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자리 5만 명 추가 그쳐”…미국 고용 둔화 고착, 연준 12월 금리결정에 부담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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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9월, 미국(USA)에서 발표된 고용지표가 신규 일자리 증가 폭 5만 명 수준에 그치며 고용 둔화 장기화 우려를 키우고 있다. 실업률은 4.3%로 4년 만의 최고 수준을 유지했고, 장기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인한 통계 공백까지 겹치며 연방준비제도(Fed)의 12월 통화정책회의를 압박하는 취약 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고용 둔화는 이민 감소, 기술 변화, 통상 정책 불확실성이 중첩된 구조적 문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9월 약 5만 개의 일자리만을 추가하며 올 들어 이어진 고용 답보 흐름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업률은 4.3%로 4년 만의 최고 수준이 이어졌다. 이번 수치는 43일간 지속된 사상 최장기 연방정부 셧다운 여파로 노동부 월간 고용보고서 발표가 지연된 끝에 공개됐다. 셧다운 기간 통계 생산이 중단되면서 10월 고용지표는 폐기됐고, 10∼11월 수치는 2025년 12월 16일에 한꺼번에 발표될 예정이다.

美 고용 둔화 장기화…연준 12월 결단 앞두고 ‘취약 신호’ 압박
美 고용 둔화 장기화…연준 12월 결단 앞두고 ‘취약 신호’ 압박

고용 둔화는 통계 기술적 요인을 넘어선 구조적 조정 과정이라는 진단이 힘을 얻고 있다. 노동통계국(BLS)은 2024년 3월부터 2025년 3월 사이 실제 고용 규모가 기존 발표치보다 91만1000명 적었다고 추정한 바 있다. 이 추정치는 최근 수년간 미국 고용시장이 시장 참가자들이 인식해 온 것보다 더 약한 흐름을 보여 왔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저조한 고용이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로욜라 메리마운트대 성원송 교수는 “노동시장은 확연히 둔화하고 있으며 이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며 “경기침체 가능성은 낮지만 저성장 국면 진입은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현재 미국 노동시장은 인구 증가 속도가 둔화한 영향으로 매달 3만∼5만 개 수준의 일자리만 새로 생겨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2024년 월평균 필요 고용 규모로 제시됐던 15만 개 수준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하향 조정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이민 감소가 자리 잡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임기 말부터 둔화되기 시작한 이민 유입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 출범 이후 더욱 위축되면서 노동 공급 기반이 좁아졌다. 스티븐 스탠리 산탄데르US캐피털마켓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고용 부진의 상당 부분은 노동 공급 변화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노동 연령 인구 자체가 느리게 늘거나 줄어드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높은 고용 증가율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고용시장에는 기술 혁신과 정책 불확실성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자동화 기술은 초급·입문 직군부터 대체효과를 내며 생산성 향상을 이끌고 있으나, 그만큼 신규 고용 창출 여지는 축소시키고 있다. 성장률이 유지되더라도 일자리가 크게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 현상이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 정책이 대외 교역과 글로벌 공급망에 변수를 던지며 기업의 투자와 채용 의사결정을 지연시키고 있다. 브라이언 베튜인 보스턴칼리지 교수는 “중소기업이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있으며 경제 전반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 연방정부 셧다운은 통계 생산 체계에도 깊은 흠집을 남겼다. 43일 동안 정부 기능이 멈추면서 노동부 고용보고서의 정시 발표가 중단됐고, 한 달 치 지표는 아예 사라졌다. 고용시장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하는 연준과 금융시장 입장에서는 중요한 나침반을 잃은 셈이다. 10∼11월 수치가 2025년 말에야 공개되는 공백 상황은 통화정책 수립과 시장 기대 형성에도 추가적인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약해진 고용 지표는 12월 9∼10일 예정된 연준 통화정책회의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보도에 따르면 10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 다수의 위원들은 성급한 금리 인하가 물가 안정 기조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예일대 버짓랩의 마사 김벌 전무는 “연준은 추가 인하에 매우 신중한 상태이며, 상당히 약한 고용지표가 나오기 전에는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이미 발표된 9월 지표 자체가 연준이 강조해 온 ‘약한 고용’ 신호에 상당 부분 부합한다는 평가도 있다. 실업률이 4년 만의 고점에서 움직이지 않고, 신규 일자리 증가 폭이 인구 증가분을 겨우 상쇄하는 수준에 머무는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연준이 성장 둔화 리스크를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반면 물가가 목표 수준 근처에서 재차 상방 압력을 받는다면, 연준은 다소 약한 고용지표에도 불구하고 긴축 기조를 더 길게 유지할 수 있다.

 

국제 금융시장과 주요 외신은 미국 고용 둔화를 글로벌 경기 흐름의 선행 신호로 주목하고 있다. 미국 고용시장은 세계 최대 소비·투자 시장의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만큼, 고용 둔화 고착은 각국 수출 의존도와 투자 계획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AI 확산, 이민 규제, 통상 갈등이 얽힌 구조적 변화라는 평가가 확산될 경우, 다른 선진국과 신흥국 정책 방향에도 연쇄적인 조정 압력이 가해질 가능성이 있다.

 

향후 연준은 제한된 통계 속에서 고용·물가·성장 사이 미세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미국 고용시장의 ‘바닥을 긁는’ 구간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그리고 연준이 어느 시점에서 성장 방어를 위해 금리 기조를 조정할지에 글로벌 시장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번 고용 부진이 일시적 조정에 그칠지, 미·중 경쟁과 기술 혁신이 맞물린 새로운 저성장 시대의 전조가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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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경제#연방준비제도#미국고용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