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서울·수도권 135만호 공급 가속”…이재명 정부, 토지거래허가권 국토장관 부여 추진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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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급과 안전 규제를 둘러싼 여야의 힘 겨루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가 대규모 주택 공급과 개인형 이동장치 사고 대응, 불법 건축물 양성화를 위한 입법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히면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야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20일 국회에서 국토교통위원회와 국토교통부 당정 협의를 열고 지난 9월 7일 발표한 부동산 공급 대책의 후속 입법을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당정은 2030년까지 서울·수도권에 신규 주택 135만호를 공급하는 9·7 대책의 이행을 위해 연내 발의와 처리가 가능한 법안을 최대한 앞당긴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맹성규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은 회의 모두발언에서 “2030년까지 서울·수도권에 신규 주택 135만호를 공급하는 9·7 대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도록 연내 발의 및 처리가 가능한 법안들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공급 일정 차질을 막기 위해 법·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도 입법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김 장관은 “9·7 공급대책에 대한 입법이 매우 시급하다”며 “공급 효과가 하루빨리 체감되도록 하기 위해선 필요한 법적 기반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계획한 공급 물량이 시장에서 실제로 집행되려면 정비 절차와 인허가 체계를 손보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당정은 공급 대책과 직결된 입법 과제로 도심정비 활성화를 위한 도시정비법과 노후계획도시정비법 개정, 현재 시도지사에게만 부여된 토지거래 허가구역 지정 권한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도 부여하는 부동산 거래 신고법 개정, 도심 내 공급 확대와 공공택지 내 물량 확대를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중점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국공유지 무상취득 기준을 명확히 하는 국토계획법 등 이미 국회에 발의된 5개 법안과, 정비사업 절차 간소화를 골자로 하는 도시재정비법 등 새로 발의가 필요한 9개 법안이 패키지로 추진된다. 당정은 이들 법안을 묶어 주택 공급과 정비 사업 전반을 정비하는 입법 로드맵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정은 법안 처리 과정에서 야당인 국민의힘 협조가 관건이라고 보고, 협의 채널을 적극 가동하기로 했다. 국토위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복기왕 의원은 당정협의 직후 취재진과 만나 “관련 법안을 심사하는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을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이 맡고 있다”며 “밀려있는 법안도 많고 논의도 늦어질 우려가 있어 야당의 협조를 위해 당정이 노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공급 대책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국회 일정 조율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날 당정은 부동산 공급 외에 안전 문제와 직결된 개인형 이동장치 관련 입법도 병행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최근 인천에서 어린 딸과 산책하던 30대 여성이 무면허 중학생들이 탄 전동킥보드에 치여 중태에 빠지는 등 사고가 잇따르면서,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 관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정은 전동킥보드 등 대여용 개인형 이동장치에 번호판 설치를 의무화하고, 전용 운전자격 또는 면허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법안을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당정은 개인형 이동장치의 주요 이용자인 청년층의 의견을 사전에 수렴한 뒤 세부 규제 강도와 적용 범위를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안전 강화와 이동 편의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과제가 될 전망이다.

 

불법 건축물 문제와 관련해서도 제도 전환이 예고됐다. 당정은 소규모 주거용 위반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시적인 합법 전환, 이른바 양성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주택 부족과 고금리 등으로 서민 주거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제도 사각지대에 놓인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는 방향으로 출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김윤덕 장관은 “어려운 민생·경제 여건을 반영해 소규모 주거용 위반 건축물은 한시적으로 합법 전환을 허용하겠다”며 “동시에 불법을 키워온 불합리한 규제를 합리화해서 위반 건축물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위반 건축물 전면 단속과 단계적 양성화를 병행해, 향후에는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규제 체계를 손보겠다는 구상이다.

 

당정 설명에 따르면, 불법 개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건축물을 매입했다가 매년 이행강제금을 부과받고 금융 대출까지 제한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런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고,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소규모 불법 건축물 양성화를 공약한 바 있다. 이번 논의는 대통령 공약 이행 차원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복기왕 의원은 “불법 건축물을 어느 부분까지 양성화할지 논의를 시작한 단계”라며 “향후 매주 또는 격주로 계속 논의해서 내년 2∼3월 안에 법안을 처리해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양성화 범위와 기준 설정 과정에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만큼, 국회 차원의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토지거래 허가구역 지정 권한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부여하는 방안과, 불법 건축물 양성화 범위를 둘러싸고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토허구역 지정 권한 확대는 시장 개입 논란과 함께 지방자치권 침해라는 문제 제기로 연결될 수 있고, 양성화는 성실한 신고·허가 이행자와의 형평성 논쟁을 촉발할 여지가 크다는 분석이다.

 

당정이 공급 확대, 안전 강화, 제도 정비 등 다수 의제를 한꺼번에 밀어붙이면서, 정기국회 후반부 국토위 일정은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됐다. 국토교통부와 더불어민주당은 후속 논의를 통해 법안 내용을 구체화하고, 국민의힘과도 협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국회는 정기국회와 다음 회기에서 관련 법안을 본격 심사할 예정이며, 여야 협상 과정에 따라 부동산 정책과 안전 규제의 향방이 좌우될 전망이다.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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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대통령#더불어민주당#국토교통부