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온라인 스캠 겨냥 첫 독자제재”…정부, 프린스그룹·천즈 정조준
초국가 온라인 범죄 조직과 한국 정부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한국인을 겨냥한 스캠 범죄가 확산하는 가운데, 정부가 관련 조직과 핵심 인물에 대한 첫 독자제재에 나서며 외교·안보 이슈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정부는 27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스캠 사기와 유인·감금 등 범죄 활동에 관여한 개인 15명과 단체 132개를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에는 캄보디아 등에서 대규모 스캠단지를 조성·운영한 프린스그룹과 자회사, 천즈 회장 등 국내외에서 주목해 온 조직과 인물이 포함됐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프린스그룹은 이른바 태자단지, 망고단지로 불린 대규모 스캠단지를 조성해 다수의 한국인을 감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린스그룹의 모회사와 자회사들은 모두 이번 제재 명단에 올랐으며, 이 그룹을 이끄는 천즈 회장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천즈 회장은 중국계로, 캄보디아 훈 센 전 총리의 고문을 맡는 등 현지 최고 권력층과 밀착해 사업을 확장한 인물로 지목돼 왔다. 정부는 천 회장이 대규모 사기 범죄 단지를 운영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파악하고 독자제재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범죄조직의 자금세탁을 지원한 후이원그룹과 그 자회사들 역시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후이원그룹은 스캠 조직이 벌어들인 범죄수익을 여러 나라와 조세회피처를 거치며 세탁하는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개인 제재 대상에는 캄보디아 보하이 스캠단지에서 각종 온라인 사기 범죄를 저지른 한청하오, 한국 대학생 감금·폭행 사망 사건의 용의자이자 마약 밀반입 혐의를 받는 리광하오 등이 포함됐다. 두 사람 모두 동남아 스캠 조직과 연계된 중대 범죄 피의자로 분류돼 왔다.
정부 조사 결과, 이번에 제재된 기관과 단체는 캄보디아,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각국에 기반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팔라우,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케이만제도 등 조세회피처로 알려진 지역에도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으로 파악됐다.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개인과 단체에 대해서는 관계 법규에 따라 가상자산을 포함한 국내 자산 동결, 국내 금융거래 제한이 이뤄진다. 개인의 경우 입국 금지 조치도 동시에 부과된다. 정부는 자산동결 조치가 국내 본사는 물론 해외 자회사와 해외 지점에 대해서도 효력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이번 조치로 즉각 동결되는 국내 자산 규모는 수천만 원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관계부처와 협업해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제재 효과를 높이기 위한 추가 추적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조치는 미국과 영국이 지난달 비슷한 명단을 대상으로 독자제재를 시행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앞서 동남아 온라인 스캠 조직과 운영자, 관련 회사들에 대규모 금융 제재를 가하며 국제 공조에 나선 바 있다.
한국 정부 대응이 미·영보다 늦었다는 지적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초국가 조직범죄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독자제재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전례가 없는 조치였던 만큼 법적 검토와 정보 파악 등 내부 절차를 진행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과 영국의 제재 명단에 포함됐던 중국인 5명은 한국 정부의 제재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중 경찰 당국 간 온라인 범죄 대응 공조 양해각서가 체결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하면서, 이들에 대해서는 한중 공조 차원에서 수사 등 필요한 조치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독자제재 조치와 별개로 동남아 범죄조직에 대한 수사와 사법 공조는 계속 진행된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조치가 역대 최대 규모의 단일 제재라며 국내외에서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고 있는 동남아 지역 온라인 조직범죄 등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앞으로도 해외 범죄조직망을 교란하고 우리나라가 범죄수익의 은닉과 세탁처로 활용되지 않도록 추가 제재 대상 식별과 지정, 불법자금 차단 활동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과 아세안, 유엔마약범죄사무소 등 유관 지역과 국제기구와의 정보 공유 및 공동 대응 방안을 협의할 방침이다.
또한 정부는 원활한 국제 공조를 위해 사이버범죄 관련 세계 최초의 국제협약으로 꼽히는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앞으로 국회와 관계 부처에서 관련 절차와 제도 정비 논의를 이어가면서 초국가 온라인 범죄 대응 체계를 강화해 나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