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랠리, IT 버블 데자뷔 논쟁”…미국(USA) 뉴욕증시, 고위험 자산 조정에 변동성 확대 우려
현지시각 기준 22일, 미국(USA) 뉴욕 금융시장에서 인공지능(AI) 관련 기술주와 가상화폐를 중심으로 한 고위험 자산이 큰 폭으로 조정을 받으며 뉴욕증시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월가가 AI 투자 거품 붕괴 가능성과 사모대출·가상화폐 시장 리스크를 동시에 의식하며 향후 더 강한 변동성 확대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조정은 장기간 이어진 강세장 이후 나타난 고평가 논쟁과 맞물려 2000년대 정보기술(IT) 거품기와의 유사성을 둘러싼 논쟁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WSJ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21일 반등에도 지난주 전체로 1.95% 하락했고, 11월 들어서는 3.47% 내렸다. 기술주 비중이 높은 나스닥 종합지수는 같은 기간 변동성이 더 커지며 지난주 2.74% 떨어졌고, 11월 누적 낙폭은 6.12%에 달했다. 11월 3주간 S&P500과 나스닥의 하락률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 정책 발표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렸던 지난 4월 이후 가장 큰 수준으로 평가됐다.

이번 주 뉴욕증시의 특징은 AI 대표주를 둘러싼 극단적 급등락이다. AI 반도체 대장주인 엔비디아는 19일 장 마감 후 호실적을 발표했고,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AI 거품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우리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며 성장 지속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투자자들은 이를 호재로 받아들이며 매수에 나섰고, 엔비디아 주가는 개장 직후 한때 5% 가까이 상승해 시가총액 1위 대형주의 추가 랠리를 예고하는 듯한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상승세는 정오 무렵 급반전했다. 미 동부시간 기준 정오께 S&P500 지수가 약세로 돌아서자 엔비디아도 동반 하락하며 결국 3.15% 내린 채 마감했다. 장중 고점 대비 하락 폭은 약 8%에 이르렀다. 시장 변동성 확대 시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운용하는 카이로스 인베스트먼트 어드바이저스의 라몬 베라스테기는 “사람들이 진짜로 질겁했다”며 “나와 얘기를 나눈 사람 중 누구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월가의 경험 많은 베테랑들조차 하루 사이 급격한 심리 변화와 가격 움직임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주요 지수는 21일 반등하며 한 주 거래를 마무리했지만, 올해 뉴욕증시 강세장을 주도해 온 성장주와 투기적 성향의 자산은 이미 상당한 조정을 거친 상태다. 개인 투자자 열풍의 상징이었던 온라인 증권 플랫폼 로빈후드는 11월 들어 26.9% 급락했으며, 대표적인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도 같은 기간 30% 하락했다. AI 관련 개별 종목의 조정 폭도 크다. AI 기반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팔란티어의 11월 낙폭은 22.76%에 달했고, AI 관련 주요 기업에 분산 투자하는 글로벌 엑스(Global X)의 AI&테크놀로지 상장지수펀드(ETF)는 이달 들어 10.3% 내렸다.
다만 월가에서는 현재 상황을 2000년 IT 거품기의 단순 재연으로 보지는 않는 기류도 분명하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대형 기술기업이 실제로 상당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어, 기업 이익에 비해 과도하게 비싼 값을 인정받았던 인터넷 기업들이 난립했던 당시와는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인식이 우세하다. AI 반도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수요처럼 실물 기반 수익원이 뚜렷하다는 점이 당시와의 주요 차별점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WSJ는 과거 사례에서 보듯 기업 실적이나 뉴스 흐름이 본격적으로 악화되기 전에도, 주가가 선제적으로 하락하는 경우가 자주 관찰돼 왔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로 2000년대 인터넷 붐의 수혜 기업이었던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가 거론된다. 존 챔버스 당시 시스코 CEO는 2000년 8월 실적 발표에서 매출이 전년 대비 60% 증가했다고 밝히면서 “제2의 산업혁명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강조했지만, 시스코 주가는 1년 뒤 약 67% 하락했다.
투자회사 존스트레이딩의 마이클 오루크 수석 시장전략가는 20일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제목의 투자 노트에서 2000년 IT 거품기와 현재 AI 관련 주가 흐름 사이 유사성을 지적했다. 그는 AI 관련 주식이 랠리를 거듭한 뒤 단기간에 조정을 받는 패턴이 과거 버블기 조정 양상과 겹쳐 보인다고 분석했다. 투자자 기대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작은 변수에도 매도가 확대되는 심리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장기간 이어진 강세장을 고려하면 최근 조정 폭이 아직 제한적 수준이라는 평가도 제기된다. S&P500 지수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 대비 낙폭은 약 4.2%로, 일반적으로 기술적 조정 구간으로 분류되는 10% 하락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투자회사 캔터 피츠제럴드의 매슈 팀 주식파생상품 트레이딩 책임자는 AI나 가상화폐에 집중적으로 베팅하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넓게 분산한 투자자들은 전반적으로 패닉 상태가 아니라며 “대부분의 사람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고위험 섹터에 쏠린 포지션이 흔들리고 있으나, 시장 전체가 공포 국면에 들어선 단계는 아니라는 진단이다.
그럼에도 최근 수년간 급팽창한 사모대출 시장의 부실 위험과 투자 기반이 크게 확대한 가상화폐의 급락세가 결합되며 위험 자산 전반에 대한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 특히 자동차 담보대출업체 트라이컬러와 자동차 부품 공급사 퍼스트브랜즈 등 사모대출 자금에 의존해 온 기업들이 잇따라 파산 보호를 신청하면서, 사모대출 부실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사모대출에 투자하는 헤지펀드 푸리에 자산운용의 올란도 게메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사모대출에서 자금을 빌린 기업 중 일부는 과거 연 2∼3%대 저금리로 현금흐름의 7배에 달하는 규모를 차입했는데, 이제는 8∼10% 금리로 재융자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급격히 높아진 금리 부담이 차입 기업들의 상환 능력을 약화시키며, 사모대출 자산의 품질에 대한 시장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경우 사모대출 시장이 신용 리스크의 새로운 진앙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상화폐 시장도 뉴욕 금융시장에 부담을 더하는 요인으로 떠올랐다. 대표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은 10월 기록한 최고치에서 약 33% 하락한 상태라고 WSJ는 전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FTX 파산 당시에는 금융시장 전반으로의 파급이 상대적으로 제한됐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비트코인 ETF 출시 등으로 제도권 투자자의 참여가 크게 확대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상화폐 가격 변동이 더 넓은 금융시장과 자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력이 이전보다 커졌다는 것이다.
WSJ는 비트코인을 대규모로 보유한 기업 스트래티지(옛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주가가 6월 고점 이후 60%대 하락한 점을 언급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 같은 기업들이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추가적인 비트코인 매입 여력이 줄어들 수 있고, 그 결과 가격 하락이 다시 수요 위축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도권 투자자 비중 확대가 가상화폐 시장의 단기 급락을 전통 금융시장으로 전이시키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다.
뉴욕증시를 둘러싼 국제 금융시장의 시선도 복잡해지는 분위기다. 미국(USA) 증시는 글로벌 위험 선호 심리를 가늠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해 왔고, 특히 나스닥은 전 세계 성장주와 기술주 투자 방향을 좌우해 왔다. AI 성장주, 사모대출, 가상화폐 등 고위험 자산에서 동시다발적 조정이 발생하면서, 유럽(EU)과 아시아 주요국 증시 역시 변동성 확대에 대비하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주요 해외 매체들도 “AI 기대가 실제 이익으로 얼마나 이어지는지가 향후 몇 분기 글로벌 증시 방향을 가를 것”이라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조정 국면을 둘러싸고 전문가들은 뉴욕증시 향방이 미국 금리 수준, 기업 실적, 신용시장 동향에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이 고금리 장기화에서 완화 기조로 전환될 조짐을 보이거나, AI 관련 기업 실적이 기대를 상회해 고평가 논란을 상쇄할 경우 위험 자산 선호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반대로 사모대출 부실이 현실화하고, 가상화폐 시장 급락이 제도권 금융에 연쇄 충격을 줄 경우 변동성은 한층 증폭될 수 있다.
월가에서 AI 성장주와 사모대출, 가상화폐 등 고위험 자산 전반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는 가운데, 뉴욕증시의 조정이 단기 숨 고르기에 그칠지, 구조적 국면 전환으로 이어질지에 세계 금융시장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번 조정이 향후 글로벌 자산 가격과 자본 흐름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