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문서·위성 영상 잇는다…한컴, 데이터 주권 전략 부각
문서와 영상 데이터를 아우르는 인공지능 기술이 국내 데이터 주권 전략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글과컴퓨터와 한컴인스페이스가 나란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공공 문서와 위성 영상을 기반으로 한 AI 전환 성과를 입증했다. 한컴 그룹은 전자문서 편집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출발해, 문서 AI와 멀티센서 영상 분석, 자체 위성까지 확보한 데이터 전주기 플랫폼 사업자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수상이 글로벌 빅테크 중심이던 AI 데이터 공급 구조를 흔드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컴은 아시아 AI 대상에서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AI 혁신 성과와 데이터 주권 강화 기여를 인정받아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35년에 걸쳐 축적한 전자문서 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문서 AI 시장을 열고 상용화까지 빠르게 이어간 점이 핵심 평가 요소로 작용했다. 시상식에는 김연수 한컴 대표가 참석해 과기정통부 제2차관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한컴의 문서 AI 전략은 국내 행정과 교육 현장의 대규모 디지털 전환 수요를 겨냥하고 있다. 특히 공공 부문에서 연이어 대형 AI 전환 사업을 수주하며 시장 지배력을 키우는 중이다. 핵심은 AI가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아래아한글 문서 기술이다. 기존 오피스 문서는 사람 중심의 편집 형식에 최적화돼 있었으나, 한컴은 문단 구조, 표, 도형, 주석 등 복잡한 서식을 기계가 구조적으로 인식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표준화된 형식으로 가공하는 기술을 고도화해 왔다. 이 과정에서 자연어 처리, 문서 레이아웃 분석, 문서 내 개체 인식 등 AI 알고리즘이 결합되며 대규모 문서 데이터셋을 효율적으로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글로벌 클라우드·오피스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에서 생성되는 공공 문서 데이터를 국내 시스템 안에서 처리·분석할 수 있게 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 AI가 읽을 수 있는 한글 문서 포맷을 중심으로 표준을 잡으면 정책 문서, 행정 기록, 교육 자료 등 고가치 데이터가 해외 사업자가 아닌 국내 AI 모델 성능 향상에 직접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한컴의 행보가 문서 데이터 영역에서 국산 AI 생태계의 학습 기반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컴이 최대주주로 있는 한컴인스페이스는 영상 및 센서 데이터 분석 영역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개최한 성과보고회에서 지능정보화 유공 기업으로 선정되며 한컴과 같은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한컴인스페이스는 멀티인텔리전스 기술을 실증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사업과 운영 단계까지 끌어올린 점이 높은 평가로 이어졌다.
멀티인텔리전스는 위성, 드론, 지상 센서 등 서로 다른 출처와 해상도, 주기를 가진 이종 데이터를 수집해 하나의 상황 정보로 통합 분석하는 기술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위성 영상으로 넓은 지역의 변화를 포착하고, 드론 영상으로 세부 지형과 시설 상태를 확인하며, 지상 센서 데이터로 온도나 습도 같은 환경 정보를 결합하는 식이다. 한컴인스페이스는 이 모든 데이터를 AI 기반으로 자동 정합하고 변화 패턴을 탐지하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왔다. 공간 해상도, 촬영 시점, 관측 각도가 제각각인 데이터를 정렬하는 정합 알고리즘과, 특정 지역의 토지이용 변화나 불법 시설 설치 등을 기계가 스스로 찾아내는 변화탐지 모델이 핵심 기술로 꼽힌다.
실제 시장 적용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NIPA와 함께 수행 중인 AI 기반 변화탐지 사업은 공공과 민간 현장에서의 운영 성과를 통해 기술 적합성을 검증받고 있다. 이 사업에서는 위성 및 항공 영상을 주기적으로 분석해 토지 이용 변화, 불법 건축, 산림 훼손, 해안 침식과 같은 변화를 자동 탐지하고 담당 부서에 알리는 기능이 활용되고 있다. 과거 사람이 일일이 눈으로 비교하던 작업을 AI가 대신하면서 탐지 속도와 정확도가 향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컴인스페이스는 영상 AI 역량을 자체 위성 확보로 확장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최근 누리호 4차 발사를 통해 자체 제작 위성인 세종 4호를 궤도에 성공적으로 올리며 고해상도 영상 데이터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동안 위성 영상 AI 분석 기업 상당수가 해외 상용 위성 사업자에 의존해 데이터를 구매해 왔다면, 한컴인스페이스는 데이터 수집부터 전처리, 분석, 서비스 제공까지 AI 서비스 전 과정을 내재화하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 유럽 위성 데이터 기업들이 이미 위성 운영과 AI 분석을 결합한 플랫폼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상업용 지구 관측 위성 운영사와 클라우드 사업자가 손잡고 농업, 국방, 보험, 스마트시티 분야 맞춤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기후변화와 에너지 인프라 모니터링 중심의 위성·AI 융합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한컴인스페이스의 세종 4호 프로젝트는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수직 통합 모델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공공 문서와 위성 영상은 개인정보와 국가 안보, 상업적 기밀이 뒤섞인 민감 데이터여서 제도와 윤리 이슈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공공 클라우드 전환 정책, 국방 및 안보 관련 지리정보 관리 규제, 개인정보 비식별화 기준 등이 AI 학습과 서비스 확산 속도를 제약할 변수로 거론된다. 특히 초고해상도 위성 영상은 개인의 이동 경로나 생활 패턴까지 유추할 수 있어 데이터 활용 목적과 보안 통제가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
한편 정부는 디지털플랫폼정부 구상과 국가 AI 전략을 통해 공공 데이터 개방과 AI 기반 행정 혁신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실제 사업 단계에서는 데이터 품질 관리, 클라우드 인프라, 보안 인증, 예산 구조 등 복합적인 과제가 얽혀 있다. 업계에서는 문서와 영상 데이터를 동시에 다루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데이터 결합에 따른 책임성과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담보할지가 중요한 논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연수 한컴 대표는 양사 동시 수상을 계기로 그룹 차원의 AI 전략을 강조했다. 그는 한컴이 축적한 데이터 자산과 기술력을 기반으로 공공과 기업의 AI 전환을 지원하겠다고 밝히며, 대한민국 AI 기술 자립과 생태계 확산에 실질적인 기여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산업계는 문서와 위성 영상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한 한컴의 데이터 주권 전략이 향후 어떤 사업 모델과 글로벌 협력 구조로 구체화될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