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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나노 발사 한 달 연기…이노스페이스, 신호 이상에 보수적 대응

전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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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우주 발사체 기술이 상업 시장 진입 단계에서부터 안전성과 신뢰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 민간 우주기업 이노스페이스가 브라질 알칸타라 우주센터에서 추진 중인 첫 상업 발사체 한빛-나노 임무가 발사 직전 점검에서 포착된 미세 이상 신호로 한 달가량 연기되면서, 신흥 민간 발사 서비스 시장의 리스크 관리 수준이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업계는 이번 조정을 단기 차질보다 장기적인 발사 신뢰도 확보 경쟁의 분기점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이노스페이스는 브라질 시간 11월22일로 예정됐던 한빛-나노의 스페이스워드 임무 발사를 12월17일로 조정했다고 21일 밝혔다. 발사 가능 시간대를 의미하는 발사 윈도우는 12월16일부터 22일까지로 재설정됐다. 민간 상업 발사체를 실제 고객 임무에 투입하는 첫 사례인 만큼, 회사는 단기 일정보다 임무 성공률과 안전성 확보에 방점을 찍은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발사 연기 요인은 브라질 공군과 공동 수행한 항전장비 점검 시험 과정에서 드러났다. 양측은 한빛-나노의 비행 환경을 모사하기 위해 항공기를 활용해 브라질 공군 지상 시스템과의 연동 시험을 진행했다. 비행 영상과 계측·항법 데이터 송신, 비행 위치 추적, 비행종단시스템 신호 수신 등 실제 발사 임무에 해당하는 전 구간 기능을 점검하는 기술 검증 절차였다.

 

시험 결과 핵심 기능 간 연동 자체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신호처리기 특정 구간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미세 이상 신호가 관찰됐다. 발사체의 항전장비와 지상관제 시스템 사이 신호 흐름에 예기치 않은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 임무 수행 중 비행 데이터의 신뢰도 저하나 비행종단 명령 오동작 같은 리스크로 이어질 여지가 있는 신호다.

 

특히 이번에 점검한 비행종단시스템은 로켓 비행이 안전 범위를 벗어나거나 이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발사를 중단하거나 비행체를 파기해 지상 안전을 확보하는 핵심 장치다. 소형 상업 발사체라도 이 시스템의 신뢰성이 떨어질 경우 주변 인구 밀집 지역과 인프라, 발사 인력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우주 선진국들은 비행종단시스템을 발사 전 최우선 점검 항목으로 두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비행종단 독립 채널 확보를 규제 수준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노스페이스와 브라질 공군은 간헐적이라도 이상 신호가 포착된 만큼, 상업 임무에 곧바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원인 규명과 보완 조치에 시간을 더 투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통신 경로 전체를 다시 진단해 어느 구간에서 왜곡이 발생하는지 분석하고, 하드웨어 노이즈나 소프트웨어 필터링 로직, 지상 수신 장비 세팅 등 복수의 원인을 검증하는 과정이 진행될 전망이다.

 

브라질 공군 측 한빛-나노 스페이스워드 임무 총괄 책임자인 호제리오 모레이라 카조 대령은 발사 일정 조정이 발사체 운용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기술 검증 절차의 연장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브라질 공군이 발사센터로서 설비와 인력, 시스템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이번 조정이 후퇴가 아니라 발사 안정성과 견고함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확인 기회라고 설명했다. 국제 발사 서비스 시장에서 브라질 발사장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전략적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이사는 예기치 못한 임무 기간 연장에 대한 유감을 표하면서도, 발사센터가 제공한 데이터 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신호 처리 시스템이 임무 신뢰성 기준을 충족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반영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항공기를 활용한 항전장비 점검 과정에서 확인된 통신 신호의 간헐적 이상 현상이 발사 임무와 공공 안전에 직결될 수 있는 만큼, 브라질 공군과 긴밀히 협력해 필요한 보완 조치를 철저히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일정 조정과 별개로 한빛-나노 발사체와 지상 계통의 물리적 준비 상태는 이미 한 차례 검증을 마친 상태다. 이노스페이스는 브라질 알칸타라 우주센터에서 18일부터 19일 사이 한빛-나노 발사 리허설인 WDR을 수행했다. 발사체를 조립동에서 발사대로 이송하고, 추진제 주입을 제외한 발사 준비, 발사 시퀀스 검증, 발사 후 발사대 리커버리 절차까지 실제 발사와 동일한 흐름으로 재현한 시험이다.

 

WDR 결과 발사체 상태와 지상 시스템 전반의 준비 수준이 양호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발사 인프라와 운영 절차 측면에서는 기술적 완성도가 상당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발사 운용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신생 민간 기업과 신흥 발사장 조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반복적인 통합 리허설을 통해 복잡한 발사 시퀀스를 안정화하는 과정 자체가 향후 상업 발사 서비스 경쟁력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주 산업계에서는 한빛-나노 사례를 두고 민간 발사체 기업들이 기술 완성도와 시장 신뢰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선택할지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된다고 본다. 발사 일정 지연은 단기적으로 고객사 일정과 수익 인식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지만, 초기 상업 발사에서의 실패는 브랜드 신뢰도와 보험비용, 이후 계약 수주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형 위성 발사 시장에서는 발사 단가뿐 아니라 일정 준수 능력과 안전 기록이 핵심 경쟁 지표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민간 우주 발사 시장에서는 이미 상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반복 발사가 일상화된 상황이다. 주요 사업자들은 연간 수십 회 이상의 발사를 소화하며 통신 위성, 지구 관측 위성, 탑재체 실험 임무 등 다양한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한국 민간 기업이 브라질 발사장과 협력해 상업 시장에 진입하는 한빛-나노 프로젝트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연기 과정에서 보여주는 리스크 관리와 당국 협업 모델이 향후 국내외 후속 프로젝트의 표준이 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상업 발사체 시장에서 기술 그 자체뿐 아니라 발사장 운영 기관과의 데이터 공유, 이상 징후 조기 포착 체계, 지상 시스템과의 통합 검증 역량 등이 성공 여부를 좌우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신호 처리와 항전장비 통합 품질 관리 수준이 높아질수록 발사 실패 가능성이 줄어들고, 보험사와 규제 당국의 신뢰도도 함께 높아진다는 평가다.

 

한빛-나노 발사가 12월 중순 발사 윈도우에서 얼마나 매끄럽게 재개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일정 조정 과정에서 드러난 보수적 접근 방식이 향후 국내 민간 우주 발사 생태계 전반에 안전 우선 문화로 확산될 경우, 초기에는 속도가 더뎌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발사 서비스 시장 진입에 유리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산업계는 한빛-나노가 상업 임무를 무사히 완수해 한국 민간 발사체의 기술 신뢰도를 입증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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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스페이스#한빛-나노#브라질공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