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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위법 계엄 동력됐다"…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1심 징역 2년 선고

김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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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을 둘러싼 정치적 충돌 지점과 내란 특별수사 라인이 법정에서 맞붙었다.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 기소한 사건 가운데 첫 판결에서 재판부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부 사령관에게 실형을 선고하며 위헌·위법한 계엄 시도의 동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향후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관련 재판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 이현복 부장판사는 15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2490만원을 선고했다.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 12·3 비상계엄 수사 과정에서 추가로 적발해 기소한 사건 중 첫 선고다.

앞서 내란특별검사팀은 결심 공판에서 노 전 사령관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또 진급 청탁 대가로 받은 2390만원 상당의 금품을 추징하고, 압수된 백화점 상품권 몰수도 함께 요청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일부 양형 요소를 고려해 구형보다는 낮은 형량을 선택했다.

 

재판부는 노 전 사령관의 행위가 12·3 비상계엄의 추진 동력 가운데 하나였다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현역 국방부 장관 등 군 인사권자의 개인적 관계를 내세워 절박한 상태였던 후배 군인들 인사에 관여하고, 계엄 준비를 주도하면서 인사에 대해 도움받던 후배 군인들까지 주요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은 실체적인 요건도 갖추지 못한 계엄이 선포 단계까지 이를 수 있게 하는 동력 중 하나가 됐다"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나 알선수재 범행의 죄책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라는 결과를 야기해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노 전 사령관의 위법 행위가 계엄 계획의 추진 구조와 직결됐다는 법원의 판단이다.

 

쟁점이 된 정보사 요원 명단 수령의 목적에 대해서도 법원은 노 전 사령관의 주장을 배척했다. 노 전 사령관 측은 해당 명단이 대량 탈북 사태 발생에 대비한 수사단 구성 차원이었다고 항변해 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제2수사단 구성은 특정 시점에 계엄 사태를 염두하고 마련됐다"며 "노 전 사령관의 '대량 탈북 징후를 대비한 수사단 구성' 주장은 형식적 명목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검찰과 법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 사이 12·3 비상계엄 당시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할 비선 조직인 제2수사단을 꾸리기 위해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으로부터 국군정보사령부 요원들의 인적 정보 등 군사 정보를 넘겨받은 혐의를 받는다. 제2수사단은 공식 수사기관이 아닌 별도의 비선 조직으로, 계엄 하에서 선거 관련 수사를 명분으로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재판부는 다만 정보사 요원 명단이 군 외부로 유출되지는 않은 점, 알선수재 혐의와 관련한 진급 청탁이 실제 인사에 반영돼 실현되지는 않은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그러면서도 "인사 청탁을 빌미로 금품을 수수하고, 국가기밀에 해당할 수 있는 정보사 요원 인적 정보를 사적으로 활용한 점의 비위 정도가 가볍지 않다"는 취지로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진급 청탁 대가로 금품과 상품권을 받은 혐의도 함께 유죄 판단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9월 사이 진급을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김봉규 전 국군정보사령부 중앙신문단장과 구삼회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서 현금 2000만원과 60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알선수재 성립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봤다.

 

노 전 사령관은 민간인 신분이었음에도 36년간 인연을 이어온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의 긴밀한 관계를 활용해 12·3 비상계엄 모의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내란특별검사팀 수사 과정에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의 비선 실세 역할을 했고, 제2수사단 구상과 인사 개입 과정에서도 중심축 역할을 수행했다는 진술과 증거가 다수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현재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함께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5부 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 중인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 재판에서도 피고인으로 서 있다. 이 사건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과 병합돼 있다. 내란 본류 사건의 변론은 내년 1월 중순께 마무리될 예정으로, 이날 선고 내용이 추후 내란 혐의 심리에 참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치권에선 법원의 판단을 둘러싸고 내란 수사 정당성과 계엄 모의의 실체를 둘러싼 공방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여권 일각에선 내란특별검사 수사가 과도했다는 주장과 함께 상급심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야권은 법원의 유죄 인정을 계엄 시도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하며, 군 통수권과 헌정 질서 파괴 시도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1심 재판부가 노 전 사령관의 행위를 "계엄 선포 단계까지 이를 수 있게 하는 동력"으로 규정한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한 전직 판사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알선수재 같은 개별 범죄가 내란 사건의 맥락 속에서 평가된 것이어서, 향후 내란 본안 재판에서도 유사한 인식이 이어질 경우 책임 범위와 형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내란특별검사팀은 판결 내용을 면밀히 분석한 뒤 내란 중요임무 종사 사건 공판에서 이날 1심 판단을 토대로 한 공소 유지 전략을 강화할 방침이다. 노 전 사령관 측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1월 중순 내란 본류 사건의 변론이 마무리되면, 법원은 증거 정리와 추가 심리를 거쳐 본격적인 판단 절차에 착수할 전망이다.

김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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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조은석내란특별검사#윤석열전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