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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펄스로 심방세동 잡는다…세브란스, 100례 달성에 교육허브 부상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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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세동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는 펄스장 절제술이 국내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은 베리펄스 펄스장 절제술 100례를 국내에서 가장 먼저 달성하고, 파라펄스까지 포함한 전체 펄스장 절제술 400례 이상을 수행하며 정밀 부정맥 치료의 선도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화로 심방세동 유병률이 가파르게 오르는 가운데, 시술 시간과 합병증 부담을 줄이는 차세대 에너지 기반 시술이 향후 부정맥 치료 시장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은 지난 20일 기준으로 베리펄스 펄스장 절제술 100례를 달성했다고 26일 밝혔다.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펄스장 절제술을 도입한 후 1년이 채 안 된 시점에 거둔 성과다. 베리펄스와 함께 또 다른 펄스장 절제술인 파라펄스를 포함하면 26일 기준 총 425례를 수행한 상태로, 국내 의료기관 가운데 가장 많은 시술 건수다. 병원은 이를 기념하는 행사와 함께 후속 교육 및 연구 협력 확대 방침을 내놓았다.

펄스장 절제술은 고에너지 전기 펄스, 즉 짧고 강한 전기장을 심장 조직에 가해 심방세동을 유발하는 심근세포만 선택적으로 괴사시키는 최신 시술이다. 세포막 전기 특성 차이를 이용해 부정맥 발생 부위를 중심으로 미세한 구멍을 만들고, 주변 정상 조직과 인접 장기는 최대한 보존하는 원리다. 기존 고주파 열에너지 기반 절제술 대비 주변 조직 손상과 합병증 위험을 낮추면서도, 1시간 이내의 짧은 시술 시간으로 효율을 높인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심방세동은 심방이 규칙적으로 수축하지 못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가장 흔한 부정맥 질환이다. 가슴 두근거림과 답답함, 어지러움, 숨참 등이 대표 증상으로, 심방 내 혈류가 고이면서 혈전이 형성되고 뇌혈관을 막아 뇌졸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60세 이상 인구의 약 10퍼센트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고령층 건강 부담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구 고령화 영향을 반영해 2030년 전체 유병률이 3.5퍼센트 이상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펄스장 절제술 가운데 베리펄스는 심방세동 유발 부위에 상대적으로 낮은 전압을 여러 차례 나눠 가하는 방식이다. 반복적인 저전압 펄스로 목표 부위만 정밀하게 공략하면서 조직 선택성을 높이고, 시술자와 환자 입장에서 안전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반면 파라펄스는 고전압을 한 번에 쏘아 심방세동 유발 부위를 신속히 제거하는 방식으로, 해부학적 구조와 부정맥 양상에 따라 시술 접근 전략이 달라진다. 세브란스는 두 방식을 모두 운용해 환자별 상태에 맞춘 맞춤 시술을 진행하는 중이다.

 

적절한 에너지 타입과 시술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심방세동 치료 성패를 가르는 기술적 변수가 된다. 기존 고주파 절제술은 열에너지로 심근을 태우는 과정에서 주변 식도나 신경, 혈관에 손상이 생길 우려가 있어 고난도 시술 경험과 시간이 요구됐다. 특히 다양한 기저질환을 가진 고령 환자에서 출혈과 합병증 위험 관리가 관건이었다. 이에 비해 펄스장 절제술은 전기장 특성을 이용해 심근세포만 주로 사멸시키기 때문에, 주변 조직 손상을 줄이면서 절제 범위를 보다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술적 진화로 평가된다.

 

이번 100례 달성과 함께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은 베리펄스와 파라펄스 두 유형 모두에 대해 국제 교육센터로 지정된 국내 첫 기관이라는 점도 부각된다. 올 초 지정 이후 경북대학교병원을 비롯한 국내 대학병원과 홍콩대학교 병원 교수진 등 국내외 심장내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펄스장 절제술 술기와 표준화 프로토콜을 공유하고 있다. 국내 최다 시술 경험을 축적한 기관이 교육 허브까지 겸하면서, 향후 국내 부정맥 시술 표준 형성과 데이터 기반 임상 연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펄스장 절제술 관련 임상과 시판 허가 경쟁이 진행 중이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고주파 절제술을 대체하는 옵션으로 펄스장 절제술 채택 병원이 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규제 당국 심사를 거친 제품들이 실제 임상 현장에서 사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 관련 규제와 보험 정책 논의가 맞물리며 도입 병원과 시술 건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다만 장기 추적 데이터와 특정 고위험군에서의 안전성, 재발률을 둘러싼 추가 검증 과제는 남아 있다.

 

국내에서는 향후 심장질환 치료 분야에서 디지털 영상장비, 3차원 맵핑 시스템, AI 기반 부정맥 예측 모델과 펄스장 절제술 기법이 결합되는 흐름도 예상된다. 시술 전후 심방 구조와 전기 신호를 정밀 분석해 어떤 에너지와 패턴이 가장 효과적인지 추천하는 의사결정 지원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펄스장 절제술의 임상 효율과 재현성은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교육센터를 기반으로 한 다기관 공동 연구와 데이터 표준화 작업도 시장 확산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에서 펄스장 절제술 도입과 시술을 주도한 정보영 심장내과 교수는 세브란스에 도입한 펄스장 절제술이 주변 조직 손상을 줄이면서 시술 시간을 단축해 치료 효과와 환자 편의를 동시에 높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최다 시술 경험과 교육센터 역할을 바탕으로 더 많은 환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와 의료계에서는 펄스장 절제술이 실제 임상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안착해 심방세동 치료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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