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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욕구 높을수록 연상 선택"…짝 선택 통념 뒤집었다

장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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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갖고 싶은 욕구가 강할수록 오히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관찰됐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그동안 진화심리학에서는 젊은 외모가 높은 생식력의 신호로 작용해, 특히 자녀를 원할수록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더 끌린다는 설명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실제 짝 선택 과정에서 생식력뿐 아니라 양육 능력, 경제적 안정성에 대한 사회적 판단이 동시에 작동해 젊음 선호를 약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줘 학계의 통념을 흔들고 있다.

 

영국 스트래스클라이드대 징헝 리 박사 연구팀은 평균 연령 30세 내외의 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젊은 외모 선호도와 출산 욕구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연구 참가자는 남성 149명, 여성 151명으로 구성됐으며, 각 참가자는 19세에서 55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에 해당하는 남녀 얼굴 사진 50장을 보고 매력도를 평가했다. 이어 같은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향후 아이를 갖고 싶은 정도를 수치화해 묻는 별도의 설문이 진행됐다.

분석 결과 남녀 모두에서 출산 욕구가 높을수록 젊어 보이는 얼굴에 대한 선호가 줄어드는 경향이 확인됐다. 특히 남성 참가자가 여성 얼굴의 매력을 평가할 때 이러한 역전 현상이 더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이론은 남성이 상대적으로 짝 선택에서 생식력 신호에 더 민감하다고 봤지만, 실제 설문 자료에서는 출산 욕구가 강할수록 오히려 연상 또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패턴이 포착된 셈이다.

 

연구팀은 후속 실험을 통해 이러한 결과가 단순한 생물학적 생식능력 판단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추가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나이가 젊어 보이는 얼굴과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에 대해 신뢰도, 양육 적합성, 경제적 안정성 등을 평가하게 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이 더 믿을 수 있고, 양육을 잘할 것 같으며, 경제적으로도 안정돼 보인다는 응답이 우세했다. 연구진은 출산 욕구가 클수록 참가자들이 잠재적 배우자를 평가할 때 이런 사회적 기준을 더 강하게 적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기존 진화심리학 연구에서는 남성이 젊은 여성의 얼굴과 체형을 더 매력적으로 인식하는 현상을 높은 생식 가능성과 연결해 설명해 왔다. 이 관점에서는 자녀를 원할수록 젊은 외모 선호가 강화된다는 가설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그러나 스트래스클라이드대 연구팀이 수집한 데이터는 이러한 예측과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켰다. 연구진은 젊음에 대한 선호가 인류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장기적 경향일 수 있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자녀 양육 비용과 사회경제적 부담이 커지면서 생식력 못지않게 양육 능력, 책임감, 재정적 기반에 대한 신호가 중요해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제 학술지 플로스원에 게재된 이번 논문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젊음 선호 격차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연구팀은 그동안 발표된 여러 연구가 젊은 외모에 대한 평균적 선호 차이를 강조해 왔지만, 실제 짝 선택 의사결정에서는 개인의 생애 계획, 출산 욕구, 경제적 환경 등이 결합돼 훨씬 복합적인 판단 구조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출산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집단에서는 젊음이라는 단일 신호보다 향후 공동 양육 파트너로서의 신뢰 가능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과가 인간 매력 연구와 인구학, 사회정책 논의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저출산과 결혼 연령 상승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실제 개인들이 어떤 기준으로 장기 파트너를 선택하는지에 대한 정교한 심리·행동 데이터가 정책 설계에도 참고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를 통해 문화권별 비교, 실제 결혼·출산 이력과의 연계 분석, 온라인 데이팅 플랫폼에서의 선택 패턴 등을 추가로 검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젊음 선호에 대한 기존 통념만으로 인간의 짝 선택 전략을 설명하기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징헝 리 박사는 발표 자료에서 젊음과 생식력, 양육 능력과 경제적 안정성 사이의 균형점이 각 개인과 사회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짝 선택 과정은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경제적 요인이 교차하는 결정 구조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인간 행동 데이터를 정밀 분석하려는 시도가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도 이러한 심리 연구 결과가 디지털 플랫폼 알고리즘 설계와 인구 전략 논의에까지 연결될 수 있을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연구가 실제 사회에서의 행동 패턴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 후속 검증을 지켜보고 있다.

장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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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헝리#스트래스클라이드대#플로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