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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복무 전제 지역의사제”…정부, 법제화 속도전으로 의료공백 막을까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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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하는 의사를 별도로 선발하는 지역의사제 법제화가 속도를 내면서 지역 의료 인력난 해소의 분수령이 될지 주목된다. 정부와 여당은 필수의료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 복무를 전제로 한 지역 맞춤형 인력 공급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직업 선택과 거주 이전의 자유 침해 소지, 의무 복무 이후 수도권 쏠림 재현 가능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제도 설계와 보완 논쟁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20일 전체회의를 열어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수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지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의 일부를 지역의사 선발전형으로 묶어 선발하고, 학비 등 경제적 부담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대신 의사 면허 취득 후 정해진 지역 내 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규정했다. 의무 복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을 거쳐 면허를 정지하고, 면허 정지 처분이 3회 이상 누적되면 의사 면허를 취소하는 강한 제재 장치도 포함됐다. 아울러 전문의가 특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 종사하도록 하는 계약형 지역의사제도 병행 운영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를 통해 지역의사제 선발 비율, 배치 지역, 진료과 구성 등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해 공포되면 2개월 뒤 시행되므로, 일정에 차질이 없을 경우 이르면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 지원하는 2027학년도 의대 신입생부터 적용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법안 통과 직후 지역의사제 근거 마련을 지역과 필수,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첫 걸음으로 규정하고, 지역의사들이 각 지역 의료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전폭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책 설계의 핵심은 공공의료 인력 공급 방식의 구조적 전환에 있다. 지금까지는 수도권 대형병원 중심의 수련과 수요 구조 속에서 지방 의료기관이 인력 확보 경쟁에서 근본적으로 밀리는 구조였다. 정부는 교육 단계에서부터 지역 근무를 전제로 선발해 학비를 지원하고, 이후 10년에 이르는 장기 근무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의료 수급의 축을 지방으로 이동시키려 한다.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중증질환 관련 전문과처럼 인력난이 극심한 분야에 지역의사제를 우선 배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환자단체와 시민사회는 이번 법안을 지역 의료 붕괴 대응의 사실상 마지막 카드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지방에서 응급의학과와 산부인과, 중증질환 전문의 부족으로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아 장거리 이동을 반복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지역에 살아도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역의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역 응급환자의 골든타임 내 치료, 산모와 신생아 집중치료, 암과 심뇌혈관질환의 초기 대응 등은 일정 규모 이상의 전문 인력이 상시 배치돼야만 가능하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여론도 지역의사제 도입에 우호적인 흐름을 보인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전문기관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7퍼센트는 지역의사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 의견은 13.2퍼센트,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9.8퍼센트에 그쳤다. 지역 의료 붕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지방 거주 응답자일수록 응급과 산모, 소아 등 필수의료 공백에 대한 불안을 크게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책의 실효성을 놓고는 논쟁도 거세다. 의료계는 무엇보다 강제 근무 형태의 제도가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지역의료를 살리려면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의사들이 지속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정주여건 조성이 우선이라고 강조하며, 법안 통과에 유감을 표했다. 그는 전문과별 지역 의료 인력 추계와 지역 병의원의 현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수요 예측 없이 지역의사제를 먼저 도입할 경우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의료인력 확충보다 지역 가산수가 등 보상체계 구축, 지방 의료기관 인프라 확충, 숙련 간호인력 확보 등 “근무 환경”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외 사례를 근거로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은 장학금 지원과 의무복무를 결합한 형태로 지역의사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의무 기간을 채우지 않고 이탈하거나, 의무 복무 종료 이후 대도시로 이동하는 비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경로를 밟을 경우 장기간에 걸친 지역 인력 공급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무 복무 제도로 인한 위헌 논란뿐 아니라, 공공의대와 지역전형을 통한 교육의 질 확보, 배출된 의사의 실제 배치와 경력 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지역의사제는 인력 공급량을 물리적으로 늘리는 조치인 동시에, 지역 정주여건과 의료전달체계 개선, 환자 이송 시스템 정비 등 구조적 개편과 맞물려야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법안 통과 이후 구체적인 선발 비율과 지역·전공 배분 원칙, 복무 조건과 처우 수준을 둘러싼 후속 논의가 제도의 성패를 가르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와 의료계, 환자단체, 정부 간 이견 조율 방식에 따라 지역의사제가 실제로 지역 의료 현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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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사제#보건복지부#대한의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