 7초 만에 매도 주문이 나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른바 7초 매매로 불린다.

이씨는 같은 해 11월부터 시작된 김 여사의 미래에셋증권 계좌 매도 내역에 대해서도 비슷한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증권 계좌는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진행된 2차 작전 시기 시세조종에 활용된 계좌로 지목돼 왔다. 특검팀은 김 여사가 계좌 운용과 시세조종 구조를 어느 수준까지 인지했는지를 유무죄를 가르는 핵심 쟁점으로 보고, 결심공판 직전까지 이씨를 여러 차례 불러 조사한 뒤 해당 진술을 담은 신문조서를 재판에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이씨의 과거 검찰 진술 취지는 전혀 달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이 1차 작전 시기인 2009년 12월부터 2010년 9월까지 이정필씨가 주도한 시세조종과 관련해 김 여사의 인지 여부를 캐물었을 때, 이씨는 "김건희는 피해를 본 사람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김건희가 이정필의 주가관리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저희 바닥의 일반적 기준을 말씀드리면 일임받은 계좌주한테 거래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고 전제했다. 이어 "김건희는 통정매매인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이씨를 포함한 관련자 진술을 핵심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는 그달 17일 브리핑에서 "김건희는 그냥 상장사 대표인 권오수의 말을 믿고 매수하려는 것 같았다"는 1차 주포 이정필씨 진술을 소개했다. 또 "권오수가 뭘 부탁하면 김건희는 따지지 않고 들어주는 사이로 생각했다", "권오수가 팔아라 하면 팔았을 것"이라는 공범 민모씨 발언, "김건희는 주식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 주변 얘기나 소문 같은 것을 듣고 사달라고 하는 정도 수준"이라는 증권사 직원 진술도 함께 제시했다.

 

최근 특검팀이 김 여사의 혐의를 정면으로 문제 삼는 결론에 도달한 배경에는, 이씨 등 일부 관련자가 검찰 때와 상반된 취지의 진술을 내놓은 점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특검이 계좌 내역, 통신 기록 등 물증을 추가로 확보해 이씨로부터 보다 구체적이고 특검 측에 유리한 진술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3일 결심공판에서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 주식 거래에 대해 여러 차례 격의 없이 상의했다"며 "이씨가 주가조작에 깊이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특검 측은 김 여사가 도이치 주가조작의 전체 구조를 상당 부분 알고 있었고, 이씨는 그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한 인물이라는 취지로 공소 요지를 설명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와 대화 정황을 보여주는 카카오톡 메시지도 쟁점이 됐다. 지난해 김 여사 재판에서 공개된 2012년 10월경 메시지에 따르면, 이씨는 "난 진심으로 네가 걱정돼서 할 말 못 할 말 못 하는데 내 이름을 다 노출하면 다 뭐가 돼. 김00이가 내 이름 알고 있어. 도이치는 손 떼기로 했어"라고 남겼다. 이에 대해 김 여사는 "내가 더 비밀 지키고 싶은 사람이야 오히려"라고 답했다. 이 대화는 양측이 도이치 주식 거래와 관련해 서로 비밀을 공유한 정황이라는 해석을 낳으며 주목을 받았다.

 

반면 김 여사 측은 특검이 이씨의 추정성 발언을 부풀려 주가조작 가담을 입증하려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변호인단은 결심공판에서 "대신증권·미래에셋증권 계좌 거래의 주포는 이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며 "이씨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계좌 거래를 자신의 추측에 근거해 말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씨는 특검이 문제 삼는 2차 작전 시기가 아니라, 1차 작전 시기 김 여사의 DB증권 계좌를 관리한 인물이었던 만큼, 계좌별 역할과 시기 구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이씨가 2차 작전 시기 주포로 지목된 김모씨를 속이고 단타매매를 한 뒤 잠적하는 행적을 보였다"며 "주가조작 일당과 이해관계가 달랐다는 점에서 특검 주장처럼 공범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이씨 개인의 가담 범위를 넘어, 그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 경위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중앙지검이 도이치 주가조작 수사 과정에서 김 여사에 대한 봐주기 결론을 내렸다는 정치권 일각의 의혹이 커지자, 특검은 이를 규명하기 위한 전담 수사팀을 운영 중이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이씨가 과거 "김건희는 통정매매를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가 최근 들어 김 여사 연루 가능성을 언급하게 된 배경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보고, 조사 경위와 진술 번복 사유를 추가로 확인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2021년 중앙지검 수사에서 처음 피의자로 입건됐다. 당시 한 차례 조사를 받은 뒤 잠적해 검찰은 기소를 중지했다. 중앙지검은 2022년 그의 소재를 다시 확인해 수사를 재개했지만 이씨에 대해 뚜렷한 처분을 내리지 않은 채, 지난해 10월 김 여사 불기소와 함께 사건을 마무리했다.

 

김 여사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도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수사 재개 이후 이씨를 끝내 기소하지 않은 이유를 따져 물으며 의문을 제기했다. 특검 측은 재판부가 관련 경위를 묻자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답해 향후 추가 수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법조계에서는 이씨 진술 변화만으로 사안을 단정하기보다는 여러 변수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중앙지검 수사가 약 4년간 이어지는 동안 수사팀과 지휘부가 여러 차례 교체되면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점, 이씨가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시기에 조사받으면서 김 여사에게 불리한 진술을 내놓기 부담스러운 환경에 있었다는 지적, 이후 탄핵과 정권교체 등 정치 환경 변화 속에서 새로운 진술이 나온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여사 측은 이 같은 문제 제기에 선을 긋고 있다. 변호인단은 "이씨가 관리한 DB증권 계좌 거래와 관련해서는 자본시장법 공소시효가 이미 만료돼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일 뿐"이라며 "수사무마 의혹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이씨의 진술 신빙성과 검찰 기존 수사 판단을 정면으로 재검증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향후 재판과 추가 수사 결과에 따라 정치적 파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특검 수사와 법원 판단을 지켜보며 책임 공방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고, 특검은 김 여사와 관련된 남은 쟁점들에 대해 추가 조사를 검토할 예정이다.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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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민중기특별검사#도이치모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