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727조9천억 첫 예산안 통과”…이재명 정부, 5년 만에 법정시한 지켜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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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시한을 둘러싼 여야의 갈등과 이재명 정부의 첫 재정운용 구상이 맞붙었다. 5년 동안 지키지 못했던 법정 처리 시한을 지켰다는 상징성과 함께, 재정 확대 기조와 민생·미래 투자 간의 우선순위 논쟁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국회는 12월 2일 밤 본회의를 열어 2026년도 예산안을 총지출 기준 약 727조9천억원 규모로 가결했다. 헌법이 정한 예산안 처리 시한인 12월 2일을 맞춰 통과한 것으로, 2020년 이후 5년 만이다.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예산안 자동부의 제도 하에서 시한 내 처리는 2014년, 2020년에 이어 세 번째다.

통과된 예산안 규모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728조원보다 약 1천억원 줄어든 수준이다. 심사 과정에서 9조2천억원이 증액됐으나 9조3천억원이 감액되며 총액은 소폭 축소됐다. 감액·증액 항목에는 조직개편에 따른 예산 이체 등도 반영됐다. 지난 윤석열 정부가 편성한 2025년도 본예산 673조3천억원과 비교하면 8.1% 증가한 수치다.

 

세부 사업을 보면 이재명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운 사업이 대체로 원안대로 유지됐다.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 1조1천500억원, 국민성장펀드 1조원은 손질 없이 통과됐다. 여야가 민생 소비 진작과 성장동력 확충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형성한 셈이다.

 

재난 대응 역량 강화와 미래 산업 분야에서는 선택과 조정이 병행됐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재해복구시스템 구축 예산에 4천억원이 추가 반영돼 국가 핵심 정보 인프라 복구 체계 보강에 힘이 실렸다.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한 실증도시 신규 조성에는 618억원이 더 배정돼 교통·모빌리티 분야의 신산업 실증 기반 확충도 속도가 붙게 됐다.

 

미래세대와 생활 밀착형 복지 예산은 전반적으로 확대됐다. 임산부에게 친환경 농산물을 지급하는 사업에는 158억원이 증액됐고, 보육교사 수당 인상 등을 위한 예산도 445억원 늘었다. 지방의료원 의료인력 인건비 지원단가 한시 상향에는 170억원이 반영돼 지역 의료 인력난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중교통 정액패스 이용한도 폐지 등 교통비 경감 지원 예산에도 305억원이 추가됐다.

 

교육·보훈 분야에서도 증액이 이뤄졌다. 국가장학금 지원 예산은 706억원 늘어 대학 등록금 부담 완화에 여력이 생겼고, 보훈 유공자를 위한 참전명예수당 예산도 192억원 증액됐다. 사회적 기여에 대한 보상 확대라는 정책 기조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반면 첨단 산업과 예비 재정여력 분야에서는 일부 조정이 이뤄졌다. 인공지능 지원 예산과 정책펀드 항목은 일부 감액됐고, 예비비도 2천억원 줄었다. 재정 건전성 관리와 단기 민생 지출 확대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조정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외경제 전략 관련 항목에서는 구조 재편이 두드러졌다. 대미 통상 대응 프로그램 예산 1조9천억원이 감액되는 대신, 대미 투자 이행을 위한 한미전략투자공사 출자에 1조1천억원이 새로 투입됐다. 통상 분쟁 대응보다 전략적 투자와 공급망 협력을 통해 한미 경제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는 분석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예산안 통과 후 본회의장에서 여야 협상을 평가했다. 우원식 의장은 “여야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도 대화를 통해 서로 양보하며 합의에 도달했다”며 “국민께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 활력과 민생 회복을 위해 모두의 역량을 모아야 할 때 아주 잘한 일”이라며 “여야의 책임 있고 성숙한 태도가 경색된 정국을 푸는 거름으로 이어지고 앞으로 필요한 민생과 개혁 과제에서도 여야 협력의 길을 열어가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헌법은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예산안 자동부의 제도가 도입된 2014년 이후 국회는 2014년과 2020년을 제외하고 대부분 시한을 넘겨 예산을 처리해 왔다. 여야의 합의로 법정 시한을 맞춘 이번 처리 방식이 향후 정기국회 운영의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회는 연말까지 예산 부수법안과 후속 입법 처리를 이어갈 전망이다. 여야는 재정 운용 방향과 세부 정책 사업을 둘러싸고 다시 공방을 벌이겠지만, 법정시한을 지킨 첫 예산안 합의 경험을 토대로 민생·개혁 과제에서도 협력의 접점을 모색할지가 향후 정국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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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정부#국회예산안#지역사랑상품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