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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못 떠난다"…정보유출에도 묶인 소비자, 이커머스 지형 흔들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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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커머스 시장에서 플랫폼 의존이 구조화되며, 정보 유출에도 소비자 발이 묶이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가격과 물류, 해외 직구 서비스까지 한 번에 제공하는 초대형 플랫폼이 생활 인프라처럼 자리 잡으면서, 보안 사고 이후에도 대체 서비스를 찾기 어렵다는 소비자 호소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최근 쿠팡 사태를 두고 가격과 편의성 중심 경쟁에서 데이터 보호와 소비자 신뢰 경쟁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쿠팡의 대규모 정보 유출 사태가 장기전 국면으로 접어든 가운데 주요 커뮤니티에는 탈퇴를 망설이는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소상공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최근 벗어날 수 없는 쿠팡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공유됐다. 작성자는 탈퇴 대신 유료 멤버십 와우를 해지했지만 곧바로 생필품 구매에서 가격 격차를 체감했다고 전했다. 같은 레몬 기준으로 쿠팡에서는 2킬로그램이 1만 원 이하인데, 다른 플랫폼에서는 1킬로그램 가격이 1만 원을 넘는 사례를 들며 체감 물가 차이가 크다고 토로했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쿠팡이 공격적 가격 전략과 물류 인프라를 기반으로 소비자의 선택지를 좁혀 왔다고 지적한다. 한 누리꾼은 쿠팡이 콧대가 높은 이유가 결국 너흰 우리 손바닥 안에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가격 전략 같다고 평가했고, 다른 이용자들은 로켓배송과 새벽배송, 로켓직구 등에서 체감되는 편의성이 워낙 크다 보니 다른 플랫폼을 이용할 유인이 부족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가격 비교를 통해 확인된 격차도 공유되고 있다. 누리꾼들이 직접 검색해 올린 사례에 따르면 대체 플랫폼으로 자주 거론되는 마켓컬리에서는 고구마 1킬로그램 상품 가격에 3000원의 배송비를 더해 약 7990원 수준이었지만, 쿠팡에서는 무료 배송 기준 4410원 수준에 형성된 사례가 포착됐다. 개별 품목 기준이긴 하지만, 자주 구매하는 신선식품과 생필품에서 비슷한 패턴을 경험했다는 이용자들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용자 반응은 양가적이다. 당일배송과 새벽배송이 되는 쿠팡에서 대량 소비되는 상품들은 경쟁 플랫폼이 가격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일부에서는 가격 비교 사이트 다나와를 활용하거나 도매상 직구매를 통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다만 개별 소비자가 다수 품목을 일일이 비교해 구매하는 데 드는 시간과 정보 탐색 비용을 고려하면, 손쉽게 갈아타기 어렵다는 인식이 우세하다.

 

이런 가운데 데이터 지표에서는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모바일 분석 업체 집계에 따르면 쿠팡의 일간 활성 이용자 수는 정보 유출 사실이 알려진 지난달 29일 이후 사흘간 일시 증가했지만, 이달 1일 1798만8845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6일 기준 1594만746명으로 감소했다. 약 엿새 만에 11퍼센트 줄어든 수치다. 이용자 일부가 로그인을 자제하거나 접속 빈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불신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대로 경쟁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같은 기간 이용자가 늘었다. DAU 기준으로 네이버플러스스토어는 지난달 29일 107만694명에서 이달 5일 117만1514명으로 증가했다. 마켓컬리도 같은 기간 63만5513명에서 79만8468명으로 늘며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일시적인 반사 이익일 수 있지만, 정보 유출 사고가 소비자들에게 최소한 대안 플랫폼을 시험해 보는 계기가 된 셈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쿠팡의 가격과 물류 경쟁력은 여전히 공고하다고 평가한다. 전국 단위 물류센터와 로켓배송 인프라를 바탕으로 재고 회전율을 높이고, 특정 품목에서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해 가격을 낮추는 구조가 이미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로켓직구처럼 해외 직구를 직매입 기반으로 단순화한 서비스는 다른 플랫폼이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진입장벽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보 유출 후폭풍은 단순 이용자 수 변화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소비자 신뢰는 장기적인 락인 효과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이기 때문이다. 개인정보와 결제 정보가 집적된 이커머스 서비스 특성상 보안과 데이터 거버넌스 수준이 브랜드 이미지에 직결되고, 향후 규제 환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국내외에서 데이터 보호와 사이버 보안에 대한 제도적 요구도 강화되는 추세다. 유럽연합은 개인정보보호법을 통해 이용자 데이터 활용과 보안 기준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도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대상으로 책임 범위를 넓혀 가는 흐름이다. 국내에서도 전자상거래법과 개인정보 보호 관련 규정을 손보자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대형 이커머스 기업의 보안 투자와 사고 대응 체계가 정책 논쟁의 중심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커머스 플랫폼 경쟁이 가격과 배송 속도를 넘어 보안과 신뢰, 데이터 관리 역량을 포괄하는 종합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 유통·IT 분야 연구자는 생활 인프라처럼 자리 잡은 플랫폼에서 보안 사고가 발생하면 단기 이탈은 제한적일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이용 빈도와 결제 수단, 멤버십 가입 등 핵심 지표에서 미세한 변화가 누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쿠팡 사태가 실제 시장 점유율 재편으로 이어질지, 보안 강화와 규제 정비를 촉발하는 계기에 그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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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네이버플러스스토어#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