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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치료 새 변수 PIEZO ICSI…일산차병원, 수정률 입증하며 주목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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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조를 이용한 세포질 내 정자 주입술이 난임 치료 패러다임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일산차병원 난임센터 연구진이 기존 체외수정 시술과의 직접 비교 임상에서 수정률과 배아 발달률을 유의하게 높였다고 밝히면서, 반복 실패를 겪는 난임 부부를 위한 새로운 옵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연구가 남성 난임과 난소 기능 저하 등 난이도 높은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정밀 맞춤형 보조생식술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산차병원 난임센터 난임의학연구실 교수팀과 연구팀은 피에조를 이용한 세포질 내 정자 주입술 PIEZO ICSI가 일반적인 방법의 세포질 내 정자 직접 주입술 C ICSI보다 임상 지표 전반에서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고 28일 밝혔다. 연구 대상은 난임 부부의 첫 체외수정 시술 IVF 첫 주기 환자로, 배우자 정자 형태 검사에서 정상 정자 비율이 1퍼센트 미만으로 나타나 기형 정자증 진단을 받은 37세 이하 여성 100명이었다.

연구진은 환자 수준 무작위 대조 시험 설계를 적용해 신뢰도를 높였다. 100명을 두 군으로 나눈 뒤, 각각 PIEZO ICSI 50명, C ICSI 50명을 배정해 동일 조건에서 시술을 진행하고 수정률, 난자 손상률, 배아 발달률, 임상 임신율 등을 비교했다. 무작위 배정과 동시기 진행을 통해 시술 방식 외 변수 영향은 최소화했다는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PIEZO ICSI군의 정상 수정률은 78점0퍼센트로, C ICSI군 72점6퍼센트보다 높게 나타났다. 난자 변성률은 PIEZO ICSI가 3점2퍼센트로, C ICSI의 6점3퍼센트보다 절반 수준에 그쳤다. 수정 이후 5일째 배반포 형성률도 PIEZO ICSI군이 50점3퍼센트, C ICSI군이 43점9퍼센트로 격차를 보였다. 임상 임신율 역시 각각 66점7퍼센트, 64점3퍼센트로 PIEZO ICSI가 우세했다. 시험 설계 특성상 수치 차이가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수정 과정과 배아 발달 전 단계에서 일관된 우위를 보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두 기술의 차이는 난자를 뚫는 방식에 있다. 일산차병원이 2020년 국내 최초 임상 도입한 PIEZO ICSI는 피에조 장치에서 발생하는 미세 진동을 이용해 난막과 세포막을 부드럽게 관통한 뒤 정자를 주입한다. 피에조는 압전 소자를 활용해 매우 짧고 정밀한 기계적 진동을 만드는 기술로, 세포 손상을 줄이면서도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반면 현재 널리 쓰이는 C ICSI는 미세 유리 바늘로 난막을 물리적으로 찌른 후 난자 세포질 일부를 흡입해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정자를 주입하는 방식이다. 숙련된 술기에도 불구하고 바늘 압력과 세포질 흡입량에 따라 난자 손상 위험이 존재한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기존 미세수정 방식의 구조적 한계를 일부 보완한 것으로 평가된다. 피에조 진동을 활용하면 난막과 세포막을 관통하는 힘을 보다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어, 난자 세포 구조의 급격한 변형을 줄이고 미세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는 난자 변성률 감소뿐 아니라 이후 배아 발달 단계에서도 질을 유지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장성과 활용 측면에서 PIEZO ICSI는 기존 시술에 반복 실패한 고난도 난임 환자군에서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은다. 최원윤 난임의학연구실장은 C ICSI를 시행해도 수정이 반복적으로 실패하거나 배아 질이 떨어져 포배기 배아가 생성되지 않는 사례, 정자 질이 극히 저하된 남성 난임, 난소 기능 저하로 난자 상태가 좋지 않거나 채취 개수가 적은 환자, 동결 난자 해동 후 수정, 미성숙 난자의 수정 등에서 PIEZO ICSI가 유용한 선택지로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상현장에서는 매번 얻을 수 있는 난자 수가 적은 고령 환자나 난소 예비력 감소 환자에서 한 번의 채취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수정률과 난자 손상률 개선은 이들 환자에서 체감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글로벌 보조생식술 시장에서는 미세조작 기술 고도화와 함께 AI, 영상 분석, 유전체 진단이 결합된 정밀 난임치료 경쟁이 가속화되는 흐름이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타임랩스 배양기와 AI 기반 배아 등급 판독 솔루션 도입이 늘고 있으며, 일본과 대만 일부 센터에서도 피에조 기반 미세주입 장비를 임상에 적용하는 사례가 보고돼 왔다. 다만 각 기관의 환자 특성과 프로토콜이 달라,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 데이터는 아직 제한적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일산차병원의 연구 결과는 PIEZO ICSI를 체계적으로 검증한 사례로, 국내외 임상 가이드라인 논의에도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책과 제도 측면에서는 PIEZO ICSI 역시 체외수정과 미세수정 범주 내에서 관리되는 의료행위로, 별도 허가 체계를 갖는 디지털 치료제나 유전자 편집 기술과 비교하면 규제 장벽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다만 고비용 난임 시술에서 새로운 장비와 술기가 추가될 경우, 비급여 구조와 건강보험 지원 범위, 공적 재정 지원과의 연계 등은 향후 논의 대상이다. 난임 시술의 공공성 강화를 강조해온 정부 정책 기조를 감안하면, 의료기술 고도화와 비용 부담 완화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일산차병원은 PIEZO ICSI를 축으로 한 기술 포트폴리오도 확장 중이다. 2020년 국내 최초로 PIEZO ICSI를 임상 적용한 데 이어, 배아를 배양기 밖으로 꺼내지 않고도 발달 과정을 실시간 관찰하는 타임랩스 배아 배양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촬영한 배아의 연속 이미지를 AI 기술과 결합해, 세포 분열 패턴과 시간 정보를 분석하고 이식에 적합한 최적 배아를 선별하는 데 활용된다. 여기에 착상 전 유전자 검사 PGT와 난자·배아 동결 보존 기술 비트리피케이션을 결합해, 고위험 유전질환 선별과 향후 임신 계획까지 포괄하는 정밀 난임 관리 체계를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기술적으로는 AI 기반 영상 분석, 고속 냉동 공정, 유전체 분석이 통합된 전형적인 IT 바이오 융합 모델로 평가된다.

 

송재만 일산차병원장은 난임 문제를 국가 저출산 위기와 직결된 사회 구조적 과제로 규정했다. 그는 연구와 혁신 시술 도입이 출산율 회복에 기여하기 위한 병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하면서, PIEZO ICSI 성과 역시 이러한 노력이 축적된 결과라고 말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실제 출산율 통계에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기술 확산과 함께 난임 진단 체계 개선, 상담과 심리 지원, 비용 부담 완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번 연구는 첫 체외 수정 주기 시술에서 기존 미세수정 방법과 피에조 미세수정 방법의 임상적 결과 비교라는 제목으로 국제학술지 플러스 원에 게재됐다. 학술 발표를 통해 데이터 신뢰성을 확보한 만큼, 향후 다른 연령대와 원인군으로 대상을 확대한 후속 연구와 다기관 공동 임상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업계는 PIEZO ICSI를 포함한 차세대 미세수정 기술이 실제 난임 치료 시장에 얼마나 빠르게 안착할지, 그리고 AI와 유전체 기술을 결합한 정밀 난임 플랫폼으로까지 확장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술과 윤리, 산업과 제도 간 균형이 저출산 시대 난임 치료의 새로운 성장 조건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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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차병원#piezoicsi#난임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