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바다, 미식”…삼척 가을 여행이 남긴 잔상
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이제는 빠듯한 코스 대신 느린 일상 속에서 자연의 표정을 만나는 곳이 사랑받고 있다. 삼척, 그곳에서 만난 가을 여행은 거대한 동굴과 푸른 바다가, 그리고 신선한 미식이 어우러진 특별한 시간이었다.
요즘 삼척의 환선굴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땅속 깊이 걸으며 느끼는 살아 있는 자연의 신비가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 같다. 동행한 박지연(39) 씨는 “동굴 안에 들어서니 온 세상이 멈춘 듯 조용하고, 돌기둥과 종유석 사이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까지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고 고백했다. 잘 정비된 탐방로를 따라 천연기념물 대이리동굴지대를 거닐면, 서늘한 공기와 함께 거대한 자연의 품 안에 안긴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최근 5년 새 동굴과 숲,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 자연 관광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힐링’, ‘느림’, ‘자연 체험’ 키워드를 중심으로 여행 트렌드가 재편된 탓에, 삼척처럼 다양한 풍경을 품은 지역이 젊은 세대뿐 아니라 가족·중장년층 모두의 여행지로 각광받는다.
결국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은 식탁에서 완성된다. 삼척 교동의 공대현스시에서는 두툼한 생선살과 부드럽게 쥔 밥이 입안 가득 풍미를 남겼다. “신선한 초밥 한 점에 바다 내음을 느꼈다”는 방명록의 한 문구처럼, 현지의 재료와 손맛이 어우러진 한 끼가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동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쏠비치삼척 셰프스키친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제철 해산물과 고급스러운 뷔페 메뉴를 천천히 즐길 수 있었다. 20년 경력의 셰프가 직접 고른 재료로 준비된 다양한 요리는 “여행 중 한 번쯤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만족시켜준다.
여행지의 감동은 때로 도시와 단절된 곳에서 더 짙어진다. 원덕읍의 수로부인 헌화공원 언덕 위,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동해가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산책로를 거닐다 보면 오래전 신라 설화가 남긴 이야기가 아득히 스며들고, 바닷바람에 서로의 말을 잠시 잊은 채 자연과 고요히 이어진다. 방문객 김형수(53) 씨는 “온종일 시계도 핸드폰도 보지 않고, 그냥 풍경에 머물렀다”며 “이런 시간이 진짜 힐링”이라고 표현했다. 커뮤니티에도 “삼척은 동굴도, 바다도, 밥도 다 좋다”는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
수치를 넘어선 마음의 변화는 자연과 함께하는 순간 속에서 일어난다. 환선굴에서 자연의 시간을 느끼고, 바다를 앞에 두고 미식의 여유를 누리며, 헌화공원 언덕에서는 조용한 평화를 경험한다. 누구나 잠시쯤 삶의 리듬을 늦추고 싶은 계절, 삼척은 단지 여행지가 아니라 나를 되돌아보는 공간이었다. 작고 사소한 걸음이지만, 우리의 삶은 이런 여행에서 또 한 번 방향을 바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